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팀원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들의 능력을 끌어내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아왔다. 회의실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서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각자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때로는 격려의 말을 건네고 때로는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아이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서툰 아버지일 뿐이었다.
아이의 시험지가 내 손에 놓였을 때, 마치 낯선 언어로 쓰인 편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빨간 펜으로 그어진 X표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알 수 있었을 문제들, 조금만 신경 썼다면 맞힐 수 있었을 답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있었다.
저녁 열두 시, 하루의 마지막 시간이 우리만의 시간이 되었다. 개념을 함께 읽고, 문제를 하나씩 함께 풀어가는 그 시간들. 아이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다만 문맥이라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며, 나는 비로소 그 작은 마음의 지도를 읽기 시작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 아이와 나 사이에도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아이가 말했다.
"아빠, 이제 학원 안 다니고 직접 공부해 볼게요."
그 말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진정 바라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택하는 아이의 모습. 그것은 마치 새장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처럼 아름다웠다.
국어는 삶의 나침반 같은 과목이다. 전체의 맥락을 읽어내고, 논리의 실을 따라 답에 가까운 길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은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며 마주할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독서의 의미를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책 속에는 수많은 인생이 담겨 있고,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 번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라고.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마음을 넓혀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문제풀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며 발견한 것은 단순히 공부 방법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이해하고 싶던 첫째 아이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