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글을 쓴 지 5개월이 지났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지난 5개월은
글은커녕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우선,
10개월을 품고 있던 아가가 세상에 태어났다. 뱃속에 있을 땐 어떻게든 보고 싶던 그 얼굴이
눈앞에 매일매일 눈을 뜨고 살아 있다는 사실은 신비하고 오묘한 일이다.
지난주에는 100일이 지났다.
작고 꼬물거리던 신생아 시절을 한참 벗어나 어느덧 옹알이로 말도 통하고 감정 표현도 부쩍 늘어난
유아가 된 아가를 보며 인간 아니,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먹고 자고 (조금) 놀고 싸고를 반복하면서 사이사이 고개를 들어 엄마와 아빠 얼굴을 익히고
싫을 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좋을 땐 소리 내어 웃을 줄 아는 그런 사람.
고개도 꽤 힘이 들어가 안고 돌아다니면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세상을 관찰하는 그런 사람.
좋아하는 사람(외삼촌)이 오면 마음껏 웃고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 소리 내는 그런 사람.
걷지 못해도 발바닥과 다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일으켜 세우면 꽤나 오래 서 있을 줄 아는 그런 사람.
배고프면 울지 않고 칭얼거리고 잠이 오면 눈을 비비고 아침이 되면 기지개를 켜는 그런 사람.
엄마 쭈쭈가 아닌 건 절대 먹지 않고 대여섯 시간도 기다릴 줄 아는 그런 (고집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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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이 지나자마자 돌봐주시던 외할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밤새 아빠랑 엄마랑 같이 자다 보니 새벽 세 시 이후엔 너무 자주 깨
아빠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먹지 않는 분유를 먹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래도 하루에 한두 번은 시원하게 먹던 분유를 언제부턴가 거부하기 시작했고
육아 휴직은 끝났지만 집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나는
시간이 되면 아가를 안고 맘마를 먹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모유 수유하는 아가들의 특징이
밤에 오래 잘 수 없다는 것.
덕분에 우린 100일의 기적이 아니라 두 시간에 한 번씩 깨는 100일의 기절을 맛보았고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내가 안쓰럽다며 다시 밤에만 분유를 먹여보자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아가는 분유는 격렬하게 거부했고 저녁에만이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제 아침부터 시작된 분유 프로젝트는 1시쯤 외삼촌의 애교와 노래와 춤에 홀린 채
분유를 삼키는 아가를 보면서 평화롭게 마무리되나 싶었지만
이게 웬걸, 먹을 때마다 울고 배가 불러도 잠을 못 자고 계속 칭얼거리고 심지어 새벽에는
2시에 깨서 (모처럼 5시간 넘게 저녁잠을 잤다) 두 시간 동안 놀다 겨우 잠들었다..
엄마품에 안기면 더 운다고 하길래 안아 주지도 못하고 아빠품에서 울다 지쳐 겨우 잠든 아가를 보며
겨우 백일 지난 아기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내 몸 조금 피곤한 게 뭐 대수라고, 조금 더 크면 더 잘 자고 잘 먹고 그렇겠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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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하나 키워내는 게 이토록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쏟게 되는 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편이 있으면 될 거라고, 우리 둘이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아가 키우는 데
엄마 말처럼 손이 많을수록 좋다.
다행히 우리 옆으로 유학 온 외삼촌을 좋아하는 아가덕에
주말이면 외삼촌에게 맡기고 우리는 한숨을 돌리고
벌써 수영도 하고 발차기도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도 두드려보며 그렇게 지내고 있다.
낳기 전에는 어떻게 낳을 지만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놀아주지, 어떻게 재우지, 어떻게 키우지, 어딜 가야 하지..
정말 사소한 것조차도 찾아보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의 무지함이 빚어낸 많은 것들이 그대로 아가에게 간다는 사실에
가슴에 올려놓고 재우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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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삶, 인생, 철학, 예술, 상승, 목적, 나
그러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간 듯하다.
이제는 아가를 잘 키우기 위한 고민, 미래를 위한 고민, 오늘을 살아내는 고민,
사실, 고민이랄 것도 없는 상념들 뿐이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란 나는
내 아이 역시 나처럼 그렇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잘 자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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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이벤트로 거실에서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
아침에 일어나 울다가 결국 엄마 쭈쭈 먹고 웃으며 잠든 아가의 얼굴.
그 둘의 얼굴을 보며 나는 오늘도 웃고 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