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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중음악 분야의, 그 안의 다양한 업종을 망라하고, 종사자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가지 화제가 있다. 하나는 BTS고, 다른 하나는 유튜브다.
문득 궁금하다. 혹시 <채널예스>의 독자 중에 BTS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BTS와 관련된 영상과 외신 기사들을 거의 반나절 가까이 홀린 듯 보았던 나로서는 BTS를 모른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적어도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니까. 혹시 부동산 규제 정책의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설명을 덧붙인다. BTS는 방탄소년단(Bullet Proof Boys)의 약자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아이돌그룹의 이름이다. 현재 이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음, 1990년대 후반에 HOT가 한국에서 누렸던 인기를 전 세계적 단위로 누리고 있다. 설명 끝(HOT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BTS 현상을 비롯한 현재 진행 중인 문화 게임의 배후이자 진정한 승자인 유튜브는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집어삼킬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1980년대 MTV를 떠올리게 하는 절대적인 플랫폼이다. 주위의 동료 뮤지션들 중에 인디와 메이저, 언더와 오버를 막론하고 유튜브를 하지 않거나 여기에 관심이 없는 아티스트는 없다. 물론 안 하는 사람은 있지만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특히 대중음악 분야에 뛰어드는 젊고 어린 작곡가들은 영상 촬영과 편집기술 배우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유튜브에 자신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안다.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활동한 가수들도 나름대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있으며 아직 뛰어들지 않은 다수는 이제라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2005년에 미국의 젊은 개발자 셋이 론칭한 유튜브는 일 년 뒤 구글에 매각되었다. 이후 영상을 올리는 크리에이터(생산자)에게 광고와 조회 수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기술이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기업은 이윤 추구만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실리콘밸리의 철학이 낳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이 민주적인 플랫폼을 통해 세상의 어떤 문화 콘텐츠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K-pop은 BTS에 이르러 팝음악의 한 장르로 완전히 자리매김했고, 우리 대중음악은 이전과 다른 차원의 범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팝음악 역사에서 한 나라의 음악 신(scene)이 이 정도의 파급과 영향력을 갖게 된 경우는 미국, 영국, 스웨덴, 프랑스, 스페인 정도만이 손에 꼽힌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사건이다. K-pop이 왜 이렇게 인기를 끌고 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논평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여기서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유튜브의 역할이 지대하지만 그전에 우리 뮤지션들, 산업 종사자들의 역량이 근간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K-pop의 성장과 세계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와는 별개로 그 생산기지 격인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뮤지션들이 너도나도 유튜브로 뛰어드는 것은 우리 음악 산업의 생태계가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붕괴까지는 아니어도 선순환의 구조와는 한참 멀다. 음반 시장은 이미 오래전에 제 기능을 잃었고 그것을 대체한 음원 사이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순위 조작 의혹, 차트 100위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플랫폼과 창작자 사이의 수익 배분 문제 등 여러 잡음이 있다. 대중음악 산업에서 아이돌 음악의 비중이 너무 커진 탓에 그 외 장르의 뮤지션들은 자신을 알릴 기회조차 얻기 어렵고, 밴드들은 음악성과 상관없이 항상 해체 위기에 내몰려 있다. 대부분의 기획사들은 육성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스무 살 이상의 가수는 오디션을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솔로 가수는 음악성이 뛰어나도 외면 받는다. 해외에서 잘 팔리는 K-pop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뮤지션들은 적어도 민주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유튜브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물론 유튜브 세계에도 자본의 논리와 그로 인한 계급 차가 존재하며, 이것이 공평하기만 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유튜브가 민주적이라 여겨지는 이유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서 더 높은 성공의 확률을 보장하고, 자본의 체급에 따라 비교적 공정하게 수익이 배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유튜브에서는 창작자의 아이디어와 노력, 플랫폼에 대한 기여가 자본의 크기보다 중요한 성공의 조건인 것이다. 우리 음악 산업이 건전하게 운영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유튜브에 잘 적응하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뮤지션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음악을 계속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떻게 유튜브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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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통해 우리 뮤지션들의 노래가 전 세계에 알려지고, 우리 가수들의 끼와 재능, 프로듀서, 안무가, 연출가, 제작자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것은 무척 뿌듯한 일이다. 가요계 종사자들도 이 현상에 놀라워하며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간과해선 안 될 변화도 감지된다. 이제 기획사들은 유튜브 플랫폼에 맞춰 콘텐츠를 기획하고, 해외의 반응이나 평가를 다분히 의식하며 그들의 기대가 반영된 음악을 만들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해외 팬들이 정립한 K-pop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알록달록한 색감, 화려한 패션, 캐치(중독성)한 멜로디, 여러 장르를 섞어 쉴 틈 없이 달리는 구성과 자극적인 사운드 등이 그것이다. 제작자들은 K-pop에 대한 인식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성공에 대한 부담 속에 장르적 다양성과 음악적 개성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디 뮤지션들 중에는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뮤직비디오만을 발표하면서 국내 시장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노래는 한국 가수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외국 팝음악과 흡사하다. 그런 아티스트들은 해외 팬들에게 인기를 얻고 영상의 조회 수가 높아지면서 서서히 국내에도 알려지는, 이른바 가요의 역수입 현상을 주도한다. 최근 주목받는 ‘고갱(Gogang)’ 같은 가수가 대표적이다. K-pop이 하나의 음악 장르가 되고 여기저기서 회자되면서 ‘가요’라는 단어는 점점 흐릿하게 지워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간단하게 말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가요’가 우리 안의 정서까지도 담아내는 것이라면 K-pop은 그것에 훨씬 무감하다.
뮤지션이 유튜버가 되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좋고, 우리나라 가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것은 더 좋고, 그렇게 파생된 효과로 우리 대중음악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다. 그것을 가요라 부르든 K-pop이라 부르든 우리 뮤지션들은 전에 없는 주목을 받으며 상상도 못했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변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팝음악의 새로운 적자로 평가받는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었나. 우리 대중음악은 분명 빛나는 한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력이 망가진 내부 구조로 인한 필사적인 생존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뛰쳐나가 싸워야 하는 현실 때문에 모두가 유튜버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미래가 과연 밝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모든 기획사의 판타지가 돼버린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로 우리 가요의 고유한 특질들이 K-pop이라는 획일적인 틀 안에 구겨 넣어진다면,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누군가의 빛나는 재능과 아름다운 상상들, 그것들이 만들어낼 수 있었을 수많은 기회들은 결국 우리가 치러야 할 치명적인 대가로 돌아오지 않을까. 많은 뮤지션들이 유튜브 없이도 유유자적 음악을 할 수 있고, 대중과 깊이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건강한 생태계의 모습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생각이야말로 도태되기 딱 좋은, 옛날 가수의 촌스러운 몽상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