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지바노프(jeebanoff)
* [B레이더] 시리즈는 필자가 기자 생활 당시 헤럴드경제를 통해 연재했던 글들을 옮겨놓은 것임을 밝힙니다.
한국대중음악상과 ‘무한도전’ 수식어 업었지만
지바노프. 아직 대중과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가수는 아니지만 (늘 그렇듯)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알앤비 싱어송라이터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2017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그를 만났을 것이다. 당시 지바노프는 딘, 박재범, 서사무엘 등을 제치고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최근 그에게는 새로운 연관검색어 하나가 따라 붙었다. 바로 ‘지바노프 무한도전’이다. 최근 ‘무한도전’ 방송이 끝난 뒤 지바노프 ‘티미드(Timid)’ 뮤직비디오가 나왔던 덕이다. 많은 이들이 흘러나오는 노래에 마음을 빼앗겨 검색을 해봤다. 지식인 사이트에는 ‘방송이 끝나고 나온 뮤직비디오는 무슨 노래냐’고 묻는 글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그의 노래가 눈에 띈 건 비단 인기 프로그램의 후광 때문은 아니다. 소수만 알고 있던 빛이 이제야 새어 나가기 시작한 것뿐이다.
대표곡 ‘삼선동 사거리’ ‘Belief’
‘삼선동 사거리’는 지바노프가 2017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곡이다. 첫 번째 미니앨범 ‘소 페드 업(So fed up)’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한 곡으로, 지바노프가 삼선동 지하방에서 살던 시절을 담는다. 그곳은 지바노프가 본격적으로 업계 전선에 뛰어들었을 당시 품던 열정과 꿈, 그간의 시간이 가득한 공간이다. 여기서 그는 “난 믿어”라고 끊임없이 읊조린다.
두 번째 미니앨범 ‘포 더 퓨.(For the few.)’ 타이틀곡 ‘빌리프(Belief)’는 앨범의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다. 노래는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죄책감 없는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고 말한다. 두 곡은 비슷한 내용이지만 각자 풍기는 분위기는 다르다. ‘삼선동 사거리’가 아직 상상으로만 퍼져있는 미래를 어스름한 멜로디로 담았다면, ‘빌리프’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와 확신에 찬 모습을 통통 튀는 사운드로 표현했다. 이 두 곡의 스타일은 추후 지바노프의 노래의 큰 두 줄기가 된다.
하루하루 모아 만든 지바노프의 나날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펼쳐내는 가수를 두고 우리는 ‘일기장 같은 음악’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바노프 역시 경험을 토대로 솔직한 음악을 풀어내는 가수다. 다만 지바노프의 일기는 좀 더 사실적이다. 그는 최근 아레나와 인터뷰에서 “날짜를 정하고 그때까지 느낀 것들을 담겠다는 주의여서 내 앨범을 들으면 당시 내가 겪은 일과 감정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발매시기를 놓친 곡은 아무리 좋아도 발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획은 세우지 않되 그날의 일기는 그때그때. 그로 인해 지바노프의 앨범은 서사적인 흐름이 강하다. 여기서 흐름이란 트랙의 순차적인 구성을 뜻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발단, 전개, 절정 등 정형화된 구조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지바노프의 앨범은 각각의 하루가 모여 만들어내는 나날이다. 매일 기분이 다르듯 노래도 멜로디와 분위기가 달라지기에 들쭉날쭉해 보일 수도 있다. 그때의 자신을 담다보니 당시 집중하던 색채가 뚜렷하다. 첫 번째 미니앨범은 몽환적이었다면 두 번째는 리드미컬하고, 최근 나온 세 번째 앨범은 한결 차분해진 식이다. 하지만 결국엔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레 시간의 유기성으로 묶여있다. 이는 그의 앨범이 정규가 아닌 미니 형태여도 꽉 찬 느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천곡 ‘Right Here’
세상 모든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로 사랑에 빠졌던 당시를 회상하는 곡. 열정적인 내용에 비해 멜로디는 다소 평범하게 흘러가 심심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후렴구 ‘라이트 히어’라는 가사의 반복과 이를 표현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외치는 가성이 모든 곳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