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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Dec 12. 2021

제주, 세 가지 카페 이야기

성산 도렐 커피 - 랜딩 커피 - 만감교차



아무런 지식도 없이 제주를 찾았던 시절에는 겁도 없이 한방에 마스터하겠다는 심산으로 여정을 준비했었다. 서울보다 3배 큰 제주를 어찌 일주일도 안되는 작고 귀여운 휴가로 소화할 생각을 했던걸까. 애월에서 서귀포로, 함덕에서 한림으로. 말도 안되는 일정을 기가 막히게 소화했었지만 터무니없는 활동량으로 여유를 잃었던 기억이 있다.


3년만에 찾은 제주에서는 동쪽을 선택했고, 이 쪽에 집중하는 편을 택했다. 이전과는 다른 리듬으로 여행했던 동제주,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카페에서의 이야깃거리를 기록한다.




1. 매일의 일용할 조식

- 도렐 커피


성산일출봉을 눈 앞에 둔 숙소에서 아침마다 창을 열며 기지개를 켜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늦가을 즈음의 온도에 바닷 기운을 머금은 공기인지라 잠이 싹 달아나는 세수를 하는 기분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뽀얀 침구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살짝 몸의 온기가 식어있는 편이다. 따뜻하게 속을 데우고 하루를 시작하길 원했다. 곧장 신발을 구겨 신고 마스크를 입가에 척하고 얹은 뒤에 쪼르르 달려 내려간다.


아침의 상쾌함과 적당한 긴장감이 교차하는 공간, 잘 맞춰진 온도와 음악에 만족하며 트레이를 가득 채울 만큼 충분하게 조식을 주문하곤 했다. 두꺼운 머그에 팔팔 끓을 정도로 뜨거운 까만 커피가 담겨 나오고, 여행자를 못 참게하는 '제주 한정' 베이커리를 씹다보면 어느새 몸의 온도는 오른다. 오늘 여행도 시작되었다-라는 신호랄까.



도렐 커피의 전경은 여행객과 개인 작업하는 사람들이 뒤섞인 분위기로 꽤 차분하다.


제주에서만 내어준다는 오메기 베이글을 놓칠리 없지



하루 활동을 시작하기 전 나지막히 올려다보는 오늘의 날씨


끄트머리에 루꼴라를 꽂은 귀여운 당근빵에 혹한 어느 제주의 아침





2.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멍

- 랜딩 커피 (Landing Coffee)


전환감을 주고 싶을때, 부지런히 강변으로 향하여 바람을 맞으면 꽤 효과가 좋다. 제주에서 가장 좋은 건, 강바람이 아니라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 아닐까. 도시뷰에 조금씩 답답함을 느낄 무렵, 강과는 비교도 안되게 넓어지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 제주를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아침에는 가볍게 조깅을   있으면서도 당장 멍을 때리기 좋은, 널찍한 풍경을 원하게 되었는데 가닿기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구불구불 복잡하지 않게 직선 주로를 하기만 해도 동제주의 바다가 바로  앞이다.  풍경 천천히 편하게 보라고 자리를 잡은 커피집들을 찾아가는   하나의 재미가 된다.



아침 해에 알알이 반짝이고 있다. 이내 바다멍을 때린다.



평일 아침 바다 앞에 도착해서  손님으로 혼자 카페를 점령하는 짜릿함을 어찌 말로    있을까카페 직원의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와내가 2층으로 향하는 발걸음과 숨소리만 들리는 카페다그리고  앞에 펼쳐지는 바다는 나만을 위한 것처럼 느껴진다마치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기분이다모름지기 바다멍은 이런 뷰에서 때려줘야 맛이지여기가 제주도다.



시원하게 통창으로 들어오는 이 날의 바다는 정말 현실 탄성을 자아낸다. 거기에 커피 끼얹기는 금상첨화.





3. 제주 색깔 흡수 활동

- 만감교차


구름이 - 걷힌 청량한 하늘과, 이와 맞닿은 바다 탓에 제주에서는 파랑의 에너지가 강하다. 그걸 보고 싶어서  여행자들도 워낙 많았을터. 눈길이 가는 곳마다 원없이 쿨파랑을 흡수 했다. 다만 놓치고 있었던  하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주황색이다. 이제  제철로 들어선 감귤의 주황색이 제주 곳곳에서 아우라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쿨파랑과 웜주황이   어울린다. 색깔마음껏 흡수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토록 강력한 채도 시그널에 발걸음을 들이지 않을 수 없지


널부러진 주황색을 바라보며, 이 분은 색깔에 진심이라고 느낀다.



시멘트마저 귤색으로 물들인 배경 속에서 방석을 포개어 앉아 직접 병입한 생귤 주스를 마시노라면 오늘의 원기 충전은 다했다 싶다정오가 넘어가고 해가 조금씩 떨어질수록  사이로 호로로바닷바람이 새어들어 춥춥한 기운이 근접하기도 했지만 주황색 아지트가 어쩐지 따뜻한 기운으로 감싸주는 기분마저 들었다.


감귤 주스 한병을 더 사서, 긴긴 겨울을 더 따뜻하게 나고 싶은 마음에 에어팟에 걸어둘 감귤 부적(?)도 하나 챙겨 다시 밖으로 나선다. 길가에도 여전히 가지마다 주황색이 걸려있다. 제주의 겨울은 따뜻하다.




이런 곳에 직접 짠 감귤주스가 빠지면 섭하겠다 싶었는데, 당연히 계셨다.


바로 옆에 소품샵도 함께 구경했다. 자그마한 귤모양을 여러개 쟁였다.




의외로 봄웜톤인 겨울 제주의 색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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