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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승범 Nov 01. 2015

카페 테라스가 있는 곳

크륄러-뮐러 미술관, 반 고흐를 만나다

조그마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술을 마시고 있단다. 노란 불빛은 테라스와 건물 정면, 인도의 포장 돌까지 밝히고 있구. 그 위로는 초록색 나무와 함께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 고흐가 여동생에게 쓴 편지 中


암스테르담으로 휴가지를 정하고, 틈이 날 때 마다 어딜 둘러 볼지 찾아 보고 있었다.


"뭐, 콘세르트허바우 가서 공연 보고, 반 고흐 미술관 가기만 해도 만족이지"


암스테르담에서 꼼짝 움직이지 않고 먹고 마시고 공연 보고 놀 상상만 하던 나였기에 괜찮은 펍이나 알아보던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반 고흐 미술관에 무슨 작품이 대충있는지는 알고 가야했기에 작품 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연히.


'어?! '밤의 카페테라스' 도 네덜란드에 있구나, 어디라고?'


크륄러-뮐러 미술관?


찾아보니 암스테르담에선 꽤나 멀고, 교통도 불편해서 대중교통으론 가기 어렵단다. 그럼에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의 카페 테라스' 도 참 좋아 하는 작품인데다 관람하기도 좋은 곳(관광객이 치이지 않는)일 것이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 미술관까지 직선거리, 제법 멀다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Ede-Wageningen 역으로 간 후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일정이었기에 숙소에서 아침 일찍 나온다.


비가 오라가락 하는 날씨라 제법 쌀쌀하다. 허기진 배를 위한 요기는 역에서 산 샌드위치와 생과일 음료로 간단히 하기로 한다.


그 날의 아침 식사, 네덜란드 빵도 꽤나 훌륭하다


중앙역은 늘 그렇게 분주하지만 매우 유기적으로 기차들이 움직인다. 열개가 넘는 플랫폼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오르고 내린다.


다행이도 요즘은 구글 검색 하나로 기차 플랫폼까지 다 알 수 있는 세상이라 헤맬 이유가 없다. 먹고 사람구경하고 또 먹고, 그렇게 기차를 기다린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의 아침, 아름답지만 좀 추웠다


기차를 타고 한시간여 달려가 도착한 Ede-Wageningen역. 중앙역에 비해선 진짜 작은 역이지만 제법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 같다. 역 밖으로 나오니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Ede-Wageningen 역 밖으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자 이제 108번 버스를 타고 Otterlo로 이동한다. 행선지를 기사님께 이야기하면 친절히 티켓을 끊어주신다. 네덜란드는 시골에 가더라도 다들 영어를 중간 이상은 해서 걱정이 없다.


Ede-Wageningen 역의 108번 버스 정류장


108번 버스를 타고 Otterlo에 도착하니 완전 시골로 온 느낌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기사분이 경적을 울리며 뒤로 가라는 손 짓을 해주신다.


뒤로 가보니 마을버스만한 106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 버스를 타면 미술관으로 간다.


미술관은 호지 벨웨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어, 따로 공원 입장료도 지불해야한다. 106번 버스를 타면 기사분이 공원 입장 티켓을 끊어주신다.


Otterlo 정류장 주위, 정말 시골이다




15분 정도 버스를 타니 마침내 공원 내 크륄러-뮐러 미술관 정류장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한 10분 쯤 걸어가니 드디어 미술관 정문을 볼 수 있다. 휴.


크륄러-뮐러 미술관 정문 앞, 바깥에도 작품들이 있다.


소규모의 일본 관광객 무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1-2명이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다.

미술관 내부는 생각보다도 매우 크고 아주 깨끗하고 세련됐다.


입장권 티켓을 끊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러 갔더니 상설 작품 오디오 가이드는 다 나갔다는 소리. 아니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이십니까.


그렇다고 알아 듣지도 못하는 일본어나 불어 가이드를 쓸 순 없어서 아쉬운대로 특별전 가이드만 빌리기로 한다.


미술관 복도, 통유리에 햇빛이 들며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정표를 따라 반 고흐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자화상으로부터 시작한 반 고흐의 작품들이 여기 저기서 나 좀 봐 달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휴가 출발 전 검색해보았던 블로그 사진과 다르게 제법 잘 꾸며진 걸 보니 리모델링을 한 번 했나보다.


관람객을 기다리는 첫 작품, 자화상


'밤의 카페 테라스'를 비롯해 '별밤의 사이프러스', '감자 먹는 사람들', '우체부 조셉 룰랭', '비탄에 잠긴 노인', '씨뿌리는 사람' 등의 유명 작품들이 눈 앞에 펼쳐질 생각을 하니 기대감이 한 껏 부풀어 오른다.


