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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Aug 13. 2024

왜 죽은 여름을 한탄하는가

엘라 윌러 윌콕스의 詩 읽기


  왜 죽은 여름을 한탄하는가 —

     앞으로 올 여름을 생각하자

  장미꽃은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붉게

  다시 피어나리니

     앞날을 내다봄은 언제나 유익하다.

     

  왜 즐거웠던 지난 날을 슬퍼해야만 하는가 —  

     즐거운 앞날을 내다보자

  바닷가에는 새 물결이 밀어올린 새 조가비가 즐비하다

  지금의 기쁨을 지난 것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그때의 기쁨이 달아나면 웃고 말자

     

  가 버린 사랑을 위해 죽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다가올 사랑을 위해 살아가자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바닷가에 물결이 밀려나갈 때마다 슬퍼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러니 달아난 한 해를 노래하지도 말자 —

     소중한 추억을 들고 달아났을지라도

  여름과 즐거움과 사랑이 죽은 듯하여도

  사랑은 여전히 달콤하고 장미꽃은 여전히 붉으리

     당신과 나를 위해 피어날 때면

     

  _ 엘라 윌러 윌콕스 <왜 죽은 여름을 한탄하는가>

  

| 낭송본 링크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8522/episodes/24982058​ ​

||| 입추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무더운 나날입니다. 올해 여름에 새롭게 만난 인연들의 얼굴이, 지난겨울에도 만났던 얼굴이 밤낮으로 떠오릅니다. 여름 게슈탈트 체험집단을 다녀오고 나서 며칠이 지났는데, 아니 지난겨울 게슈탈트 체험집단을 다녀오고 나서도 한참을 지났는데, 못난 저는 ‘아직 일상과 현실의 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또다시 올라오곤 합니다. 저의 지난날에 대한 수많은 기억들, 주로 아프거나 슬픔을 느끼게 하는 기억은 과장되고, 왜곡되고, 삭제되곤 합니다.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수시로 밀려왔다 사라집니다.


미국의 시인 엘라 윌러 윌콕스는 ‘왜 죽은 여름을 한탄하는가’를 묻습니다. 즐거웠던 지난날이 사라져 감을 슬퍼하지만 말고, 지금 이 순간 다시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나날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가 버린 사랑을 위해 죽지 말고, 다가올 사랑을 위해 살아가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랑을 피어나게 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름은 늘 새롭지만, 그 여름을 살아가는 내 마음이 죽어 있을 때에는 한낮의 무더위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마치 여름이 잘 못 한 것처럼 내 자신의 과오를 숨기면서, 반복되는 나날을 힐난하고 비난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새롭게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죽은 여름에 대한 생각에서도, 앞으로 남은 여름에 대한 생각에서도 모두 빠져나와야겠지요. 지금 이 순간에 사랑이 피어남을 알아차리고, 사랑이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순간에 접촉하고, 사랑이 새롭게 펼쳐질 수 있도록 놀며 춤추고 실험하듯 살아가는 게 좋겠지요? 제 머릿속 상전은 이처럼 부드럽게 저를 다그치고 있지만, 몇 해 전부터 이미 죽어버린 봄날처럼 제 어린 하인은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이 여름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쓸모없는 생각의 흐름을 기록하다가, 그래 ‘이 헛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내가 아니지, ‘이처럼 생각에 빠져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진짜 나이지’라며 아주 짧은 순간 깨어나, 지금 이 순간 펼쳐지고 있는 삶을 그저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는데도, 듣지 못하고 있던 나의 귀먹음을 알아차립니다. 바르지 못한 자세로 인해, 불편해하고 있는 허리가 내지르고 있는 비명을 뒤늦게 듣습니다. 방안 여기저기,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쌓여있는 책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의 눈멀음도 알아차립니다.


생각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고, 시원하지만 좁은 방안이 아니라, 조금 덥더라도 방을 나서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옵니다. 허전한 마음을 감추려 물건을 사 모을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온기를 전하기 위해 용기 내고 싶단 마음이 다시금 올라옵니다. 이 마음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저를 내맡겨 봐야겠습니다. 죽은 책이 붙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산책을 나가야겠습니다.


2024.8.13. 화요일 오후의 담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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