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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20. 2020

병든 마음

다른 아이를 데려가시면 안돼요?

 무릎냥 스킬 시전을 받고 나는 고양이 면접에서 완전히 완패했다. 작은 고양이에게 나를 간택해 달라고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원장 선생님과 정식 입양 날짜를 정하고 보호 날짜가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첫째를 입양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그날은 분명 토요일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회사를 디니고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약속은 주말로 정해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동물병원에는 점심시간 전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졸음을 참으면서 남편과 서둘러 나갈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동물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지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럴때 예감은 적중하는 법이다. 나는 원장님과 통화하고 나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장님에 따르면 오늘 아침에 아이를 목욕시키고 나서 상태가 조금 이상졌다고 했다. 그래서 피검사를 했더니 신부전이 의심된다고 했다. 자세한 설명은 전화로 하기 어렵지만, 지금 이상태로는 입양이 어렵다고 했다.


"다른 아이를 데려가시면 안 될까요? 이런 경우는 입양을 하셔도 예후가 좋지 않아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신부전, 아 고양이에게서는 자주 발생하는 병이다. 고양이의 주된 사망원인 중 하나라도 들었다.


내가 아는 지식의 조각들이 다시 머리를 스쳤다.

예후가 좋지 않다는 건, 아이가 죽는다는 건가? 그럼 내가 포기하면 아이는 틀림없이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러시면 1주일만 치료를 해주시고 경과를 봐주세요, 비용은 저희가 지불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원장님도 무슨 이유인지 금세 수긍을 하셨고,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정했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이불은 뒤집어쓰고 울기 시작했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이유는 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만났던 고양이가 눈앞에 어른 거리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파왔다. 내가 우는 소리에 나갈 차비를 하던 남편이 놀라서 다가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나를 위로했지만 흐르는 눈물이 넘추질 않았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슬펐는지 모르겠다.


'다른 아이로  데려가시면 안돼요?'

이 말 한마디가 너무나 가슴 아팠다.


아마도 그 고양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결심이 이미 나에겐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병이 든 사실이 내 마음이 병이 든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일주일 후, 병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수치는 많이 내려갔네요,  1주일 후에 다시 검사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데려가셔되 되고요... 그런데 처방 사료에 알레르기를 일으켰어요. 지금은 사료를 바꿔서 괜찮지만,  눈에 상처가 남았어요."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었다. 눈에 딱지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아이가 집에 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전화를 받고 다시 아이를 데려올 날짜를 정했다. 아이의 공고를 처음 본 것은 5월인데 날짜는 어느덧 6월에 들어서고 있었다. 현충일 다음날 운 좋게 연차를  낼 수 있었다. 아침에 동물 병원이 문을 열 때쯤 케이지를 들고 황급히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막상 아이를 보니 정말 눈두덩이 한쪽이 얻어맞은 것처럼 부어 있었는데,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내원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모든 것을 인지하고 다시 한번 정식 입양에 동의했다. 어차피 나는 면접에 합격했으니까 물릴 생각은 없었다. 선생님과 다음 예약 날짜를 잡고 신부전 이외에 필요한 검사항목 리스트를 체크했다. 그제서야 아이는 병원에서 나와 우리 집에 올 수 있었다. 2017년 6월 7일에 첫째가 드디어 우리 집에 입성한 것이다.


알레르기와 눈물자국이 심했던 첫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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