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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storyteller Dec 25. 2020

원데이 엣어 타임

one day at a time

분명히 웃긴데 왜 자꾸 보면서 울지?


넷플릭스에서 시즌 3까지 전개하고 캔슬된 시트콤 <원데이 엣어 타임>의 주인공은 여느 시트콤의 주인공과는 좀 다르다.


그녀는 쿠바계 미국인이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다녀와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함께 파병을 갔다가 똑같이 PTSD와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남편과 이혼해 싱글맘으로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렇게 소개하면 이 시트콤이 굉장히 어두울 거라는 인상을 주기 쉽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음악이 나오면 아니 심지어 음악 없이도 춤을 추고 시끄러울 정도로 말이 많고 열정과 사랑에 불타는 쿠바인 패밀리는 분명히 유쾌하고 흥이 넘치고 유머러스한데 왜 자꾸 내 가슴을 울리는 걸까?


코르셋이 꽉 조여진 할머니 리디아부터 억척스럽게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페넬로페, 그리고 사이좋은 남매이면서도 너무도 다른 알레나와 알렉스까지 3대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쿠바인의 혈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가 분명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결코 같은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물론 세대 차이는 존재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도 말도 오가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되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세상은 쉽게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한 행동이나 상황, 해석 등을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편인데, 이 시트콤은 그러한 인물들과 상황들로 넘쳐나서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여성을 꽃이라 생각하고 아름다운 외모야말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무기라 생각하며 아무에게도 민낯을 보여준 적이 없고 남편에게 민낯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릴 정도의 할머니 리디아가 오히려 쿨하게 손녀의 커밍 아웃을 받아들이거나, 사회문제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과 지성으로 가장 떳떳하게 라틴계 이민자로서 겪는 인종차별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알레나는 오히려 하얀 피부로 인해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어 자신의 동생이 밖에서 인종 차별을 겪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 이유가 충분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신념을 꺾기도 한다. 물론 적절한 타이밍에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때가 많지만 적어도 깨달았을 때 자존심을 세우며 버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들처럼 충분히 실언을 하고 무례하기도 하며 소동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언제나 이 사랑스러우면서도 결점 많은 쿠바인 패밀리의 곁에는 기꺼이 그들의 가족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들에게 관심 없는 돈 많은 아버지 덕분에 5명의 어머니를 두고 온갖 중독의 이력을 가진 페넬로페 가족이 사는 아파트의 건물주 슈나이더나 딸에게 고소당한 페넬로페가 일하는 병원의 원장 닥터 버코비츠 등 자신의 가족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이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족의 정을 느낀다.


나 역시도 내 가족에게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슈나이더나 닥터 버코비츠처럼 어떤 면에서는 누가 봐도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들도 있다. 그런데 이 시트콤을 보면서 나 역시도 내가 스스로 포기했으면서도 어느 한편으로는 끝까지 놓지 못하는 희망의 한 줄기를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 꺼져버려라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이런 가족이 있었으면... 혹시 우리 가족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얘네도 사실 보면 콩가루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예쁘게 살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희망.


만약 내가 이 쿠바인 가족들처럼 해보면 어떻게 될까? 내가 절대 바꾸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던 신념도 가족을 위해선 버리고, 나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든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 가족도 이런 시트콤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기엔 내 상처가 너무 깊고 크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사실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총기 소지, 인종 차별, 성차별, 잘못된 가정교육, 부모의 희생 등 그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에 몇 번이나 시즌 2까지 보면서 눈물을 참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들이 그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하나의 가족으로 서로를 지지해줄 때 그 모습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고작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 있는 내 가치관이나 신념을 지키는 일인지, 완벽할 수 없는 정신 상태을 스스로 제어하는 것인지 지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잊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숱한 결점 덩어리인 나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하고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가족을 갖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라는 톡을 보낸 아버지에게 Merry Chirstmas를 보낸 후 이 시트콤의 링크를 보내드렸다.


아버지도 이 시트콤을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며 듣고 나서 헤어질지 말지 결정하라는 페넬로페. 자신이 항우울제를 복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남자 친구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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