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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Nov 28. 2021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에 대해

하루키 일상의 여백 책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무거운 것은 가볍게, 가벼운 것은 무겁게 전달한다. 그의 ‘가벼움’ 속에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섬세한 관심이 녹아들어 있다. 


작가 이름만 듣고 구매하는 책들이 있다. 김영하,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김초엽이다. 나는 하루키의 글이 참 좋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가벼운 것을 무겁게 그렇지만 따뜻하게 전달한다. 특히 그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고백하자면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 작가는 책으로써 소통하기 때문에 작가의 삶을 더더욱 알기 어렵다. 하루키에게 감사한 점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이야기해 준다. 이제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42킬로미터를 달리는 일은 결코 따분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스릴 넘치는 비일상적이고도 창조적인 행위다. 달리다 보면 평소에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특별’ 해질 수 있다. 설령 짧게밖에 살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짧은 인생을 어떻게든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달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키를 이야기한다면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마라톤, 여행, 재즈 그리고 고양이. 특히 하루키 마라톤 사랑은 대부분 에세이에서 만날 수 있다. 읽고 있자면 나도 한 번 뛰어볼까? 하는 유혹이 든다. 실제로 10KM 마라톤은 가끔 참여한다. 러닝을 하면 하루키만큼 감정은 아니지만 짧지만 순간을 집중해서 달리게 된다. 꼭 한 번쯤 10KM라도 완주해 보기 바란다. 


 밤에는 대개 열 시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여섯 시에 일어나 매일 조깅을 하며, 한 번도 원고 마감일을 넘긴 적이 없다"라고 말하면, 깜짝 놀라며 ‘아 그런 문인도 있습니까?’ 하는 표정 짓는 이도 적지 않다. 


 하루키의 삶을 다큐로 만들자면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라고 끝이 날 것 같다. 그는 철저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심지어 해외에서도 비슷하다. 책에서도 이게 해외에서 사는 삶인지 의문이 든다고 한다. 오히려 국내에 있으면 체면상 참여할 수밖에 없는 행사 때문에 소설을 쓸 때는 일부러 해외로 간다고 한다. 그의 삶은 슴슴하지만 그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나는 지칠 대로 지치고 파김치가 되면서까지 포기하는 일 없이 그럭저럭 12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마라톤 전 코스를 계속 달리는 것이리라. …. 

계속해서 횟수를 늘여 가고  한계를 조금씩 올려감으로써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자기가 아직 모르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끌어내 보고 싶다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 생각은 평소 내가 장편 소설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거의 비슷하다.


 책은 미국 케임브리지 (보스턴 근처)에 체류하며 있었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마라톤과 비슷하다. 계속해서 한계를 조금씩 올려가며 지칠 대로 지치지만 포기하는 일 없이 계속 달리는 삶. 그럼에도 중간중간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보람을 느끼며, 세상을 따뜻하게 관찰한다. 책은 소설을 쓸 당시 비하인드스토리와 함께 미국에 살면서 느끼고 관찰했던 여러 가지 시선들을 담고 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하루키라는 사람에 대해 더욱 가까이 알게 된다. 자연스레 그의 소설도 가까워진다. 





하루키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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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지칠 대로 지치고 파김치가 되면서까지 포기하는 일 없이 그럭저럭 12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마라톤 전 코스를 계속 달리는 것이리라. …. 

계속해서 횟수를 늘여 가고  한계를 조금씩 올려감으로써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자기가 아직 모르는 것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끌어내 보고 싶다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 생각은 평소 내가 장편 소설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거의 비슷하다. 어느 날 갑자기, ‘자아, 이제부터 장편 소설을 쓰자’고 생각한다.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몇 개월이나 몇 년 동안 숨막히게, 신경을 극단적인 한계로까지 집중시켜 가면서 장편 소설을 하나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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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누가 뭐라고 하든, 용기가 있든 없든, 마라톤 풀 코스를 뛰고 난 다음에 먹는 풍성하고 따뜻한 저녁 식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 중 하나다. 

 누가 뭐라고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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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히 페리 호라는 것은 좀 불가사의한 느낌을 주는 교통 수단이다. 비행기를 탔다가 내리면, ‘자아, 이곳은 이제 다른 장소다’ 하는 단호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페리 호라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그곳에 실제로 적응하기까지는 기묘할 정도로 시간이 더디게 걸린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딘가 떳떳치 못한 일종의 서글픔이 따라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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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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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언제나 컨디션이 좋을 순 없다. 오랫동안 뭔가를 계속 하자면 산도 만나고 골짜기도 만나는 법이다. 컨디션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자신의 페이스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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