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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07. 2021

창업을 앞두고 보내는 수신자 미상의 편지

사실은 중요한 걸 잊지 말자고 나에게 하는 이야기

며칠 전 서울신용보증재단에 다녀왔어요. 오며 가며 보기만 했지 나랑 상관없을 것이라 여긴 그곳에 간 이유는 창업에 필요한 돈이 모자라서예요. 괜히 조금 위축된 상태로 그곳에 들어서니 내가 정말로 일을 벌이긴 벌이는구나 싶더라고요. 이렇게 큰돈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상담을 마친 후 돌아보니 노동한 세월에 비해 손에 쥔 건 참 초라하더라고요. 개처럼 일해서 정승처럼 써야 하는데 전 정승처럼 일해서 개같이 썼거든요.


이야. 네이버 부동산 사이트를 매일같이 살펴보는데 헛웃음만 나요. 분명 매물 수를 나타내는 동그라미들이 있었는데 없었어요. 보증금과 월세. 가진 돈으로 필터링을 하니 주어진 선택지가 거의 없더라고요. 이쯤이면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알았다고 착각했어요.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비싼 자리는 여전히 비싸고, 후지다고 생각했던 자리마저 보통 가격이 아니에요.


실은 겁도 무지하게 나요. 요즘 날고 기는 카페들이 얼마나 많아요. 심지어 유튜브만 둘러봐도 내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알 수 있어요. 파고들수록 어려운 커피의 세계에서, 미친 센스를 지닌 힙스터들 사이에서,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친절할 수 있는지 놀라운 사람들 속에서 감히 내가 이 시국에도 판을 친다는 카페를 차려도 되는 걸까요?


더군다나 기자를 그만두려고 했던 때부터 카페에서 일했던 현재까지 순탄한 날들이 거의 없었잖아요. 새로운 길을 찾았다며 부러움 섞인 시선도 받았지만 속으로는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불안, 모든 게 싫어지는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우는 날이 많았어요.


이런 속도 모르고 다들 한 마디씩 해요. “사장님 되는 거야?” “커피 많이 아나 보네~” 혹은 “요즘 같은 때에 큰일 날 소리 하네” “인테리어가 중요해” “돈 많이 모았나 보네”와 같은 걱정(을 빙자한 참견이라고 생각하지만)들이죠. 좋은 마음에서 우러난 말인 건 알지만 하나둘씩 쌓이니 부담이 됐어요.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하려고 일하는 건 아닌데 꼭 거기에 부응해야 할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어야 사는 맛 아닐까 싶어요. 가끔씩 상상을 하거든요. 개업 첫날, 가게 한가운데 서서 내 손길이 닿은 곳곳을 천천히 둘러보는 나의 모습. 스트레스로 화병이 나고 정신이 나간 채 일을 해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한결같이 울컥하더라고요.


누군가는 이상주의라고, 철없는 소리라고 하겠지요. 있잖아요. 일을 하려면 그게 필요한데 어떡해요.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는 감정들. 가시밭길에 조악하다는 거 알지만 내 손으로 하나하나 해나가는 거. 신나고 재미있는 거. 그거 하나 믿고 시작해보려고요. 물론 가진 게 없어 현실과 타협도 (아주 많이) 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원하는 모양새가 온전히 나오지 않을 테지만 이게 첫 번째 도전일 뿐 마지막은 아니니까요. 먼 미래일지라도 꼭 제주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살아보고 싶거든요. 아니면 막상 해보니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때려치울 수도 있는 거고요.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저도 모르겠어서 조금 웃기긴 한데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하고 생계에 위협을 받으며 빚에 허덕일 수도 있는 현실 속에서도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그런 거 있잖아요. 바깥으로 소리를 내야 스스로도 납득이 될 것 같은 거. 비로소 확신이 드는 거. 이제 할 말 했으니 성공 같은 실패를 향해, 실패 같은 성공을 향해 한 번 가보렵니다.


이 말이 떠오르네요.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 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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