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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자까 Mar 28. 2017

책에서 돈이 나오지는 않는다

독서의 필요와 지속성

한때 어르신들에게 듣곤 한 말이 있다.

"책만 들여다 봄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사실 그런 말을 하신 분이 있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


한국의 근대사는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압축 성장을 구가했던 역동적인 변혁의 시대였다. 시대는 그들에게 직접 발로 뛰며 몸을 쓰며 가정과 국가, 사회의 경제 부흥에 이바지하라는 산업역군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물론 부모 세대들은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공부에 올인할 것을 주문하지만 정작 그 본인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시대를 살아왔기에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이 더 중요한 삶의 목적이었고 돈 버는 일이 실질적 경제를 이끄는 힘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가만히 앉아서 샌님처럼 책만 들여다보기보단 밖에 나가 실질적 경제 활동을 우선시하라는 우스개 소리라 본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책만 열심히 판다고 당장 돈이 굴러 들어오지는 않는다. 독서의 재미를 막 알아가던 초기엔 돈을 벌 요량으로 경제서적, 특히 재테크, 주식투자 관련 책을 사다가 읽은 적이 있다. 경제 기조가 좋을 땐 책에 나온 이론과 법칙이 신기하리만큼 잘 들어맞았고 이익도 괜찮았다. 알게 모르게 동료들에게 숨은 비법을 은연중에 전파하는 조언자 아닌 조언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은 바쁜 직장 생활해가며 매 순간 들여다볼 수도 없었고, 불황기 때엔 그게 다 쓸모없는 짓이란 걸 알았다. 시장의 이해와 인간의 탐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얄팍한 기술에만 의존하여 돈 벌 생각만 하니 제대로 들어맞을 리가 없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각종 육아서를 섭렵했다. 제대로 된 육아법이라는 미명 아래 머리 좋아지는 육아법, 미운 행동 대처법, 소리 지르지 않고 아이 키우기 등등. 양육 방법에만 초점이 맞추어졌지 아이의 욕구나 제대로 된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니 수박 겉핧기식의 육아법은 상황이 변하고 내 아이의 특수성에 맞지 않을 때면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각종 자기계발서, 직장 노하우 관련 서적, 돈 쉽게 버는 법 등 세상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기술적 어려움과 경제난 극복을 목적으로 한 서적들을 접하며 느낀 점은 방법론에 집착해서 기술적인 면을 부각시킨 독서는 상황과 여건에 따라 맞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았고 길게 봐선 직접적으로 경제적 이득에도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불순한(?) 독서는 진정한 독서인의 자세가 아닌 거 같고 시간 낭비만 하는 것 같아 일치감치 접었다. 그리고 지금도 유일하게 손이 닿지 않는 도서류가 재테크, 자기계발서 등의 종류다.


그럼 왜 독서를 해야 하고 독서의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얻게 될 이득은 뭘까.


독서의 일차적 목적은 지식 습득이나 재미 추구가 먼저다. 재미가 없으면 지속적인 독서가 힘들다. 또한, 소기의 지식 함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독서는 곧 흥미를 잃게 된다. 혼자 좋아서 하던 써먹을 때가 있어서 하던, 자신의 관심 분야나 흥미를 유발하는 쪽부터 시작하는 게 지속적인 독서 습관을 들이는 좋은 방법이다.


독서의 지속성을 유지함으로써 얻게 될 이득을 먼저 정리해 보면,


1. 효율적인 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독서를 하는 시간은 바쁘게 돌아가는 반복된 일상 속에서 틈나는 시간을 골라 독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업무 시작 전 잠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출퇴근 시간, 점심 식사 후 잠깐의 여유시간, 퇴근 후 시간, 잠들기 전 잠시. 바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독서할 짬이 없을 것 같지만 하루에 몇 번을 쪼개어서라도 짧은 시간 동안 독서 시간을 만들어 가다 보면 오히려 시간 계획에 따라 굉장히 효율적으로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다. 독서를 하기 시작하면 이런 유휴(잉여) 시간을 독서라는 시간으로 대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2. 습관화가 몸에 베인다.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양치질을 규칙적으로 하거나,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해 반복적으로 운동을 하듯 규칙을 습관화하게 되면 하지 않을 때의 그 찜찜함 때문에 다시 하게 되고 찾게 된다. 행동에 대한 습관화가 몸에 배이면 그 프로세스가 머릿속에 각인이 되고 이후에는 하지 않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처럼, 지속적인 독서는 행동의 습관화가 가능하도록 해준다.


