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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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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Sep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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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만 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무모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무례할 만큼 당당한 어조로 그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응, 난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1. 

언제나 여행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여행도 삶도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살기보다는 구체적인 철학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잘 생각해보고 계획해봐. 그리고 그 첫걸음부터 차근차근 만들어가면 되는 거야.라고 이야기했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누가 봐도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체 어떻게 하면 내가 당신들처럼 될 수 있는 거냐고 무슨 기회를 잡아야 당신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 거냐고 묻곤 했다. 

어떤 사람은 “기회를 잡는 것보다 중요한 건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또 어떤 사람은 “타고나길 다르게 타고난 사람은 언젠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 이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2. 

낯선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내가 꽤나 동경하던 일이다. 어린 나는 어른의 나를 상상하며 현실의 낯선 삶을 잘근잘근 씹어 삼킬 수 있었고 때로는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의 벽과 다른 이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덫과 같은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치부해 버릴 수 있었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무엇도 가능하거나 또는 무엇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극적으로 다른, 모든 것이 너무 달라 감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침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이 저녁이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되어 생각과 마음을 지배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나는 나약한 존재라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그저 숨을 쉬고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고 뻔한 대학에 가고 뻔한 남자를 만나 뻔한 아줌마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빠지곤 했다. 그 시절에는 여행도 꿈도 미래도 불투명한 그저 그런, 봄날에 부는 먼지바람 같은 잿빛의 삶을 생각하곤 했었다. 


3. 

나의 삶은 생각만큼 변화하지 않았다. 딱, 생각한 만큼 살아갈 수 있었고 살고 있었다. 생각한 수준과 노력한 대가에 합당한 대학에 진학했고 운이 좋게도 어릴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 같았던 음악을 나의 전공으로 삼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의 전공을 신기해하며 어떻게 그런 전공을 가질 수 있었는지 묻곤 했었다.(특히나 미팅 장소에서. 유독 공대생들은 음대생들을 신기해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난 나는 음악이 워낙 익숙했고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클럽활동으로 들어간 합창부에서 우연히 선생님 눈에 띄어 독창 대회에 나가면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졸업한 뒤 들어간 중학교에는 합창부가 없고 현악부가 있어서 첼로를 시작했고 첼로를 열심히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게으르게 하지도 않았지만 비싼 악기를 살 재간이 없어서 고등학교 초반에 작곡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그러다 보니 피아노, 화성학, 작곡, 시창, 청음 레슨을 받으며 입시를 준비했고 어쩌다 보니 그걸 전공으로 대학에 왔다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 도도한 시절을 지냈던 나는 뭐, 음악을 워낙 좋아했는데 작곡가들의 의도와 배경 그리고 음악의 전반적인 부분을 배우고 싶어서 작곡을 그것도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어요.라고 말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렸고 지나치게 겁쟁이 같던 시절이었다. 아마 당신이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본다면 누구세요?라고 말할 만큼 인상도 생각도 표정도 너무나 다를지 모른다. 


4. 

어쨌든 난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꽤 잦은 이사를 했고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볼 수 있었고 개척자 정신을 지닌 아빠와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엄마와 함께 세상에는 두려운 것이 하나도 없고 나라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한 것처럼 현실의 난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울보였고 만약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면 금방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변명거리와 한계를 미리 계산하고 결론지어 버리는 사람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춘기 시절의 학생들은 으레 그렇듯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며 본인의 자아를 찾아가기에 나 역시 그런 시기도 겪었지만 결론적으로 봤을 때(현재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친절하진 않아도 모범적이고 항상 칭찬을 받으며 그 칭찬에 안주하지 않고 늘 성장하려고 노력하던 친구로 인해 나 역시 함께 자라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미흡하고 불투명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여전히 방황하는 사람으로 자라나 몸만 어른이고 영혼과 생각은 어린 아이만도 못한 그런 사람으로 멈춰있을지도 모른다. 


5. 

