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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Dec 12. 2021

프라하의 봄에게 들려주는 유쾌하고 따뜻한 위로와 성찰

영국 왕을 모셨지 - 보후밀 흐라발 책 리뷰


대문호 헤밍웨이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작가가 가질 수 있는 지고의 재능으로 꼽은 바 있다.

보후밀 흐라발의 생애를 잠깐 돌아본다면 1914년에 태어나 대학생일 때 독일 나치에게 나라가 점령당하고, 독립을 이루자마자 소련에 의해 공산화가 된다. 1963년 책을 출간하고 이듬해 유명해지지만 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금서로 지정되며 오랜 기간 동안 통제와 검열을 당한다. 그럼에도 체코를 끝까지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로 망명한 우리나라에서 훨씬 유명한 밀란 쿤데라와 달리 그는 핍박 속에서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키며 남는다. 세계적으로 밀란 쿤데라만큼 유명하지만 체코를 벗어나지 않았던 그였기에 그런지 한국에서는 유독 잘 알려지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난 뒤 서평을 쓰기 전에 작가의 생애와 책이 쓰인 연도를 확인한다. 특히 단순 오락물이 아닌 시대상을 반영한 고전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짙어진다. 작가의 생각과 그 시대가 가진 시대상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생각한다. 무언가 결여되었거나 불우한 유년시절을 살았거나, 남들이 겪지 못한 다양한 일을 겪었다던가, 역사적인 큰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던가 하는 각자의 경험이 글로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꼭 가난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보후밀 흐라발은 나치 독일 시절 온갖 다양한 일들을 겪었으며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독립 - 세계대전 - 독립 - 공산화 - 프라하 봄 - 공산화 붕괴 등 체코 현대사를 전부 관통한다. 웨이터 디테처럼 관찰하고 보고 듣는다. 물질적인 세태와 허영, 세속적임, 향락과 쾌락, 성공 속에서 정작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흐라발이 당시 체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 책은 1971년 출간되었다. 불과 몇 년 전 1968년은 프라하의 봄이라 일컫는 자유화 운동이 일어났고, 아쉽게도 소련의 무력 진압으로 무참히 실패하게 된다. 많은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소련으로 끌려가게 되고, 1989년까지 계속 공산정권이 이어진다. 체코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흐라발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들은 열망했던 자유가 남의 나라 군홧발에 무참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절망했으며, 누군가는 그저 침묵하기를 원했으며, 누군가를 끝까지 투쟁하기 바랐고, 누군가는 앞잡이가 되어 지금의 부와 명예를 누리려 했을 것이다.


1969년 1월 21세 얀 팔라흐라는 청년이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서 소련의 압제에 대항해 분신자살을 한다. 분신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두게 되는데, 치료 중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소련의 침략에 항거하겠다는 이유보다는, 소련의 침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대다수가 보여준 도덕성의 상실에 항거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지금도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 가면 십자가 모양의 기념비가 그를 기리고 있다. 프라하의 봄에 대해서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소설로도 함께 느끼면 좋을 것 같다.


디테의 인생은 기구하다. 행운이 불행이 되고 불행이 행운이 되고, 백만장자가 되어 호텔 주인까지 올라가지만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 전반적인 분위기는 해학과 유머가 넘친다. 뭔가 슬퍼야 하는데 슬프지가 않고 오히려 동화처럼 느껴지고 불행이 오지만 그럼에도 행운이 함께 한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격언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상실감과 패배감에 빠진 체코 국민들에게 그는 디테의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개인의 존재가치와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위로와 성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술집에 앉아서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본질이 사실은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때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음, 죽음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영원과 불멸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인 것이다. 이때 자신의 인생 여정의 무의미를 맛보며 어차피 지속되지 못할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 바로 그것이 벌써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의 시작인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맛보고 경험하는 일은 인간을 비통하게 만들지만 또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주기도 한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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