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에서 심장 수술까지
초록아 안녕? 삼 일 전 저녁 너를 처음 만난 이후로 난 정말 끝도 없이 네 생각을 해. 물론 다른 생각들도 하고 다른 활동들도 하느라 머릿속을 너만으로 꽉 채우고 있다고 할 순 없지만 계속해서 내 마음속에 내 머릿속에 끊이지 않고 네가 자리하고 있단다. 네가 배 속에 있을 때는 너의 무게감으로 그리고 태동으로 널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꼈는데 지금은 좀 다른 감각으로 널 내 몸에 새기고 기억하는 과정인 것 같아.
첫날 밤은 그저 행복하기만 했어. 예상치 못하게 난산으로 이어지고 수술을 해야만 했지만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널 만났고 그렇게 만난 네가 너무 예뻐서 첫눈에 반해버렸거든. 마취에서 깨고 난 후, 네 아빠랑 같이 널 만나 처음 찍은 우리 가족사진을 보고 또 보았어. 사실 가족사진보단 그 안에 있는 너만 확대해서 보고 또 본거지만. 아빠를 닮은 작은 입술을 꼼지락거리는 것도 너무 귀엽고 나를 닮은 이마와 오뚝한 콧대도 너무 신기하고 엄마 아빠 안 닮아 작고 동그란 얼굴도 너무 예뻐서 자꾸만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었단다. 찍은 사진 중에 베스트 3을 뽑아서 내가 자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태어났다고 너무 예쁘지 않냐며 소식을 전했어. 축하를 많이 받았고 너무나 행복했어. 신생아실에 있는 널 다시 보고 싶고 사진도 더 찍고 싶어서 다음 날 있을 첫 면회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단다. 널 찍어주려고 핸드폰도 새로 샀는데 내가 갑자기 수술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네 아빠가 내 폰을 병실에 두고 챙겨오지 않아서 자기 것으로 찍었지 뭐야~
아무튼 그렇게 약간의 피로감과 충만한 행복감으로 저녁을 보냈어. 밤에 신생아실에서 연락이 와서 네가 호흡이 좀 힘들어져서 코로 산소 줄을 끼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신생아들은 그런 경우가 많고 대체로 금방 좋아진다며 별로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는 말에 그저 그러려니 했어. 오후에 신생아실로 첫 면회를 갔을 때 네가 산소 줄을 끼고 있는 바람에 다른 아기들과는 달리 조금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했을 때도 짠하고 마음은 아팠지만 금세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 심지어는 산소포화도가 제 수치로 올라오지 않아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가야 한다고 했을 때도 거기 있는 좋은 장비의 도움을 받아 잠시 쉬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다들 그렇게 이야기해줬고 내 천성도 그걸 의심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라 걱정을 더 하지 않았어. 그래서 전원 후 함께 따라간 아빠가 니 심장에 대한 소식을 전했을 땐 걱정이 되기보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어 어리둥절했어. 심장 ct를 찍고 병명이 나오고 수술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런 나라도 상황이 그렇게 만만치 않음을 실감해야 했어. 그 과정을 네 아빠가 헤쳐나가는 동안 나는 병실에서 니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자꾸만 울었단다. 내 상태를 보러 와 주신 간호 선생님도 아빠 대신 보호자로 온 엄마(그러니까 네 할머니)도 엄마가 이럴수록 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며 울지 말라고 했지만 터진 울음을 의지로 제어하는 방법을 난 몰랐어. 눈물은 자동으로 흘러나왔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너무 들썩거리며 울진 않도록 호흡을 조절하는 것뿐이었는걸.