지난 여행에 관한 글을 써야 해서 어떤 글을 써볼까, 뉴욕? 시카고? 이탈리아? 페테르부르크? 휴스턴? 을 생각하며 결정하려던 찰나 삶을 여행처럼 살고 싶다고 누누이 말하던 10년 전의 내가 생각났다. 그 시절의 나는 삶을 여행처럼 살고 싶다. 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런 모습을 현실로 풀어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로또 당첨? 여행사 직원? 스튜어디스? 무조건 유학? 어학연수? 파일럿의 아내? 외교관의 아내? 등등을 잠깐 생각하긴 했었지만 나는 언제나 본질을 알고 싶어 했고 무엇을 시작 하든 본질, 본래의 모습과 이유를 알 수 없으면 아무것도 내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내 본질에 사로잡혀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꽤나 낯선, 날 선 나의 본질, 본성을 만났을 땐 환호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담대하고 겁이 없었으며 직접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무모함까지 지닌 어쩌면 무식한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본질을 찾은 뒤 세상에 존재하는 나의 이유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이 시대에 태어난 이유와 이 시절에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막연하지만 뻔뻔하게 생각했다. 무엇이든 시작해야 한다는 말도 숱하게 들었지만 나는 시작하기 전에 시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6.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보았다.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열정적으로 덤벼들었다. 일도 사랑도 사람도 내가 원하는 만큼 만나고 알아가곤 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상황으로 인해 나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억지로 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억지로 새벽까지 술을 마시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내가 싫다는 것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모든 선택은 나로부터 시작했고 책임 역시 내가 져야 했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답습한 채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며 살아가는 것과 편협한 것을 깨기 위해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흔드는 것은 때로는 버거운 일이었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7. 

물론 평범하고 일반적인 누구나 원하는 그런 모범적인 사람들은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 나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고 때론 내가 하는 말들은 엉뚱한 범주에 드는 그런 것들이었다. 혹독하게 말하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나를 알아봤고 죽은 자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을 말해도 이해되지 않고 그저 얼음 위에 누워있는 고등어의 눈처럼 희미한 빛을 띠고 있는 자와 대화해본 경험이 있다면 죽은 자의 의미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고등어조림을 위한 고등어를 살 때에는 죽은 고등어의 눈을 보며 싱싱한지 아닌지 생각하면서 정작 같은 종인 인간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눈빛을 보며 생사를 가늠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

나는 살아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너무 살아 있어서 파닥거리는 바다의 기운이 느껴지는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것도 좋고 지난 뉴올리언스의 기억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생굴도 아주 좋아한다. 날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어떻게든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어떻게 바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러하다. 나는 언제든 살아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항상 살아있어야 했다. 내가 죽어 있으면 어찌 살아있는 인간과의 대화를 즐길 수 있을까? 사춘기 시절이 지난 뒤, 그리고 뻔한 대학생활의 처음 1년이 지난 뒤 나는 내가 죽어 있음을 인지할 수도 없을 만큼 죽어 있는 사람이었다.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이고 대화를 하고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심연에 가라앉은 작고 볼품없는 그저 그런 생명체에 불과했다. 




9.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가 휴학을 하고 유럽 여행과 워크 캠프를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휴학을 하고 돈을 좀 번 뒤 유럽 여행을 하겠다고 내게 말한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생각도 없던 나는 그래? 그럼 나도 갈래. 라며 무작정 그녀와 함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를 기다리고 함께 유레일 패스와 비행기 티켓을 사고 여행할 나라를 정하며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낸 뒤 생소하지만 저렴했던 베트남 항공(취항한 지 얼마 되지 않은)을 타고 우리는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프랑스 남부로 기차를 타고 가 3주 간의 워크캠프(봉사활동)를 마친 뒤 런던,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다시 파리 그렇게 무작정 기차를 타고 걷고 또 걸어 다니며 세상을 구경했다. 

그 세상은 내가 아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무수하게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다들 자신만의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나는 작았고 불완전했으며 세상을 처음 보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의 영혼과 마음이 깨어난 순간은 여행하던 그 순간들이었다. 어느 누구도 무엇도 나를 깨운 적 없었지만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던 그 시절, 모든 것이 낯설고 부자연스럽기만 하던 그 순간 희미하지만 지속적으로 누군가가 잠들어 있던 나의 본능과 본성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10.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간다. 휴가가 있으니 써야지. 친구가 갔다 왔는데 거기 좋대. 그냥 무작정 가보고 싶었어. 거기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데? 그냥 비행기를 탈 때가 된 것 같아!  등등의 이유로 떠난다. 사진을 찍고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앱을 통해 검색을 한 뒤 평가가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한국보다 비교적 저렴한 브랜드에서 쇼핑을 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실시간으로 본인의 상황을 업데이트하며 여행을 즐긴다. 물론 나도 일정 부분은 그들과 비슷한 여행을 한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샤넬백을 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치부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방 안 가득 먼지와 답답한 공기가 가득 차 있을 때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는 것. 바로, 인생의 환기를 위해 여행은 필요하다. 사실 여행은 피곤하고 지루하기도 하며 한 없이 무료하기도 하고 때때로 즐겁다. 하지만 여행을 가기 전 설레는 마음과 여행에서 돌아온 뒤 기억 속에 존재하는 막연한 행복의 기운이 게으른 우리를 일으켜 세워 여행을 가게 하고 돌아오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1. 

