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 후기
슬램덩크 더 퍼스트 극장판이 개봉했다. 어린 시절 가슴 뜨겁게 했던 5명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어린 시절 슬램덩크를 생각했지만 극장에서 만난 슬램덩크는 나의 기대와 전혀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혹평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호흡이 길다거나 교차되는 이야기가 흐름을 방해한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극장을 빠져나와 밀려오는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25년이 지나 다시 만난 슬램덩크가 더 이상 옛날 슬램덩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작가도 우리도 2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
슬램덩크 극장판은 송태섭의 과거와 하이라이트 경기인 산왕전을 교차로 보여준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과거 서사와 산왕 경기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교차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MBTI의 I와 E를 비교하는 듯 말이다. 송태섭 과거 이야기는 2D 애니메이션으로 정적이고 음악도 잔잔하거나 매우 느리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 답답해질 때쯤 산왕 경기로 돌아온다. 일렉 기타가 연주되고 빠른 비트 박자에 맞추어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이루어진다. 현실 농구 경기를 연상케 한다. 정신없이 몰아칠 때쯤 다시 송태섭의 과거로 돌아간다. 한 박 자 쉬고, 숨 한 번 다시 고르고, 찬찬히..
송태섭의 고향은 오키나와이다. 조용한 시골 어촌 마을 풍경이 이어지고, 송태섭의 어머니가 혼자 앉아 있는 해변은 사람 한 명 없는 조용한 곳이다. 다시 산왕전으로 돌아가자. 관중들도 빽빽하게 찬 농구경기장에서 수천 명의 응원과 함성 소리가 들린다. 농구 명문 산왕공고는 명문인 만큼 일사불란하게 대규모 응원단이 응원을 하고 있다. 송태섭의 과거는 항상 조용하고 정적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송태섭의 지금은 열정 가득하고 함성 가득하다.
그러한 팽팽함은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서로 교차한다. 경기 마지막 승부를 가로지르는 슛 장면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경기가 슬로 모션으로 흘러간다. 함성 소리가 사라지고, 신나고 빠른 음악이 사라지고, 숨소리마저 내지 못할 정도로 아무 소리 없이 경기가 진행된다. 다시 장면이 바뀌고 엔딩에서 조용한 해변이 수많은 피서객들로 가득 들어찬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평소에 혼자 앉아 있던 해변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 앉아있다. 조용했던 과거는 다시 시끄러워지고, 시끄러웠던 지금은 다시 조용해진다.
일본인 첫 NBA 선수 타부세 유타
2004년 일본인으로 첫 NBA 데뷔를 하게 된 타부세 유타 선수. 그는 슬램덩크에서 산왕공고의 모티브가 된 노시로 공고를 나와, 짧은 일본 리그 생활을 한 후 NBA에 일본인 첫 선수로 데뷔하게 된다. 그의 역할은 포인트 가드. 영화 마지막에 NBA 선수로 등장하는 송태섭과 겹치게 보이는 건 우연일까. 슬램덩크는 1990년에 첫 작품이 나온 후 1996년까지 연재했다. 산왕전이 시작한 95년 6월, 예언을 한 것일까. 타부세 유타는 96년 노시로 공고에 입학하여 대회 3관왕, 전국제패 3연패의 무시무시한 성적을 거두며 노시로 공고를 일본 최강 학교로 만듭니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작가가 "슬램덩크 그로부터 10일 후" 이야기를 한 폐교 칠판에 그렸던 일화가 있습니다. 거기서 마지막에 NBA 선수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는 타부세 유타와 그 이후로 NBA 진출한 일본인 농구 선수들에 대한 자부심을 크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독자도 작가도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모두 변하고 성장했다.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를 지나오면서 나의 MBTI는 2~3번 이상 바뀌었다. 10대 때 만났던 이노우에 다케히코 (슬램덩크 작가)와 25년이 지난 지금의 이노우에는 달랐다. 그 변화는 슬램덩크 이후 작품인 베가본드에서 살짝 알 수 있다. 최강의 무사 자리만 바라고 검을 사용하던 무사시가 수많은 강적을 만나고, 최강이라 불리던 야규와 요시오카를 만나고 난 후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베가본드 초반의 날카로운 그림체도 시간이 지나며 펜을 붓으로 바꾸면서 선의 강약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한층 유려한 그림체로 변화한다.
극장판은 작가 본인이 감독까지 맡아 제작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어린 시절 독자들도 어느덧 30,40대로 성장했고, 작가도 한층 성장하고 변화를 겪었다. E와 I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성장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균형을 이루며 그래 내가 누구냐? 고 물었을 때 나는 나라고 대답하는 나로 성장했다. 정대만이 내가 누구지? 물음을 물을 때, 영화에서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장면이 넘어간다. 작가도 우리도 더 이상 과거의 슬램덩크로 남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I와 E 사이 그 어딘가 균형을 이야기해 주기 위해 슬램덩크를 다시 제작했지 않을까.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