다음 주에 진행될 거라고 하던 수술 일정은 그날 밤 다음 날 아침 수술로 급하게 바뀌었어. 입원해있던 산부인과에 외출 가능하게 처치를 받고 아침 일찍 아빠와 할머니와 함께 네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단다. 그나마 내가 회복이 빠른 편이라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라.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담당하신 교수님에게 네 증상과 수술 그리고 그 후 있을 수 있는 경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상황은 많이 심각했어. ‘전폐정맥환류이상-심장형’, 혈관에 협착이 보이는 케이스. 수술 후 경과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케이스라 수술 후 며칠 내 사망 확률 50%, 잘 회복하는 경우에도 1년 내로 다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높다고. 크게 머리를 한 방 맞고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지만 수술 전 짧은 면회 시간에 니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이긴 쉽지 않더라. 네가 이런저런 호스를 꽂고 쌕쌕 숨을 쉬며 잠들어 있는 모습을 내 핸드폰으로 찍었어. 기껏 새로 장만한 핸드폰으로 처음 찍어주는 모습이 이런 것일 거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영상을 보고 또 보고 확대해서 보고 하다 보니 그래도 좋은 화질 영상을 찍어 놓을 수 있어서 잘 바꿔뒀다 싶더라. 힘을 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겨우 한마디 입 밖에 낸 힘내라는 말이 흐느낌에 너무 떨리고 있어서 네가 힘을 받을 수 있었을는지 잘 모르겠다. 오전 9시에 시작한 수술은 오후 2-3시, 늦어지면 4-5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했고 나도 나름 환자라 아빠만 그 병원에 두고 산부인과로 돌아와야했어. 너도 너지만 아빠가 거기 혼자 있도록 두는 게 너무 미안했는데 결국 아빠의 부모님, 그러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도 병원으로 가셨단다. 할아버지는 몸이 그다지 좋지 않으셔서 먼저 들어가셨지만 할머니는 네 수술이랑 면회까지 마칠 때까지 아빠랑 함께 해주셨단다. 나이가 이만큼 들었어도 엄마들은 참 의지가 많이 되는 것 같아.
나는 병실에 돌아와서 밥도 먹고 쉬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면서 몸 회복에 힘썼어. 자꾸 눈물이 났지만 빨리 회복을 해야 너랑 같이 하는 날에 더 잘 돌봐줄 수 있을 테니까. 난 그래도 널 생각하는 와중에도 이런저런 다른 일들에 잠시간 주의를 돌릴 수 있었지만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수술 후 피로 물들인 붕대로 감싸진 널 보아야 했던 네 아빠가 정말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텐데, 같이 있어주질 못해서 정말 미안했어. 수술일정 끝나고 내 병실로 돌아온 아빠랑 둘이 같이 또 펑펑 울었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론 아빤 병원에서도 돌아오는 길 거리에서도 많이 울었다고 해.
수술은 예상된 시간에 무사히 끝이 났지만 긍정적으로 멘트 해주는 일이 없는 수술 담당 교수님은 일단 수술은 끝났지만 예후가 나빠질 가능성도 높다고, 밤 중에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바로 재수술 들어갈 거라고 했대. 수술이 진행될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기도하는 수밖에 없지. 종교도 신앙심도 그다지 없는 엄마는 그나마 자연에 깃든 어떤 기운 같은 건 믿었기에 그저 네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응원의 기운을 보냈어. 네 아빠는 세상의 유명한 신들에게, 친할머니는 부처님께 너의 안녕을 빌었어. 천주교회를 다녔던 외할머니는 기도문을 읽었고 주변의 기도발 좋다는 지인들에게 다 기도를 부탁했단다. 그렇게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를 올렸어. 네가 건강하게 우리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겨 병원에서 연락이 올까 마음 졸이며 자는 듯 마는 듯 밤을 보냈어. 자다 깨면 시계를 보며 수술 후 몇 시간 정도 지났구나, 아직까지 별 일 없었나 보구나-하는 안도를 반복하다 보니 날이 밝았고 또 다음 날이 되었어. 네가 세상에 태어난 지 네 번째 날이야. 겨우 삼일 밤이 지났을 뿐인데 세월이 한세월이라 내가 널 낳느라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은 벌써 아득하고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져.
계속해서 너를 위한 기도를 올리며 첫 면회 날을 기다린다. 이틀이나 남았는데 네가 너무 보고 싶다. 잘 버텨줘서 너무 대견하고 고마워. 좀 더 힘을 내서 숨을 쉬고 심장을 뛰고 살아남아줘. 초록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