나는 삶을 여행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산책하듯 삶의 여러 부분을 음미하고 찬찬히 둘러보며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남들과 다르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자 했었다. 마음속의 무언가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네가 하고자 하는 그것은 남들도 그러했듯 너 역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때 두려움과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어느 누가 나를 믿을 수 있을까? 


12. 

나는 흔한 자기 계발서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내가 아무런 영향력 없는 지금의 시간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내가 해 온 인생의 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듯 읊조리고 있는 것뿐이다. 누구나 쉽게 말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보니 됐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막연한 꿈을 꾸었고 그 꿈을 그저 잘 간직했고 마음에 품고 있던 그것을 조금씩 현실로 꺼내다 보니 현실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10년 전의 나를 만나 너, 10년 뒤에는 오스틴(Austin, TX)에 있는 쉐라톤 호텔 로비에 앉아 하루 종일 네 과거에 대한 글을 쓰게 될 거야. 네게는 진부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 어때? 믿을 수 있겠어?라고 말하면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아마 흐릿한 눈을 끔뻑거리며 뭐라고? 오스틴? 그게 어디야? 사람 이름이야?라고 물을 것 같다. 마치 도라에몽이 서랍에서 튀어나와 진구(남자 주인공)에게 네 미래에 대해 말해줄게. 지금처럼 (용기도 없고 공부도 안 하고 맞고 돌아다니는 바보처럼) 이렇게 살면 너는 이런 여자랑 결혼할 거야. 하지만 만약 네가 너답게 살면(노력도 하고 용기도 내고) 네가 좋아하는 그 아이와 결혼할 수 있어!라고 말할 때 안경 속 눈동자가 빙빙 돌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13.

지난 7개월은 나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순간이었다. 내 손가락 위에서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보다 더욱 반짝이고 상상한 것보다 더욱 상상 같던 시간들. 그러한 기억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은 세워지고 견고 해지는 것 아닐까? 

나는 이제 십 년 뒤의 나를 생각해본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입고 누구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게 될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값진 사랑을 살고 있기에 더욱 풍성한 사랑으로 삶을 채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무엇이든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는 것, 구체적으로 무엇을 안다는 것조차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고로 나는 현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인간임이 드러났다. 그저 지금 존재한다는 것이 어찌나 감미로운 것인지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매일의 삶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러한 삶을 살고 있고 그러한 축복을 매 순간 경험하고 있다. 


14.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이곳에 개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분명 이곳은 여행을 위한 공간이며 여행을 한 뒤 그곳의 정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으레 당연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나와 같은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이 여행 오는 곳에 살고 있다. 그들은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고 친구를 잠시 만나고 나면 다시 내가 태어난 땅, 나의 부모가 있는 나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남아 그들과의 기억을 곱씹으며 나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삶을 여행하듯 산책하듯 살아보고 싶다고 오래도록, 어쩌면 십 년이 넘도록 이야기하던 스물의 나는 너무나 낯설지만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현존하는 이곳에서 말하고 생각하고 바라던 대로 살아가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조절할 수 있는 것을 가려내는 힘이 분별력이고 그것에 발휘하는 능력이 용기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들을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고 만용을 부리거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고유한 임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환경을 탓하거나 자신의 하찮은 일들을 합리화하여 설명한다. 

‘창조’란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발견하고 그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 몰입하는 행위다. 그런 사람의 유일한 경쟁자는 자신이다. 창조적인 인간은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고유한 한 가지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피타고라스, 단테, 루터, 베토벤,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간들은 자신을 감동시킬만한 일생의 과업,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거침없이 세상이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반짝이는 마음의 별이 저 하늘의 별들보다 아름답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별이었다.

배철현, 묵상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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