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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승범 Dec 08. 2015

우아한 말러를 만나다

마르쿠스 슈텐츠와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와 서울시향의 첫 입맞춤, 우아하고 노련한 슈텐츠의 리드 속에 무대에선 '품격' 이란 단어가 몽글몽글 피어나 관객을 향해 달려간다



또 말러 교향곡 1번?



클래식을 좀 들어본 사람들은 말러 교향곡 1번하면 애증이 있을테다.


일단 많은 이들의 말러 입문곡이기도 하고, 베토벤의 그것과 같이 어둠에서 환희로가는 듯한 느낌이 가장 강한 곡이기 때문에 대중들이 좋아하는 편이다.


말러 곡들이 난해하다지만 그래도 가장 대중적일 수 있는 곡이 교향곡 1번과 5번이기에 다른 곡들에 비해 실연에서도 많이 연주되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횟수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2015년 한 해만 해도 말러 교향곡 1번은 정말 많이 무대에 올라갔는데, 내년에도 많은 악단에서 말러 1번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와 내년에 연주되었고, 또 연주될 말러 교향곡 1번 리스트를 잠깐 살펴보자.


1. 2015/05/26 - 북독일교향악단(지휘: 토마스 헹엘브로크)
2. 2015/11/21 -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지휘: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
3. 2015/12/04 -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 : 마르쿠스 슈텐츠)
4. 2016/01/28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 리카르도 무티)
5. 2016/07/08 -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 :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내한하는 주요 오케스트라와 (국내 대표격인) 서울시향의 레파토리에 이렇게나 많이 말러 교향곡 1번이 자리잡는 것에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2014년에도 런던 심포니 등 많은 악단에서 말러 1번을 서울에서 연주했다)


2016년 1월 내한 예정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또 늘 그렇듯이 그렇게
쿵쾅되며 끝나겠지



개인적으로 말러 교향곡 1번을 좋아한다. 오밀조밀한 목관들의 향연과 환희가 넘치게 하는 금관들의 존재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엔돌핀 다이돌핀 할 것 없이 온갖 돌핀들을 일깨우는 곡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말러 교향곡 1번을 들으면서 '와 색다르다', '독특하다' 라는 말을 꺼내본 적이 없다. 그냥 블루미네라는 삭제된 악장(mov.)을 연주 하는지 여부가 독특함을 판갈음하는 정도 였다나 할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 원전 스타일 연주 등으로 다양한 해석을 감상할 수 있는 작곡과와 다르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말러는 늘 비슷한 말러였다.

'늘 그렇듯 쿵쾅대며 사람들의 환희를 이끌어내며 끝날거야' 라며 큰 기대 없이 객석에 앉았다.




아, 황홀한 밸런스
오, 지휘자 슈텐츠



연주가 시작됐다. 보통의 연주보다 서주의 베이스와 목관군의 템포가 꽤나 느리다. 처음에 느릿느릿하면서 나중에 템포 당기려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연주를 들어나갔다.


먼저 놀랐던 것은 보통 매우 세게 거칠게 연주되며 강조되는 관악기들의 사운드가 부드럽게 들린다는 점이었다.


1악장 무대 바깥에서 연주한(악보에 지시되어있다) 트럼펫 소리도 지금 껏 듣지 못한 아주 좋은 밸런스를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휘자가 얼마나 말러를 이해하려하는지, 무조건 쿵쾅되기만 하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마르쿠스 슈텐츠, 서울시향 2015/12/04



내가 잘못 들었나?
도대체 뭐야 이거



슈텐츠의 익살이 어머어마하다는 것은 1악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1악장 코다 전 총주가 되는 부분에서 단원들이 연주와 동시에 '하하하' 웃는 것이 아닌가?


현대음악에선 종종 연주자들의 웃음소리, 말소리 등등이 삽입되기도 하지만 말러 교향곡에서 이런 모습을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가 이전에 음반, 영상물에서 연주한 말러 교향곡 1번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관객들 상당수가 '내가 잘못들었나' 싶었을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 역시 알쏭달쏭하면서도 흥미 있게 더욱 곡을 마주하게 되었다.

슈텐츠의 말러 싸이클 음반 중 교향곡 1번, OEHMS



아 우아하다
우아해!!



그의 말러는 우아했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가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뛰어가다가 마지막 발걸음은 사뿐히 내딛는 것 같다.


2악장 1주제의 마지막을 쿵 내려찍지 않고 살포시 어루만져주는 해석은 처음봤다. 훤칠한 키에서 나오는 젠틀함과 섬세함이 아주 돋보인 지휘자가 점점 빛이 나 보였다.


여태 껏 말러를 들으면서 우아하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고, 작은 음 하나하나까지 소중히 여겨 살려내는 지휘자 덕에 수백번은 들었을 말러 1번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젠틀함은
끝까지



말러 교향곡 1번 4악장은 3악장이 끝나고 거의 곧바로 들어간다. 보통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금관의 음량이 온 홀을 뒤덮어버릴 정도로 연주되어 관객들의 심장을 강하게 파고 드는 악장되시겠다.


이날 슈텐츠는 1/2악장 사이, 2/3악장 사이에 꽤 오랜 휴지기를 두었는데 예당 관객의 기침시간을 배려한 것인지 해석의 일환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명 좀 길다라고 느낄법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3/4악장은 거의 바로 연결되어 연주를 들어갔다.


4악장 천국의 주제로 달려가면서도 그의 밸런스는 무너지지 않는다. 곡에 심취하게끔 만들고, 관객들의 엔돌핀을 솟구치게 하는데 있어서 강력한 브라스(금관)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음에도, 이날 금관은 절제하는 동시에 필요할 때 내딛는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보통 마지막의 인상이 '상의를 찢으며 승천하는 우락부락한 거인' 이라면 이날의 인상은 '정장과 구두를 신고 세련된 우산을 쓰고 하늘로 가는 잔근육 많은 신사' 같았다.


특히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의 열연은 슈텐츠의 말러를 구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렉상드르 바티, 트럼펫 수석, 출처: alexandrebaty.com



또 오세요
슈텐츠



작년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와 내한해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선사해 찬사를 받은 그는, 귀르체니히 테뉴어직었던 카펠마스터(상임지휘자)직을 던지고 네덜란드와 미국 등지의 악단에서 직을 맡고 있다.


끝없는 노력과 실험정신까지 가미된 그의 음악을 앞으로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다.



말러의 음악은 시간을 초월하죠(timeless) 그 초월한 시간은 말러 본인의 시간과 더불어 지금 우리의 시간을 붙잡기도 합니다.
말러의 음악 하나 하나를 보면 언제나 개인적이지요. 저는 그러한 개인적인 관점을 주목한답니다. 그래서 말러의 음악은 다양한 해석에 늘 열려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마르쿠스 슈텐츠, A form-tv production 인터뷰 중


공연 후 지휘자로부터 받은 사인 CD 자켓



표지 사진 출처 : markussten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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