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리요 Aug 07. 2024

뭘 찍어야 할까요?

사진 클래스에서 피드백을 받은 날

사진 클래스에서는 매주 선생님이 과제를 내주신다. 그 주에 배운 기술을 활용한 사진을 몇 컷 찍어 공유 드라이브에 업로드하고, 그 외 자유사진을 또 몇 컷 업로드하는 과제이다. 4주차 수업인 오늘 선생님이 2, 3주차에 올린 과제들을 두루 보며 피드백을 주셨다. 


가나다순으로 지목되어 맨 처음 피드백을 받았다.


"어- 테크닉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런것도, 이런것도, 다 잘 나왔네요?"

"지금 같은 사진도 여러 방향에서 찍은게 많은데, 이건 엄청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는 거거든요. 좋은 자세니까 앞으로도 그런 자세 유지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밝고 명랑한 피드백.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분주하게 찍은 만큼 적절한 결과물을 배출해낸듯하여 만족감이 들었다. '부지런한 성격이 사진에서도 보이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그래, 이게 내 기술이지.'하고 나를 인정했다.


이후 이름순과 상관없이 이어지는 피드백.


"이렇게 뭔가 대상화하는 사진들이 지금 매력적이게 느껴져요."

"안정감있는 구도를 잘 잡으시는 것 같아요."

"형태가 잘 잡혀있어요. 그냥 조명이 아니라 원형과 직선을 형태로 잡는다던지. 감각이 있으신것같아요."

"대체로 지금 클로즈업 하면 사진들이 되게 좋아요. 좀 더 당겨서 찍으면 좋을 것 같아요."


미세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피드백들. 테크닉과 성실함이 강조된 내게 주어진 피드백과는 달리, 사진의 구도, 형태, 감각에 대해 평가하는 말들. 내가 감각이 없는 줄은 알고 있었다. 세심하게 정리된 피드백들 뒤로, 나는 아무 탓할 곳 없이 혼자 멀어지고 있었다.


수업을 다 마치고 나서 선생님은 과제와 별개로 당부의 말을 하셨다. 


"카메라를 많이 들고 다니셔야해요. 일상 속에서도 찍을 게 많으니까 자꾸 이것저것 찍어보세요."


집으로 돌아와 현관앞에서 쉽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도로 나섰다.


'뭘 찍어야할까? 뭘 찍으면 좋을까?'


두 시간을 방황했다. 지나가는 꼬마도 찍어보고, 나무도 찍어보고, 산책하는 강아지도 찍었다. 엘레베이터 버튼이 귀여워 그것도 한 번, 비상등 그림이 귀여워 그것도 한번 찍었다. 그러나 뭐든,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못 찍는 것일까? 그래서 내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아무리 돌아다니고, 여기고 저기고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 어디에도 내가 찍고 싶은 것은 없었다. 

그리하여 알아챘다. 나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쩐지 좋아하는 사진 작가 한 명 없는 것도 좀 이상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후루룩 사진들을 보며, 정말 너무 마음에 들어서 확신의 좋아요를 누르기 보다는, 그냥 조금만 괜찮아도 대충 좋아요를 눌렀다. 적당히 예쁘면, 혹시 나중에 내 마음 바뀌어 찾아보게 될지 모르니 팔로우를 눌렀다. 사진전을 보러 가도, '와, 어떻게 이런 재밌는 사진을 찍었지?' 이런 생각 뿐.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 내 맘 속에 남기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던 나다. 


생각끝에 이윽고 알았다. 나는 사진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찍는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 좋아하는 음식의 냄새와 색깔, 여행지 숙소 침대의 까슬까슬함, 그 침대에 누워 뒹굴대는 내 친구의 여유가 듬뿍 묻은 발바닥. 나는 그런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런 이유로 내 사진에는 구도도, 형태도, 감각도 없이, 오로지 내 추억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럼 나는 앞으로 뭘 찍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찍은 사진들도 좋은 사진이 될 수 있을까?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