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책 리뷰
달과 6펜스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쓰인 작품이다. 실제 서머싯 옴은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면서 폴 고갱에 대해 알게 되었고, 깊은 인상을 받고 이 책을 쓰게 된다. 이 책은 1919년에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적 인기를 끌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얼마나 불편하게 보이는지. 왜 이런 인물을 쫓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했을까?
1919년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1차 세계대전에 끝나고 전 세계(여기서 세계란 유럽과 미국 중심)는 전쟁을 통해 인간 문명사회에 대한 불신과 갈등이 있던 시기였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은 기계부품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었고, 하루하루 현실 속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이상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스트릭랜드는 그러한 욕망을 대변하는 신화적 존재였다.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책의 서장에서 스트릭랜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작가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스트릭랜드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 실제 폴 고갱은 금융위기로 직장에서 잘리고 생계가 어려워져 부인과 헤어지게 되었고 미술상인 고흐의 형 테오의 마음에 들어 고흐랑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고흐의 귀가 잘리며 파국을 맞이했죠) 돈이 궁핍하던 고갱을 형이 일하는 파나마로 일용직일을 하러 갔다가 마르티니크섬에서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발견하고 타히티로 순수와 원시적인 모습을 찾으러 가죠. 스트릭랜드는 폴 고갱의 순수한 예술가로서 영혼만 가져와 캐릭터를 입혔습니다. 물론 폴 고갱의 여자관계는 매우 지저분했지만요.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상을 향해 도전하는 스트릭랜드에게 열광한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와 산업혁명, 세계대전을 지나며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갈망하게 되고, 스트릭랜드는 자유로운 영혼의 대표적인 신화가 되죠.
대개의 사람들이 틀에 박힌 생활의 궤도에 편안하게 정착하는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던 그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스트릭랜드 부인이 거짓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자신과 남편의 관계가 늘 좋았다는 식으로 암시하는 말솜씨를 가지고 있음에 놀랐다.
또한 작가는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여자는 어떻다느니 이래서 안된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현대 우리가 봤을 때 다분히 불편하지만, 당시 시대상과 사람들의 혐오적인 모습을 비꼬기 위해 캐릭터들을 만들게 된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고급스러운 취향과 파티를 즐기고 사람들의 평판을 신경 쓰고, 스트릭랜드가 유명해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시 런던 문단과 사교계의 속물적인 모습들과 순진하기만 하고 팔리는 그림만 그리는 화가, 육체적인 모습만 원하는 블란치, 고결한 삶을 선택한 동료 덕분에 부를 누리면서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카마이클 등 고갱을 둘러싼 캐릭터들은 당시 서머싯 옴이 혐오하던 속물적인 모습들이다. 그 속에서 순수함과 원시적인 고결함을 위해 문명을 벗어던진 고갱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예술가를 발견한 것이다.
서머싯 옴은 스트릭랜드와 현실 속물들 모두 비판하고 싶었다. 이상을 뜻하는 달과 속물을 뜻하는 6펜스를 제목으로 지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폴 고갱은 더욱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고, 그의 뜻과 다르게 자유의지를 부르짖는 영웅이 되어버렸다. 시대에 따라 책의 보는 시선과 해석하는 여지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고전은 언제나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