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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storyteller Jul 21. 2024

Vintage Louis Vuitton Wedges

웻지슈즈에 호의적인 자세를 가진 남성분들은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나 역시 웻지슈즈에 대해서는 마치 '벽돌' 같다는 일반 남성분들과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아찔한 스틸레토힐의 섹시함과 비교했을 때 이 투박하고 두꺼운 힐을 가진 슈즈는 도대체 왜 탄생한 것일까 의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영원히 입지 않을 거라 팔고 났더니 생각나는 옷이 있는 것처럼 이 슈즈를 보았을 때 웻지슈즈는 어글리하다는 편견은 사라지고 이렇게 선이 아름다운 슈즈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이 슈즈는 소피아 코폴라가 2010년 베니스 영화제에 착용한 루이비통의 제품이다. 당시 소피아 코폴라는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던 절친 마크 제이콥스의 뮤즈이자, 루이비통의 소피아 코폴라 백 런칭 콜라보레이션으로 그 어느 때보다 루이비통과 각별했다. 


 2010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소피아 코폴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루이비통을 착장하였다.


그녀는 2010년 베니스 영화제에 영화 <Somewhere>가 공식초청되어 방문하였으나 그즈음 루이비통과 협업하여 발표한 '소피아 코폴라 클러치'와 '소피아 코폴라 백'을 들고 다님으로서 홍보활동을 톡톡히 해냈다. 게다가 그해 황금사자상까지 수상함으로써 영화감독이라는 본업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이루어냈다. 아마 그 때문에 그녀가 몸에 걸친 모든 것들이 내 눈에 더 특별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 일정마다 바뀌는 다른 아이템들보다 베니스에서 그녀가 내내 착용하였던 저 웻지슈즈는 마치 그 위에 올라타면 나도 그녀처럼 우아한 감성을 지닌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비밀의 열쇠,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보였다.


나는 바로 롯본기의 루이비통 매장을 방문하여 저 슈즈를 찾았다. 슈즈는 인솔에 쿠션처리가 되어 있어 저 높은 힐에도 불구하고 착용감이 좋았다. 당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어서 구매하지 않고 매장을 나왔지만 저 슈즈를 손에 넣으면 소피아 코폴라처럼 될 것 같은 환상은 나를 며칠간 괴롭혔다. 결국 저 슈즈는 내 손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저 슈즈를 구입하며 정말로 갖고 싶었던 것 - 소피아 코폴라의 감각, 그녀의 화려한 배경, 성공한 커리어- 등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손에는 그녀를 흉내내어 구입한 웻지슈즈만이 쥐어져있을 뿐이었다. 명품 브랜드의 엠버서더로서 리무진 서비스와 항공편을 제공받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저 높이의 슈즈는 일상생활에서 신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한해 한해 갈수록 나와 소피아 코폴라의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뿐 저 슈즈 하나로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아! 나의 통장잔고만 더 낮아졌구나!, 을 깨달아가며 만약 저 순간 슈즈를 구매하지 않고 그 돈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등 더 좋은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후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저 시절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무엇을 어떻게 하며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할지 몰라 스스로 초라해졌던 내 자신이 너무 안되어서 그런 생각은 곧 접어버리고 현재의 나에 집중하기로 한다. 


분명 쓸데없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들에 갖는 마음에 대해 돌아보고 그걸 왜 아름답게 느끼는지 깊이 탐구해보고자 한다. 나는 리셀하여 큰 수익을 낼 것도 아니고, 트렌드를 만들어 나가는 인플루언서도 아니면서 왜 이토록 쓸데없이 지나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가? 


Giorgio Armani의 빈티지 탑과 스커트. 스팽글 장식으로 간결한 디자인이지만 움직임에 따라 빛이 반사되어 단정하게 화려하다.


함께 매치한 의상은 루이비통을 선택한 소피아 코폴라와 달리, 나의 취향을 온전히 반영하여 매쉬소제가 레이어드된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의 빈티지 탑과 스커트를 골라보았다. 


비치는 소재가 겹쳐진 스타일은 90년대 미니멀리즘 광풍 시절, 한정된 틀 안에서 실험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디테일이었다. 프라다, 캘빈클라인 등 당시의 인기 하우스들은 여기에 기껏해야 스팽글이나 비즈 장식을 추가하는 정도에서 선을 긋는 절제미가 있었다. 따라서 지금의 삼각로고가 큼지막히 박힌 프라다의 제품들을 보고 있자면 품위라는 것이 사라진 이 시대의 트렌드를 새삼 체감한다.


그래서 이 오래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빈티지 셋업을 해외 온라인 마켓에서 발견했을 때, 트렌드에서 소외된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았으나 100달러 아래의 금액에 구입하고 싶었기 때문에 몇 주 더 기다려 구입하였다. 다행히 지나간 유행 상품은 프라다의 삼각로고가 달린 제품처럼 빨리 팔리지 않았고 무사히 내 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여전히 이 슈즈가 내게는 지나치게 과분한 제품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 1년에 한 번도 신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즉 구입 후 거의 신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다) 언젠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신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 소피아 코폴라아 아니어도 괜찮다는, 나 스스로 충분히 좋다는 마음이 그때 거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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