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에게 사귀자고 세 번 말했고 모두 거절당했다.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 발을 디딘 나보다 7살 연상인 그녀는 좀 더 안정적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지 싶다. 그 마음을 나는 개의치 않아했다. 조금은 무리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사랑이란 이름의 이기심은 많은 걸 외면하게 했다. 그래도 역시 세 번이나 거절당하니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마음을 정리하려는 때야 그녀는 말했다. "우리 연애할까?"
그녀의 마음은 2년 동안 잘 알지 못했다.
B는 원래 내게 전화번호를 알려줄 마음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강의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던 나의 기세에 휘말려 거절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무튼 그녀는 번호를 알려줬고 우리는 짧은 연애를 했다. 같은 교양수업을 듣던 그녀가 빈 교실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내겐 참 예뻐 보였다. 그녀의 곱슬머리에만 햇빛이 비추는 듯했다. 그때의 교양수업이 아마 인문학이었던가.
중학교 내에 있는 한 언덕에서 C에게 고백했었다. 언덕 밑에는 키 작은 조경수로 '지덕체'란 글씨를 꾸며놓은 언덕이었다. 우린 고등학생이었고 불꽃이 튀어 오르는 막대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친구들도 있었는데, 고백할 땐 그들이 주위에 없었으므로 아마 자리를 피해 줬던 게 아닌가 싶다. C에게 사귀자는 말을 내뱉고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정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녀는 대답은 하지 않고 웃어 보이기만 했는데 나는 많이 조급해하며 물었다. "좋다는 거야? 그런 거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는 데도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학교 앞 놀이터에서 D를 기다리곤 했다. 놀이터에선 학교 정문이 내려다보였다. 거기에서 D가 언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지도 모르면서, 무슨 말을 건네지도 못할 거면서 그냥 기다렸다. 손에 실내화 가방을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정문으로 나오면 D의 샛노란 머리를 찾았다. 나는 매번 그녀의 머리를 찾아냈다. 그러고 나선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다시 생각해봐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과는 모두 헤어졌다. 만남을 이어가지 못해 특별한 헤어짐 없이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많다. 사실 나는 그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들을 좋아했다. 좋아한다. 나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지만 겁 없이 다가가기도 했던 것 같다. 어떨 때는 아플 걸 알면서도 말을 걸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좋아 동생이 좋아?"
아이였던 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둘 다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 대답이 성에 안 차 며칠 동안 어머니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결국 어머니는 둘 다 싫다고 소리쳤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며칠을 울고 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