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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좀 날 수도 있지

긁히고 피나고 멍들기

by 박창선

클라이밍의 매력은 낑! 허! 으읍! 끄암! 므으! 악다구니를 꽉 깨물고 끝내 탑을 찍었을 때 느낄 수 있어. 공식적으론 그래. 그러나, 또 다른 은은한 매력이 있지. 하산 후 긁힌 팔과 멍든 무릎, 까진 손가락, 초크로 범벅된 주둥이와 얼얼한 발꼬락이야. 샤워를 하며 오늘 긁힌 상처만큼 고통을 느끼고, 공포의 알콜소독을 하는 것이지. 알아. 변태같고 뒷걸음질 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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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리미트리스란 다큐가 쥐도새도 모르게 등장했어. 에피소드 중 김동현 선수와 토르형(크리스 헴스워스)가 만나 통증 훈련을 연습한 영상이 릴스에서 화제였어. 토르형은 조금씩 쳐맞고, 긁히고 피를 경험해. 특수부대 훈련을 받고 스파링을 하고, 후추스프레이를 그대로 맞기도 해.

화면 캡처 2025-10-12 211513.png 형 왜그래...

그리고 이것이 '그리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는 걸 두뇌에게 학습시키는거야. 빨간 맛 단어들이 자꾸 나와서 그렇지 사실 우린 이와 유사한 행동을 많이 하고 있어. 한 겨울에 얼음물에 뛰어들고 번지점프를 하기도 해. 작은 감기를 무시하고, 다리에 더해지는 자잘한 통증을 무시하며 10km, 20km를 달리는 우리들의 모든 행위가 그것이지.


고통은 즐겁지 않아. 하지만 도움이 되지. 고대의 싸움과 사냥이 사라진 요즘 우린 가상현실의 적을 죽이고, 잘 꾸며진 놀이공원이나, 인스타에 자랑할 만한 적당한 부상의 스포츠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어. 때론 아찔한 공포영화로 멘탈을 셀프고문해. 우린 이를 도파민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퉁치지만, 실은 고통의 역치를 높이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본능일 거야.


반대로 보들보들한 살결과 항상 따뜻하고 포근푹신한 침대를 떠올려보자. 부드러운 이불은 우릴 때릴 수 없고, 폭신한 배게가 우릴 멍들게 할 수도 없어. 이 보드러움은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안도감을 선사하지. 만족은 더함이 아니라 '역개념'에서 나오는 거야. 휴식을 개꿀로 만드는 건 더 푹신한 이불이 아니라, 누우며 별 소리가 다 날 정도의 근육통이야.


길가다 타인에게 쳐맞거나 인격을 공격당하거나, 예상못한 사고를 당하면 안되지. 병에 걸리거나 기능장애로 고통받는 것도 좋지 않아. 그건 다른 종류의 고통이거든. 그러나, 조금 긁힌 상처에 세상 무너진 듯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는 거야.

8a8673.gif 아 쫌


인간의 피부는 적응을 위해 털을 포기했어. 털을 버리고 땀구멍을 선택했지. 털이 사라진 피부는 몇 겹으로 두꺼워졌어. 상처가 잘 아물지 않게 되었지만, 그만큼 단단한 피부를 가지게 됐어. 어디 부딪히고 긁히고 피가 나도 사실 큰 문제가 없다구. 긁힌 건 아물고 멍은 풀어져. 근육은 재생하고 부러진 곳은 다시 붙어.


아프고 욱신거리지만 두뇌는 알거야. 밖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지만 별 일 아니라는 걸. 너무 작은 것들에 약을 바르고 삼키고 웅크릴 필요는 없는거야. 손이 터져 피가 나는 서로를 보며, '어 테이프감아'라며 무심하게 말하는 동료들 안에서 강해지는 거지. 그게 뭐 별거라고. 그게 뭐 대수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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