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창선 Jul 14. 2018

금방 되지? 간단한거니까. 30분안에 해줘

금방 되는 지 안되는 지는 상대방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 듯?

엄마가 간만에 간장게장 만들어주겠다고 맘먹고 꽃게를 한 뭉터기 사와서 모래를 걷어내고 있는데, 자식놈이 들어와서 갑자기 


"빨리 되지? 나 배고프니까 30분안에 해줘."

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요. 엄마의 손이 상완부와 부드러운 둔각을 이룬 채 빠르게 비행하며 나의 등짝에 아름다운 접점을 만들겠죠. 가속도와 질량의 곱으로 만들어진 힘F가 등짝에 열상과 부분골절, 피부괴사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찰진 스윙

사실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뽑긴 했지만, 클라이언트의 '금방 되죠?' 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시켜서 죄송해요...너무 어려운 건 아니죠?....라는 죄송과 민망의 의미가 있고.

2. 별 것도 아닌거 얼른 해라.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분명 의도는 다르지만, 둘 다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죠. 지금 이 글은 클라이언트님들을 위해 쓰는 글이므로 이럴 땐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합시다. 요즘 제 글이 갈수록 길어지는 것 같아서 오늘부턴 스압없이 좀 짧게 줄이려고 합니다. :) 배려 오졌다.



상황을 하나 들어볼께요.


“이거 건물만 하나 얼른 만들어 주시면 돼요.”

“언제까지 수정해 드려야 해요?”

“지금 급하게 필요한 거라서… 한 시간 내로 될까요?”


아이소메트릭 디자인 중이예요. 그 3D처럼 노가다해서 만드는 보기에 그럴싸한 기똥찬 디자인방식이예요. 기존에 만들어 놓은 빌딩 이미지 말고, 좀 다른 형태의 빌딩 모양이 필요하다고 추가 제작 요청이 들어왔는데, 말미를 한 시간 주고 있는 거죠. 말은 단어와 뉘앙스로 이루어집니당. 커뮤니케이션은 이 둘의 조합에서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인데 이 대화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러한 거죠.

하하하하...하하..하.. 디..자이..너 ...님..

이거=저기…

건물만=다른 것은 안 시킬 테니

하나=딱 하나만

얼른=얼른 끝나…겠죠?

만들어 주시면=부탁드려요

돼요=죄송


사실 이 말이었을 겁니다. 난 그렇게 믿고 싶어. 하지만 다른 의미였을 수도 있겠죠?


얼른 되지?

이거=그래 이거

건물만=~만 ‘단지 그것만’=다른 것은 안 시킬 테니

하나=두 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얼른=쉬운 거 아니냐

만들어 주시면=한 시간 내로

돼요=줘라


이런 식으로 말이예요. 음,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일을 100%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뭘 해봤어야 알지. 설사 해봤더라도 그 사람의 사정과 내 사정은 분명 다를테니까요. 그래서 보통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요청하거나 지시할때는 팩트만 전달하는 게 좋습니다. 


-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 그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인데

- 마이너한 수정 사항이에요

- 몇 개만 바꾸면 돼요.

- 가벼운 수정 사항이에요.


이런 말은 내 의견이죠. 어려운 지 아닌지는 내가 안만들면 모를 일이예요. 간단한 지 복잡한 지도 마찬가지죠. 마이너한 수정사항이라고 하지만 사실 무조건 하나를 지우는게 마이너가 아니예요. 본문 하나를 통째로 들어내면 나머지 배치를 전부 바꿔야 하니 이건 마이너가 아니라 일을 벌리는 것과 같죠.

하나만 건드려도 우르르 무너지는 게 또 디자인이라구..

몇 개만.. 음 뭐 시키는 입장에선 몇 개뿐이겠지만 그 몇 개가 만들어내는 난장판을 고려해보면 단순히 그것만 띡 바꾼다고 될 일은 또 아니더라구요. 가볍고 무겁고도 만드는 사람이 결정할 부분이구요. 아래의 10가지 수정요청 예시를 보여드릴께요.


1. 왼쪽정렬을 가운데정렬로 바꾸기

2. 중간에 텍스트 하나를 통째로 날리기

3. 전체적인 색감 바꾸기

4. 상하좌우 여백 더 주기

5. 하단에 내용 추가하기

6. 없던 요소를 만들어 내기(특히 벡터 요소)

7. 텍스트 폰트 수정하기

8. 크기가 서로 다른 사진 위치 변경하기

9. 난데없이 그래프 추가하기

10. 전체적인 톤 수정하기


흔히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레이아웃을 건드는 작업들입니다. 시키는 사람은 '지워/옮겨/넣어' 와 같이 간단하게 던질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입장에선 오늘 밤도 뜨겁게 불태울 수 있는 액션스릴러물이 될 수도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사 참..대박사건이다 진짜

물론 일은 해야합니다. 그러니 밤을 새든 어렵든 쉽든 복잡하든 많든 적든 정당한 요청이면 하는 게 맞아요. 저런 요청을 하지 말란 소린 절대 아닙니다.


당연히 수정피드백이나 추가요청은 하셔야 해요. 단!


이런걸 요청할 때 뒤에 이상한 말을 덧붙이지 않는 걸로 손가락 걸고 약속복사코팅팩스공증!


그냥 간단하게 말하는게 좋아요.

"중앙에 회사소개문구를 왼쪽정렬로 맞춰주시고 위치도 왼쪽에 맞춰주세요. 언제까지 될까요?"

"음, 3시간 정도 필요해요."

"약간 아슬아슬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2시간 안엔 어려울까요?"

"해볼께요."

"감사합니다."


라고 깔끔하게 대화하시면 됩니다. 넘겨짓고 단정짓고 판단하는 건 꼭 일이 아니더라도 어떤 대화에서건 중요한 법이니까요. 찡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