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승범 Apr 19. 2016

그렇게, 내딛는다.

시대를 관통하는 음악 그리고 사람

2016년 1월, C를 만나 한잔하기 위해 한남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월길 따라 지나가는 버스 유리창 가득 뿌옇게 서리 낀 날이었다.
무심히 손에 쥔 스마트폰 속의 한 글귀에 시선은 계속 멈춰있었다.

 '인생에 시대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



故신영복 선생은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 데 여러가지 기준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이 세속적 가치에서 얼마나 뭘 이뤄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시대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를 정직하게 호흡하고, 시대의 아픔에 함께하는 삶,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진순의 열림, 신영복 中/한겨례 2016.1.23>


어느 분야든 시대 정신이 스며들지 않은 곳은 없다. 시대 정신이라는 딱딱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유행,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우리는 그 시대를 만나고 있다.


물론 하나의 담론으로 구심되던 과거와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다양한 모습의 화살표는 여전히 '지금 우리'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시대 정신이 그 어떤 분야보다 중요한 곳이 문화예술 분야일 것이다. 예술가,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던, 기존의 작품을 해석/표현하는 사람이던간에 본인의 '생각'이 예술 활동의 중심에 위치함은 자명하다.


'생각'이라는 것은 이 시대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예술가에겐 반드시 필요한 산소 같은 존재이며, 그 '생각'이 살아 숨쉴 때 작품에도 비로소 생명이 깃들 것이다.



설마라는 생각으로
차마 들춰보지 못하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4월의 토요일. 그 쓰라림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처음 소식을 접했던 때의 냉랭한 복도 그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통제된 생활 때문에, 소식을 들은 그 때 이미 밖은 어둠이 짙게 깔린 다음이었다.


'들었니?'

'무엇을 말입니까?'

'...'


2010년 2월 나는 그 도시에 있었다. 대학원 방학 기간에 경험도 쌓고 용돈 벌이도 되겠다 싶어 자리가 난 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만났다.


중학생이 되기까지 한달도 남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마지막 졸업식날, 강당에서의 본식을 마치고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반으로 돌아와있었다. 이미 교실은 부모님, 친척분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 때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잘 긴장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꽤나 긴장했던 순간임엔 분명했다. 아마 '아이들 6년 학교 생활의 마침표'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2014년 그 아이들은 고등학생 2학년이 되었을 것이다. 멀지 않은 두 학교, 아이들 중 누군가는 그 학교에 진학했을지 모른다. 차디찬 그 곳에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막막하고 서늘해졌다. 그리고 난 아직까지도 설마라는 생각으로 차마 들춰보지 못하고 있다.



잔인한 4월을 관통하는
시대 정신


무기력하게 그들을 보내놓고 2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충격과 트라우마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여전히 정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상처는 더 곪아 간다.


이젠 됐다며 더 이상 이야기 하지 말라는 사람도, 진실을 밝히라는 사람도, 사실 모두 가슴 한 구석엔 아픈 마음일테다.

그리고, 공허하고 슬픈 마음을 차마 표현하진 못하고, 괜히 상처를 건드려 아파질까봐 다들 마음으로만 삭히고 있는사람들은 더 많을테다.

아쉽게도, 앞장서서 보듬어주어야 할 사회 주류에선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적어도 아직은 이 잔인한 4월을 관통하는 시대 정신은 여전히 '치유'가 아닐까


왜인지 4월엔 박재동 화백의 이 만평이 기억난다, 출처:한겨례신문사



괜찮다. 맘껏 우셔도 된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물론 이 아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열린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악단은 예정에 없던 곡을 들려주었다.


연주에 앞서 관계자가 서툰 한국어로 '이 곡은 희생자들을 위해 연주되는 곡입니다. 연주가 끝난 후에도 박수는 치지 마시고, 30초정도 묵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직접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곡은 대중에게도 익숙한 바흐의 에어였다. 흔히 G선상의 아리아로 잘 알려져 있는 곡이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맘껏 슬퍼하지도 못한 그들을 위해 오케스트라는 음악으로 '괜찮다. 맘껏 우셔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노장 데이비드 진먼은 그렇게 우리를 안아주고 있었다.


