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가능한) 가지마라, 대기업
브런치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주제인 이직, 대기업, 조직문화 등을 내 경험에 비추어 조금은 더 현실감 있게 기록하고 공유하여 혹여 이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시작의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 대기업을 일반화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 안에서 내가 겪은 경험에 대한 반추이다.
나도 그랬다.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과정에 붙었는데 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지 못했다.
원하던 랩에 배정을 못 받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몇몇 분의 조언을 받고 나니 미래가 안 보였다.
그래서 별 수 있나. 취준생이 되었다.
전공을 살려서 IT업종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고, 당시에 유명한 취업카페였던 '취뽀' (지금도 있나 모르겠다.)에 가입을 하고 이런저런 글들을 보며 취업에 대한 정보를 얻어 가며 취업을 준비했다.
당시에 취뽀에서 내가 주로 찾아봤던 글은 'XX기업 어때요?' 이런 질문에 대한 현직자들의 답변이 달린 글들이었다. 물론, 현직자인지 알 길은 없다만 걔 중 정말 현직자가 아니면 이렇게 신랄하게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팩폭 중심의 글들이 몇 개 있었다.
그런 글들을 보며 당시 내가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에이... 설마 저럴까..."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냐... 우선 붙고 나서 보자"
다행히 다른 친구들보다 준비 기간은 짧았음에도 그 해에 취업이 되었고, 남들이 보기에 + 내가 생각하기에도 괜찮은 대기업에 입사를 하였다.
역시 그랬다.
입사를 하고 나서 반년 정도는 정말 재미있었다.
일이 재밌다기 보단 그냥 사원증, 사람들, 내 자리, 내 노트북, 큰 건물, 출퇴근 뭐 이런 류의 '회사를 다니고 있다'라는 느낌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슬슬 '일'을 하면서 조금씩 눈에 들어올 무렵, 그 '일'을 하는 '사람'과 '프로세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취뽀'에서 읽었던 글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역시 그랬다.
일 년 전쯤 세바시에서 이국종 교수의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강연이 있었다.
그 강연 내용 중간에 '프로세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요는, 강연에서는 응급 의료계의 정책이 실제 현장까지 내려오는 데에 현장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는데 당시에 내가 느꼈던 대기업의 프로세스가 딱 그랬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대기업의 프로세스는 매출에 맞추어져 있었다. 당연할 수도 있다.
소위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창출이라고 하니까.
매출이 있어야 외연적인 성장으로 비치고, 그래야 주가도 오르고, 주주도 좋고, 직원도 성과급 더 받고, 사람도 채용하고, 사회에 기여를 하고 등등...
당시 내가 싫었던 것은 일을 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각각이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어 회사라는 큰 시계를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는 좋은 동료들이었지만, 초년생인 내 눈에는 조금 비관적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대리를 달고 한 4~5년 차쯤 그렸던 내용으로 기억한다.
원래는 flow chart를 웹에서 해주는 서비스를 찾다가 기능 참고차 그렸던 게 저 flow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삐뚤어졌던 대리였네...ㅎㅎ)
여하튼, 당시에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프로세스가 저것이었다.
사고의 시작이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였다. 물론, 잘못된 시작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권력욕이 개입되는 순간 저런 식의 흐름이 되어버리는 게 문제였다.
일의 목적
재밌는 건 그래도 회사는 (정확히는 대기업은) 돌아간다는 것이다.
견고한 Captive Market이 있고 Cash Cow가 있고 성실한 톱니바퀴들이 있기 때문에 회사는 돌아가고 또 성장을 한다. 덧붙이면, 전반적으로 경제가 성장을 하면 고객도 성장을 하고 그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회사도 성장을 하기 때문에 대기업은 어지간하면 역신장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의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남는 게 없다.
(남는 거의 기준 역시 개인마다 다르지만 나의 기준에서 남는 것은 '연봉의 상승' 보다는 '성공경험'이다.)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일의 목적에 승진/연봉이라는 것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사업 기획을 하게 된다. 10년밖에 되진 않지만 경험 상 그런 식의 사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PON(Problem/Opportunity/Needs)가 과거에는 없었던 내용이 아니다.
이제 고전이 되어버린 3C/4P/5F/SWOT 등등의 분석을 좀 더 컴팩트하게 정리한 게 PON이라고 보면 당시에도 PON의 사고방식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다만, 문서로만 남고 실제 일의 흐름이 위에 처럼 돌아가기 때문에 거기에 익숙해지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점점 중요한 것이 요식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숫자에 치중되어 윗선에서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는데 익숙해져 버리는 것이다.
둘째는 개인의 skill set이 쌓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skill이라는 게 꼭 회사에서만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방식으로 계발을 할 수는 있지만 이직을 하건 창업을 하건 내가 하는 일 안에서 성공 경험과 그것을 위한 skill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워진다.
매년 비슷한 루틴으로 일이 돌아가기 때문에 1년을 돌아보면 바쁘기만 했지 뭘 했는지가 뚜렷하지가 않은 게 결국 이러한 이유로 스스로에게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인가.
답은 없다.
개인의 가치에 대한 욕구도 제각각이고 속한 회사에서의 처한 현실도 제각각이라 운신의 폭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지만 일의 목적에 대해서 스스로 되뇌어야 할 것은 하나씩 있었으면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다음 편은 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에피소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