3. 집중력이 향상된다. 재밌는 만화책에 빠져 있을 때를 떠올려보자. 평소에 공부와 담을 쌓고 있다가도 특정 만화책에 빠져 밤을 새 본 기억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독서의 재미에 빠지면 그 시간만큼 집중력이 올라간다. 빠르게 다변하는 세상에서의 조급함과 신속함으로 내몰리는 현대인에게 독서만큼 한 가지에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놀이거리가 얼마나 될까. 집중력 향상에 독서만큼 좋은 활동은 없다.


4. 상상력과 생각의 깊이를 키워준다. 피상적인 정보와 자극적인 뉴스거리를 쫒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깊고 풍부한 지식을 멀리하고 조급함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책을 통한 상상력은 무한하다. 텍스트를 쫒아가며 집중해 보면 작가가 풀어헤치는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에 흠뻑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독서의 지속성을 유지하여 얻게 될 이득도 독서의 강한 장점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독서를 통한 가장 큰 이득과 독서를 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겸손'이라는 삶의 경건한 자세를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책을 읽는 장점은 '겸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인의 인생 안에 나 스스로를 낮추는 위대함을 보기 때문이다.


인류 문화의 가장 큰 기여는 뭐니 뭐니 해도 책을 통한 지식의 무한한 축척과 다음 세대로의 전달에 있다. 제대로 된 책을 쓰는 작가는 적어도 몇 년에서 수십 년 또는 평생을 통해 축적한 본인의 지식 총량을 책 한 권에 담아낸다. 그 책을 접하는 독자는 한 사람의 풍성한 인생을 보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소설책 한 권에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녹아들어가 있고,

심오한 철학책 한 권에는 사상가의 인간에 대한 번뇌와 고민이 숨어있고,

잘 쓰여진 시 한 편에는 위대한 시인의 함축된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렇듯 책 한 권에서 맛보게 될 이득은 사람들의 지식과 감성, 노력을 배우고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고 학식이 깊고 열정적이어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논쟁을 벌인 들, 내가 세상에 유일한 최고가 아님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이들은 무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위축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함을 알게 된다. 못난 직장 동료와 설전을 벌이다가도 분명 그 사람 입장에서는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거야 라고 한 번쯤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 말썽 부리는 아이를 만나게 되면 그냥 짜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뭔가 부족한 게 있으니 저러는 걸 꺼야 하고 경청하고 귀 기울여 더 가까이 들으려고 할 것이고, 세상이 좌와 우로 나뉘어 투쟁할 때 내가 아닌 쪽은 다 죽일 놈이 아니라 그들의 이해관계가 무엇이길래 저렇게 죽일 듯이 안달할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힘이 생긴다.


피상적 현상을 쫒아가기보다 다양한 범위의 독서를 통해 인간관계와 현상의 이면을 한 번쯤 더 보려는 노력, 그 속에 숨어있는 참 뜻과 세상의 깊이를 알아가는 눈이 생긴다. 겸손은 내가 부족해서 단순히 머리를 조아리는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겸손은 세상에 나보다 더 나은 방법을 알고 더 나은 생각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한발 물러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함으로써, 당장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이해와 양해를 통한 자신의 단편적 지식을 전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독서를 하는 행위는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하는 지식의 습득과 실천을 위한 행위만은 아니다. 독서는 멈출 수가 없고 평생을 곁에 벗 삼아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지혜를 넓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많이 듣고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며, 지혜를 더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것 만한 것이 없다' <홍재전서>


독서하는 처녀 <프란츠 아이블,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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