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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승범 Oct 28. 2015

기억을 걷는 시간

종로, 아 종로

2004년 가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W는 연거푸 한 숨을 내 쉬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눈 앞에 있고 그들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그 냄새가 너무도 생경하고 어색할 뿐이다.


오늘 고생했어, 저녁 먹으러 가자


W는 선배의 말이 달갑지 않다.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 뜨뜻한 물에 몸을 담구고 싶을 뿐이다.


'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싶었을 뿐인데' 라며 조용히 읊조리던 W는 선배들의 이끌림에 하릴없이 종각역 뒷편 조그마한 골목으로 향한다.


'뭐가 이렇게 좁고 지저분한거야' 라며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선배의 이야기를 잘 듣는 척을 하고 있다. 가끔은 웃는 표정도 해주면서.


여기야,


유명했던 빈대떡집, 지금은 제일은행 뒷편으로 옮겼다.


선배가 이끌고 간 곳은 'ㅇ'빈대떡집이었다. 딱봐도 좁고 허름한 그 곳.

혹시나는 역시나. 저녁식사를 빙자한 막걸리 뒷풀이였다.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의미 없는 끄덕임과 함께 막걸리만 연신 들이킨다.


취기가 오던 찰나, W는 내일 아침 일찍 여자친구와 약속이 생각난다.  그리고 손목시계 알람을 맞춘다.




2006년 겨울 W는 을지로를 거쳐 명동 한 복판에 있다. 청년들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한쪽은 유니폼, 다른 한쪽은 자유복이다는 점만 다를 뿐.


명동 성당에서 W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도 말을 하면서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떠들고 있다.


저녁 먹고 가야지, 피맛골로 가자


W는 일행들에게 말한다.

달갑지 않은 얼굴의 후배들도 있지만, W는 굳이 잡고서라도 달가운 이야기들을 해 주고 싶다.


너무 추운 날씨라 그런지 이동하면서 소주 한잔에 몸을 데우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여기야!


피맛골 초입에 있던 대림식당, 2010년 이후 문을 닫았다

W는 앞장서서 'ㄷ' 생선구이집으로 들어간다. 이미 가게 앞에는 수마리의 생선이 불에 몸을 녹이고 있다.


소주 한잔을 들이키니 몸이 녹는다. W는 얼마전 본 청문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이야기에 초롱초롱 커지는 눈이 되는 녀석도, 앞에 놓인 생선 같은 눈이 되는 친구도 있다.


문득 문자 메세지를 본다. W는 그제서야 내일 여자친구와 약속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하던 말을 멈추고 휴대폰 알람을 맞추기 시작한다.




2015년 가을 W는 피맛골을 한참만에 찾았다.


큰 건물들로 뒤덮여 W가 자주 갔던 종각역 뒷편 피맛골은 다 사라진지 오래다.


굳이 바뀐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일부러 찾지 않은 W였다.


그러다 정말 오랜 만에 다시 찾은 그 곳,

생선구이 등 각종 음식 냄새가 가득했던 그 곳은 이제 증권맨들의 담배 냄새만 자욱하다.

W는 담배 냄새에 기침을 몇 번 하고 그 곳에서 빠져 나온다.


2015년 종각역 앞, 르네상스란 말을 알고 썼나 모르겠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씁쓸한 W는 다시 종각역으로 간다.


그리곤 종각역 근처에서 '종로르네상스'라는 표지석을 보고 쓴웃음을 내딛는다.


그런 씁쓸한 표정 사이로 W의 손에 들린 커피 한 잔이 보인다.

W가 피맛골에서 벗어나기 전 주변 별다방에서 주문했던 '카페 어뭬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그리고, 오늘 W의 알람은 꺼져있다.


피맛골 스타벅스, 둥글레차보다 커피가 자연스런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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