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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Jan 11. 2019

나를 안다고요? 그럴리가......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나는 인간관계에서도 '미니멀라이징'이 필요하다고 줄곧 말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나의 경우,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데 보다는

줄이는데 더 공을 들였던 것 같다.


싫은데 싫은척 못했던 사람들,

안맞는데 맞는척 지내던 사람들과

연락이 오면 마지못해 만나고 나서

진이 빠진 채로 집에 돌아오던일을 끝낸 것이다.


대신에 더 좋아하고, 더 보고싶고,

더 잘맞는 사람들과 

더 길게, 더 자주보는 것을 택한것.


미안하고 죄송스럽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1순위로 정리대상에 있던 사람들은

나에 대해 심하게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주 짧은 기간, 특정 기간의 나를 봤고

그것이 나에 대해 경험한 전부이면서도

나를 다 아는 것 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느꼈다.


"내가 너를 아는데 ......"

"너는 그런 사람이잖아......"


'유년기의 나'와 '학창시절의 나',

'대학시절의 나'와 '졸업이후의 나',

'호주에 다녀오기전의 나'와' 호주에 다녀온 이후의 나',

'사진을 하기 이전의 나'와 '사진을 하고 나서의 나',

'2번째 연애가 끝나고 나서의 나'와,

'3번재 연애가 끝나고 나서의 나'.


'심지어는 지난 달'의 '나와 이번 달의 나'가 다를 때도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은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거기서만 그쳐준다면 정말 고맙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항상 거기서 1보 더 나가아기 마련이다.


자신이 아는 나의 모습과 현재 나의 모습이 다를경우

혹은 자신들이 그려놓은 나에 대한 환상과 지금의 내가 다른 모습을 보일경우

비난하고, 점수를 매기고, 나아가 분노하고 슬퍼하기까지 한다는 것.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일년 반을 만나고 3년을 헤어져 지냈던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때가 그랬다.

(내가 왜그랬을까 도대체)


다시 만난 짧은 몇개월동안

그녀는 자꾸 오늘의 내가 아닌 3년전의 나를 데려다가 앉혀놓고 싶어했다.

그리고 나는 연인을 실망시키기지 않고자

자꾸만 그 시절 나를 연기해야만 했다.

(아마 그 몇개월이 사춘기 시절보다 더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시기인 것 같다.)


고민고민 끝에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찾아갔을때 조차

터무니없는 이민생활과 결혼에 대한 꿈을 설명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나는 차마 면전에서 이별을 선언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 다음날 저녁

그녀가 그렇게 싫어하던 소주 한 병의 힘을 빌려,

문자 한 통으로 선고하듯  비겁한 이별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강산은 십년에 한 번 바뀐다지만,

사람은 일년에 한 번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건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인연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비교적 한결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만

돌아서면 종잡을 수 없이 달라져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러니 나와 당신은

서로가 서로를 안다고 자신하지 말아야겠다.

아니 애써 알려고 노력도 하지 말아야겠다.


나와 당신은

'아는 사람'이나 '알려고 하는 사람'이기 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점수매기는것 없이

그 자체로.





Leica X

2019. 1 / 망원동

http://www.instagram.com/jacobsf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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