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빔의 도전과 해법(1)
*해당 글은 은평시민신문과 함께 진행한 기획취재 <오래된 도시조직의 공존방안>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현재 한국의 많은 도시는 '지역 소멸'이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무분별한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발 압력과 보존 노력 사이의 갈등, 지역 정체성 유지와 관광산업화 사이의 긴장, 그리고 주민 참여와 관 주도 개발 사이의 균형 문제 등이 발생한다.이는 어떤 특정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이 마주한 문제다. 그런데도 각 도시마다의 정체성을 보존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잘 보이진 않는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물리적 공간을 보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온 주민의 삶이 지켜질 수는없는 것일까? 1995년부터 인천 지역 미술 연구모임에서 시작하여 17년 동안 대안적 예술 활동과 지역정체성 보존 활동을 해온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그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인천의 원도심인 동구 배다리마을에 남아 있던 오래된 양조장 건물을 임차하여 17년째 지역공동체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페이스 빔 대표 민운기입니다.
Q. 스페이스빔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1995년에 인천 지역 미술 연구모임을 시작했었습니다. 모임을 통해 인천 문화기반시설의 부족, 전시기획의 한계, 서울 중심의 문화 활동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 지역, 사회를 연결하는 체험과 학습을 진행하면서 인천 미술계의 관행, 관습, 권력화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미술 담론 생산을 위한 거점과 대안적 예술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2002년 1월, 인천 남동구 구월동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인근에 '스페이스 빔'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미술 연구를 넘어 도시 프로젝트로 확장된 계기는요?
2007년 1월부터 3월까지 진행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 ‘도시유목’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0명 작가로 구성된 '도시 문화탐사대'가 인천의 상징적 공간 10곳을 30일간(5일씩 6회) 탐방하는 과정에서 배다리 마을의 가치를 위협하는 산업도로 공사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엔 배다리를 잘 몰랐는데 프로젝트를 통해 배다리 마을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헌책방 거리로 알려진 유서 깊은 마을이 '속도'와 '효율'의 논리로 파괴되어 가는 모습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진보적 예술활동을 해왔다고 자부했지만, 평범한 주민들의 삶이 위협받는 현실을 간과했다는 사실도 인식하게 되었죠. '지금', '이곳'에서 개발논리에 대항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배다리마을로 이전하였고요. 이후 산업도로 반대 싸움에 본격 참여했습니다. 같은 해 5월부터는 인천시가 배다리마을도 포함한 <동인천역주변재정비촉진사업>으로전면철거식 대규모 개발, 이른 바 '뉴타운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싸움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그렇게 배다리를 지키며 가꾸기 활동을 병행해왔고, 문화 예술 활동도 도시의 관점과 맥락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주민 간 관계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산업도로 반대로 수많은 주민이 똘똘 뭉쳤지만, 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나뉘었고, 찬성 의견이 우세해진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배다리는 드라마와 영화촬영지로 주목받으면서 방문객이 증가했어요. 관할구청에서는 관광지 개발을 위해 급조된 사업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마을을 지켜온 '배다리 지기'들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생겨 과거와 같은 단일하고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지자체가 주민들의 대표성을 문제 삼고, 갈라놓으려는 행태도 한몫하다보니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고요. 민관 갈등보다 주민들 간 갈등이 더 큰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Q. <배다리 도시학교> 프로그램은 어떻게 시작이 된 건가요?
2010년에 일본 요코하마 코가네초 바자르 토론회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요코하마는 오래전부터 민·관이 협력하여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모범적 사례를 만들어 왔거든요특히 문화·예술의 역할을 존중하고 주도적인 기회를 부여하면서요. 그 이면에는 민·관·학의 유기적이고 긴밀한 협업 구조가 존재합니다. 대표적 사례로 ‘기타나카 스쿨(北仲學校)’이 있습니다. 항구 쪽 오래된 건물 하나를 확보하여 요코하마 시내에 있는 각 대학교수가 도시 재생, 마을 만들기, 디자인, 건축 등과 관련한 통합교육과정을 만들어 개설하고, 각급 학교 학생들은 이론 수업과 현장 실습을 병행하게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경험과 함께 졸업 후 관련 분야 취업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에 영감을 받아, 2012년 배다리에서 유사한 시도를 시작하게 된 거고요. 지역사회에 관심 있는 대학 교수들, 전문가, 활동가들을 모아 도시 문제와 관련한 교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포럼 형식으로 시작되어 현장 탐방, 도시 혁신 워크숍, 결과 발표, 리서치 및 아카이빙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무엇이었나요?
<인천 에코뮤지엄 플랜>중 3년 차인 2020년 진행된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인데요. 1970년대 대한민국 여성노동운동의 상징적 장소로 여겨지는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과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권리, 인권, 복지, 등을 지원했던 화수동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일꾼교회')를 연결하는 도보루트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당시 상황과 길과 관련된 이야기를 증언과 공연, 전시, 토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오늘에 접목시켜보는 방식이었죠. 이 프로그램은 일꾼교회 김도진 목사님이 제안하고, 스페이스 빔의 화답으로 시작되었지만,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공간은 물론이고,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인천여성노동자회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자신의 일처럼 역할을 분담하고 진행하게 된 것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비록 현재는 과거의 활기를 잃고 침체된 모습이지만, 이 지역의 풍부한 역사성과 이야기를 살린 재생사업을 통해 의미 있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동일방직 공장 가동 중단 이후, 사후 활용 방안 논의에도 불구하고 인천시는 철거식 개발 가능 방향으로 지구단위계획을 세웠습니다. 일꾼교회 역시 화수·화평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구역에 포함되어 철거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범시민대책위를 꾸려 적극 대응에 나섰지만, 아파트 단지 외곽으로 원형 이전하는 정도로 타협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인천여성노동자회 주최로 매년 한 번씩 소규모로 행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당초의 규모와 의미를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Q. 인천시의 그런 행보가 스페이스 빔 활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제가 기대하고 있던 인천 도시상(像)의 마지노선이 무너져버린 느낌입니다. 이전에는 의견이 맞지 않았지만, 무언가 해나갈 여지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49층 높이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물리적·심리적 장벽으로 다가왔고, 이후에 일대에 재개발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고요. 몇 년 후에는 아파트가 병풍처럼 들어서게 될 것 같은데요. 그나마 내륙에 가까워 그럴 수도 있다고 애써 위로해 보지만, 만석동과 화수동은 바다에 접해 있는 동네이자 한국의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던 곳이거든요. 해안가 매립지 공장지대와 배후 주거지(당시 노동자들이 살았던)가 공존하고 있어 꼼꼼히 살피고, 잘 보듬는 재생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공장지대가 어떻게 될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주거지를 모두 철거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 이 일대의 역사성은 사라집니다. 도시 경관 차원에서 보더라도 더 이상 관심을 가질 게 없는 평범하고 획일화된 도시로 전락되고 말거에요.
저 또한 이러한 변화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다양한 요소를 잘 활용하면 나름 멋지고 매력 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가 좀 있었어요. <배다리 도시학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논의와 실험, 탐방 프로그램, 아카이브 작업 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작업 할 수 있는 대상지도 얼마 남지 않았고, 활동반경이 점점 좁혀지는 듯합니다.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