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팕 Dec 12. 2022

엄마 떡볶이는 맛이 없다.

엄마 떡볶이는 맛이 없다.


난데없이 엄마 디스로 시작하는 글이라니. 불효녀가 따로 없다. 설령 패드립이라고 할 지라도 내 생각은 확고하다. 엄마 떡볶이는 맛이 없다. 물론 엄마가 하는 음식 모두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역시 못을 박아 두어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60kg 대 몸무게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는 비결 역시 엄마의 손맛 덕분이다. (덕분인 것이 맞겠지? 감사합니다 엄마.) 이런 사실을 꺼내어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엄마는 손맛이 좋은 사람이다. 손맛이 좋다 뿐이랴? 손이 크기도 정말 크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손 큰 엄마로 나오는 이일화의 요리 스타일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유년기에 보고 자란 엄마 음식 하는 스타일 그 자체였으니까. 잡채를 해도, 사라다를 해도 다라이에 버무리는 엄마였다. 식구가 많기도 했지만 그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해도 얼마 안가 금방 동이 날 만큼 엄마의 음식은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유독, 유독 떡볶이는 맛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떡볶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해준 떡볶이다. 조를 짜서 해야 하는 숙제 때문에 반에서 가끔 이야기하는 서먹한 친구 서너 명이 집에 온 날이었는데 엄마는 커다란 중식 웍에 떡볶이를 해서 방으로 들여보냈다. 떡볶이라기보다 떡탕이었다. 지금보다 한참 수줍은 성격이었던 나는 떡볶이인지 떡탕인지 모를 모양새가 퍽 부끄러웠다. 그 떡볶이는 뭐든지 컸는데, 떡도 크고 어묵도 크고 파도 크고 웍도 컸다. 계란도 통째로 툭 들어가 있었다. 마라탕이 없던 시절이지만 지금으로 치면 마라탕 냄비 크기의 떡볶이였다. 떡은 오래 익혀 통통하게 불어 있었고, 어묵도 솜이불처럼 두툼했다. 어찌 생각하면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일 수도 있지만 학원 앞 녹진하고 꾸덕한 컵볶이에 익숙했던 나는 어쩐지 커다랗고 싱거운 떡볶이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삼십 대가 된 어느 날, 홍신애 선생님이 쓰신 책 ‘모두의 떡볶이’ 북 토크에 갔더랬다.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다 큰 어른들이 눈을 반짝이며 떡볶이 이야기를 하는 귀여운 자리였다. 어느 분은 “저는 엄마가 해준 떡볶이가 가장 맛있어요.”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어 내심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던 찰나, “엄마 떡볶이들은 대체로 맛이 없는데 의외네요.” 유레카!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어! 나는 홍신애 선생님의 말에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분식집을 하셨거든요." 올커니. 그러면 그렇지~ 안도감이 들던 차에 홍신애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보통 우리 엄마들은 애들 건강하게 먹이려고 야채도 많이 넣고 푹 끓이거든요. 그래서 엄마들 떡볶이는 맛이 없죠.”


뭐든 많고 커다랬던 그 떡볶이가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파도 컸고, 양배추도 컸다. 채소에서 수분이 나왔으니 넣은 물보다 더 수분도 많아져 떡은 질펀하게 불어나고 어묵도 제 크기보다 훨씬 커다랗게 푹 쪄진 것이다. 순간 내가 부끄러워했던 떡볶이는 떡탕의 행색을 한 넘치는 사랑이었던가. 그제야 돌이켜보니 여고생 딸내미 친구들에게 맛난 것을 해주겠다고 저녁부터 밥 아닌 별식을 마련했을 엄마가 귀찮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여고생이 십수 년이 지나 손님을 초대하고 음식을 차려주는 일에 흥미를 붙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요리연구가라고는 스스로 소개하지 못하지만 ‘요리먹구가’가 된 지금이 있기에 어찌 보면 엄마의 떡탕이 한몫 단단히 했겠다 싶다. 뭐든 많고 커다랬던 떡볶이가 부끄러우면서도 내 DNA에는 뭐든 많고 커다랗고 푹푹 찌는 사랑과 인심이 조미되어가고 있었다. 늦은 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귀찮거나 고단하지 않은 것도 보고 자란 인심과 배려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다시 한번 그날을 떠올리며 엄마에게 문자를 남겼다. "엄마, 엄마 떡볶이는 맛이 없었던 거 같아. 싱거웠어.” 나는 은근히 엄마를 놀려줄 심산으로 말을 꺼냈지만 엄마는 타격감 제로였다. “엄마표는 다양해~”




*이 글은 배달의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에 기고했던 음식 에세이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습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