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한 수많은 저녁식사 중 어느 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이 제일 맛있어”
아니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닭볶음탕이라고 했나?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이다. 돼지고기, 소고기보다 닭고기를 더 좋아하는 나는 닭볶음탕만 있으면 밥 두 공기는 너끈히 해치웠다. 매콤 달콤한 소스에 부드러운 살을 콕 찍어 밥과 함께 먹는 맛이란. 여기에 잘 집히지 않는 당면을 겨우 젓가락질 해 숟가락에 올리고 잘 익은 고구마까지 올려 한 입에 넣으면 ‘한식이 최고’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엄마 눈에도 큰 딸의 분명한 식성이 보였나 보다. 언제부턴가 밥상에는 닭볶음탕이 꽤 자주 올라왔다. 특히 내 얼굴에 지친 기색이 비치거나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는 날일 때면 꼭 저녁마다 닭볶음탕의 달큰한 냄새가 집안에 퍼졌다. 엄마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평소 날 선 말만 골라하는 까탈스러운 딸내미가 그 음식이 좋다니까 뭔 일만 있으면 그걸 만들어주는 거다. 그런 엄마에게 감동을 받으면서도 민망하기도 했다.
언제 적이었는지 모를 그때부터 수년이 흘렀고 나의 취향도 바뀌었다. 여전히 닭고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닭볶음탕을 예전만큼 즐겨 먹지는 않는다. 쌀국수나 팟타이, 브리또, 마라샹궈 같은 이국적인 음식을 더 찾는다. 그렇지만 엄마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음식만이 최고인 듯했다. 모든 구성원이 같은 집에 살면서도 밥 한 끼 같이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날에도 익숙한 냄새에 이끌려 주방 한쪽에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보면 어김없이 닭볶음탕이 나를 반겼다.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하나. 닭볶음탕 해줄까?” 삼시세끼 밥을 해 먹지 않는 요즘, 세상 그렇게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심지어 배달 어플을 하루에도 여러 번 사용하게 되는 요즘, 엄마는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큰딸이 좋아한다는 음식을 떠올렸다. 그런 엄마가 조금은 귀엽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한 마음에 괜한 말을 했나 싶은 미안함이 번졌다.
성인이 되어서도 철없는 딸은 나중에야 궁금해졌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지?’ 언제 한 번은 대놓고 물어봤다. 평소 유심히 엄마를 살폈다면 그 취향을 알 수 있었겠지만 부끄럽게도 나에게 쌓인 데이터는 없었다. 엄마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니, 그래서 어떤 게 좋다는 거야?”
“몰라. 왜. 그냥 다 좋아해”
어휴 진짜. 또 성질이 나버린 나는 “아, 됐어!”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생각해보면 뭘 먹는지가 가장 중요해지는 여행을 가서도 엄마는 본인의 식성을 또렷이 밝힌 적이 없었다. 향신료의 나라 방콕에서 그나마 한국의 맛과 가장 비슷한 음식인 돼지고기에 “이게 맛있네”라고 말했던 것 말고는. 덕분에 엄마가 고수처럼 향 나는 식재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지만 콩알만 한 정보 하나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 너무나도 무지했다.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늘 엄마는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딸들이 배불러 음식을 남기려고 하면 본인의 배부름이야 어쨌든 자신의 밥그릇에 달라고 하던 엄마였다. 어디선가 받아온 고급 펜을 나눠가질 때도 우리가 원하는 색상을 말하고 나서야 남은 것을 가졌다. 평소보다 많은 금액의 월급이 들어온 날에는 당신을 위해 쓰기보다 평소 갖고 싶은 게 있었냐고 우리에게 물어봤다.
왜 엄마는 항상 ‘나머지’를 쥐게 되는 걸까? 나도 결혼을 해 자식이 생기면 아이가 남긴 밥을 먹으며 이름 세 글자를, 그 이름이 가진 취향을 지워가게 될까? 그렇다면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슬픈 미래에 “안돼!”하고 고개를 휘젓다가 화가 났다. 왜 엄마는 엄마를 드러내면 안 되는 거냐고! 왜 그렇게 사냐고 정말! 엄마도 사람인데.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환경에, 그중 익숙해져 버린 일상에 분명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이 있을 텐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것도 많을 텐데. 엄마의 삶이 그토록 내가 바라지 않는 삶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최근 엄마는 미용시술을 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눈이 자꾸 처진다며 출근길마다 거울을 보며 하소연을 한 지 오래였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어느 날 엄마는 정말로 병원에 가 눈썹 밑을 째고 피부를 탄력 있게 끌어올리는 시술을 하고 왔다. 월급 이야기를 하다가는 요즘 본인은 마사지받는 데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근육 풀어주는 그런 거 말고 피부 광내는 거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엄마는 그것 말고도 다리 붓기를 빼주는 마사지도 받는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딸은 지금 골골대며 일하고 있는데 엄마는 지금 난리가 났구먼?” 장난기 섞인 분노를 표출했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아이구, 우리 엄마 다 컸네’ 하면서 안아주고 싶은 기분. 어떤 작가는 당신의 어머니께서 비싼 로션을 방 안에 두고 혼자 쓰시는 걸 보고 이렇게 좀 더 이기적으로 살면 좋겠다고 책에 썼는데, 꼭 그런 심정이었다.
이제는 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내가 먹고 싶은 걸 말하기 전에 엄마의 의견을 묻는다. 돌아온 답변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더라도 마침 나도 그게 내켰던 것처럼 맞장구를 친다. 하고 싶은 걸 물었을 때 대답이 시원하지 않으면 꼬치꼬치 캐물어 어떤 답이라도 나오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라도 엄마의 집 나간 취향이 돌아올 수 있다면 내 마음쯤은 한동안 접어놔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