데이비드 진먼, 노장은 그렇게 우리를 위로했다, 출처: julliard.edu



기억할 수 있는 시간,
내 안의 생각을 발견할 기회


1년 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교향악 축제에선 유독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엘가 첼로 협주곡, 그리고 모차르트 레퀴엠


바로 수원시향의 프로그램이었다. 모두 애도의 의미를 담아 연주되곤 하는 곡들이었다.

'음악가가 할 수 있는 애도는 역시 음악'이라고 밝힌 김대진 지휘자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바쁜 일상의 굴레속에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 음악은 또 다시 기억할 수 있는 시간과 내 안의 생각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2천여명의 관객은 서로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강력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영원한 안식을 저들에게 주소서, 주님)

et lux perpetua luceat eis(끝없는 빛을 저들에게 비추소서)
- 모차르트 레퀴엠 中



마지막 앙코르로 연주한 곡은 모차르트의 모테트 중 가장 유명한 Ave verum corpus였다.

다소 무거운 레퀴엠을 지나, 그들의 안식을 따뜻함으로 감싸 기원하는 지휘자의 배려일테다.



2015 교향악축제, 수원시향 공연



제발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2016년 4월 작곡가 류재준은 그 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계 무대에서도 이미 인정 받은 그는 굳이 비단길 놓아두고 척박한 땅에서 활동하하는 몇 안되는 현대 음악 작곡가였다.

여러 이슈에도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던 그였지만, 이번에 그의 이야기는 더 절박해 보였다.


please share it. Don't ignore them. It can be our son and daughter. Last performance of my work, people can be imagine cruel moment.
공유해주세요. 제발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의 아들딸일수도 있습니다.  이곡이 연주되는 최후의 순간까지 사람들은 이날의 기억을 공유할겁니다.
- 류재준


지금, 그를 둘러쌓고 있는 숱한 어려움(그는 결국 절필을 선언했다)에도 4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닥친 현실의 문제보다, 이 시대 정신에 더 절규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파음악상 때도, 관계부처와의 갈등에서 나타난 그의 글도 이 정도의 느낌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작곡가 류재준, 그는 절규하듯 이야기 하고 있었다. 출처:facebook


그의 마림바 협주곡.

런던에서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녹음한다는 소식은 들어봤지만, 이 곡의 2악장이 그러한 배경을 가진 애가(哀歌)임은 알지 못했다

작곡가는 SNS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녹음을 할 때 누구에게도 이곡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든 순간이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을까 해서요.

너무 아픈 순간을 지나 아이들과 같이 있던 분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 가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이 시대가 당신의 삶에
투영되어있나요


이렇게 음악가는 음악으로 대중에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러할 때, 온갖 미디어의 전파보다, 유력 일간지의 펜촉보다, 더 강력한 언어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을 보듬기도 하고, 분노케하기도 하고, 유대감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시대의 표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보듬으면서 나아가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자 할지도 모른다.


때론 시대를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독립적이어야 할 예술 분야를 정치판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논리에 좌우되어 예술의 영역이 웅크려진다면 이는 깊이 유감스런 일이다.

적어도 음악만큼은 좌우 이데올로기보다 작품에 더 주안을 두고 평가해줬으면 하는 바람 역시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시대로부터 유리된 예술'을 뜻하지는 않는다.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하면 좋겠다는 것이지, 시대에 눈감자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시대를 투영하는 음악의 혼, 그리고 다른 생각도 기꺼이 마주할 수 있는 품격을 음악을 통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시대가 당신의 삶에 투영되어있나요?' 어쩌면 이 명제를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해석을 통해, 그들은 관객에게 다시 질문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글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Threnody to the Victims of Sewal Ship from Concerto per marimba ed orchestra (2nd movement)
매거진의 이전글 우아한 말러를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