관람객들이 유심히 고흐를 만나고 있다


고흐의 강렬한 붓터치는
화면으로 나타낼 수 없다


고흐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그 강렬한 붓터치를 보고 있으면 압도 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후기 작품일 수록 더욱 그러한데, 크륄러-뮐러 미술관에는 말년 오베르에서의 작품이 꽤 많이 있다.


마지막 오베르에서 그렀던 밀밭의 강렬한 붓터치를 보면 병환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작품활동, 그리고 나아가 삶에 대한 애착이 전해지는 것 같다.


잔디밭, 1887 / 강렬한 붓터치에 압도 되는 느낌이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아니,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밀레의 가장 대표작 중 하나인 '씨 뿌리는 사람'을 모사한 작품이 이 곳에 있다.


올 봄에 밀레전이 서울에서 열렸을 때 '씨 뿌리는 사람' 도 함께 와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사 작품을 보게 되다니 이 또한 재밌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은 그저 한 번의 모사로 끝난 것이 아니라 밀레를 넘어 점점 발전해나간다. 단순 모사로 시작해 마지막 모사 작품은 밀레에 대한 오마쥬 작품이라고 평가 받는다.


밀레의 작품과 거의 동일한 초기 모사작품은 말 그대로 모사품이다. 등장인물은 거의 같은 크기이 같은 모션을 취한다.


이에 비해 사람의 크기가 작아지고 강렬한 색채를 더한 그 만의 '씨 뿌리는 사람'이 고흐 말년에 오베르에서 완성된다.


크륄러 뮐러에선 초기와 말년 작품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밀레(왼쪽, 스케치)와 고흐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어있다


드로잉으로
고흐를 보다


미술관엔 제법 많은 드로잉 작품들이 관림객을 기다리고 있다. 흔히 고흐 하면 생각나는 강렬한 색과 터치가 아닌 흑/백으로 그린 드로잉 작품들.


이 작품들은 단지 유화를 위한 스케치로 보기엔 아쉽다. 흑/백 으로만으로도 두터운 질감을 표현해내고, 좀 더 담백해보이지만 강한 인상을 주기엔 모자람이 없다.


드로잉을 보다 보면 그의 오베르에서의 작품과도 일맥 상통하다고 느껴진다. 밀밭에 대한 강렬한 터치, 색감으로 작업한 그의 말년 작품에 앞서 이미 선(line)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표현할 수 있던 그였다.


고흐의 드로잉 작품, 흑/백과 선만으로도 강렬하다


밤의 카페 테라스,
드디어 내 눈 앞에


반 고흐를 처음 직접 마주한건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였다. 그 때 보았던 '별이 빛나는 밤'은 아직도 뇌리 속에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하늘의 표현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로 부터 5년 후 아를 시기의 꽃인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 가 눈 앞에 나타났다.


노란 가스등 불 빛이 가게를 넘어 인도까지 비추고 있고, 하늘엔 고흐 특유의 밤이 빛나고 있다. 프랑스 오르세에 소장되어있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이 이 작품과 같은 시기(같은 달)에 그려진 그림이다.


생각보다 색이 바랜 느낌은 있지만, 작품은 또렷이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노랑, 초록, 파랑의 대비는 그가 생각한 대로 밤의 생동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마냥 아름답고 따뜻하진 않은, 어딘지 모를 불안함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고흐는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 이외에 Eugene Boch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밤의 카페 테라스'를 언급한다.


우리가 자주가던 place du Forum 에 있는 카페의 전경이야, 그림은 밤에 그렸지


밤의 카페 테라스, 1888


반 고흐는 시작일 뿐


크륄러 뮐러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은 정말 방대하다. 반 고흐의 작품은 시작일 뿐, 르누아르, 폴 시냐크, 조르쥬 세랏, 미네, 마네, 피카소, 몬드리안 등등.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전도 진행된다. Walter De Maria 라는 작가의 공간전과 Herman de Vries의 작품들이 전시중이었다.

Walter De Maria의 공간전을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다




교통이 불편하고 작품이 많아 하루만에 다 보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가 볼만한 충분히 매력적인 미술관이다.


카페 테라스가 없었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하며, 미술관이 위치한 국립공원을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관광객에 점령 당하고 있는 대도시 미술관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훨씬 더 여유로운 작품 감상이 가능함은 당연하고, 주변 환경도 휴양림에 온 듯한 안식의 느낌을 준다.


부디 앞으로도 지금처럼 멋지게 잘 관리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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