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Nov 04. 2024

죄수밥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고. 하지만 그 말씀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그래도 너는 편한 곳에 있었으면 ‘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자식만큼은 안전하고 편안한 직장에서, 가능하다면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 게 어머니의 진심이었다.


  그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교도관이셨던 아버지는 매일 아침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묵직한 철문 소리가 울리는 교도소로 출근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오신 월급을 때때로 ‘죄수밥’이라고 부르셨다. 그 말에는 험한 죄수들과 마주하며 위험을 감수해 가며 벌어오는 돈이라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실 때마다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도하셨다. 어머니의 하루는 늘 아버지의 무사 귀가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시작되었고, 끝났다.


  그렇게 자란 나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비교적 안정된 직업을 선택했다. 먼지를 마시는 건설현장도, 아버지처럼 긴장감 속에서 죄수들을 지켜보는 교도소도 아닌, 세무공무원이 되었다. 어머니가 바라셨던 깨끗한 사무실에서 서류와 컴퓨터를 다루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무공무원이라는 일이 주는 무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묵직했다. 나의 일은 남의 돈을 거두어야 하는 일이다 보니,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하는 이는 드물었다. 고지서를 들고 가거나 세무조사를 위해 사업장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고, 때로는 그저 나를 보고 한숨을 쉬는 이들을 마주하거나, 원망이 담긴 눈빛을 견뎌야 했다.


  물론, "세금은 나라의 근간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은 맞다. 그 당위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내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를 덜어주지는 못한다. 가끔은 생각해 본다. 과연 이것이 어머니가 원하셨던 '안전하고 편안한 삶'일까? 몸은 안전할지 모르나 마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죄수밥'을 걱정하셨지만, 나의 '세금밥'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건 맞다. 다만, 모든 직업에는 각자의 무게와 고충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는 죄수들의 갱생을 도우며 사회의 안전을 지키셨고, 나는 세금을 거두며 국가 재정의 건강을 지켜간다.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해한다. 어머니의 걱정은 단지 직업의 모습이 아닌,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그리고 깨닫는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그 안에는 감내해야 할 무게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 무게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자부심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세금을 계산하는 일을 위해 일터로 향한다. 가끔은 무겁고 버거운 직업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어쩌면 진정한 안정감은 직업의 외형이 아닌, 자신의 일에 대한 믿음과 자긍심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