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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Jan 25. 2019

전통 없는 찻집이 대만에서 살아남는 방법

퇴사준비생의 타이베이 #1. 스미스 앤 슈

대만에서 맛보는 영국의 애프터눈티 셋트는 어떤 맛일까요? 타이베이의 찻집 스미스 앤 슈에서는 갓 구운 영국식 스콘에 홍차 대신 대만산 우롱차나 보이차를 곁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허브차, 과일차 등 이색적인 차를 페어링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찻집들이 대만산 차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낼 때, 스미스 앤 슈에서는 이국적 차 문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 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근본없는 뒤섞기가 아닌 참신한 어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차를 바라보는 관점과 차를 전달하는 방법에 단서가 있습니다.




대만의 우롱차 중에는 '동방미인차'라고 불리는 차가 있습니다. 홍차 소비 강국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만의 우롱차를 맛 보고는 동방의 미인이 연상된다고 한 데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여전히 영국 왕실에서는 매해 동방미인차를 구입하고 있으며, 최고급 동방미인차의 경우 글로벌 경매에서 600g이 수천만원에 거래되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대만은 차에 대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차를 즐겨 대만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차가 국내에서 소비되고, 일부 최고급 우롱차를 해외에서 수입하기도 합니다.


차에 대한 높은 수요만큼 많은 것이 차 판매점입니다. 대만의 수많은 차 판매점 중에서도 '린 마오 센(Lin Mao Sen)'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합니다. 1883년에 시작해 5대째 운영하고 있는 린 마오 센은 변화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보다 우직하게 전통을 고수합니다. 2013년에 오픈한 컨셉 스토어에서는 린 마오 센의 전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하되, 위엄을 뿜어냅니다. 매장의 천장은 찻잎을 거르기 위해 사용되는 대나무 선반을 형상화했고, 높은 층고와 적절한 조명을 활용한 내부에는 중후함이 감돕니다.

린 마오 센 매장 내부입니다. ⓒ트래블코드

린 마오 센의 매장 안에 들어서면 수십 개의 커다란 배럴들이 손님을 맞이합니다. 각 배럴에는 대만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에서 재배한 찻잎이 담겨 있습니다. 차의 가격은 매입가, 유통구조, 구매량 등에 따라 정해지지 않고 오로지 차의 품질에 따라 결정됩니다. 도소매 가격의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객을 위해 여행사 등의 에이전시에 커미션을 지급하는 일도 없습니다. 가격에 불필요한 거품이 끼는 것을 방지하고, 가격을 책정할 때 품질만을 고려 요소로 삼고자 했던 선대의 철학을 이어 받은 것입니다. 게다가 찻잎은 판매하지만, 차를 마시는 공간은 없습니다. 현대의 차 문화에 맞춰 테이크아웃 서비스라도 운영할 법한데, 찻잎이 아닌 우려낸 차를 판매하는 것은 다른 비즈니스라고 인식하고 전통 티 하우스의 면모를 고집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전통과 평판이 없는 찻집이라면 갖기 힘든 자신감입니다.


린 마오 센과 같은 전통의 강호들에 변화하는 차 문화에 맞춘 신생 찻집까지 더하면 대만의 차 시장은 그야말로 레드오션입니다. 업력이 짧은 티 하우스들은 전통도, 고객 기반도 없기에 터줏대감들과는 다른 노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2007년에 오픈한 '스미스 앤 슈(Smith & Hsu)'는 영리하게 자신만의 퍼플오션을 만들어 냅니다. '대만산' 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대만 차 시장에서 상호명을 버젓이 '스미스'라는 영어 이름으로 시작한 것부터 눈에 띕니다. 이국적인 정체성과 남다른 전략으로 치열한 대만의 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 온 스미스 앤 슈는 현재 타이베이에서 2개 지점을 탄탄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미스 앤 슈 난징점 매장 전경입니다. ⓒ트래블코드

#1. 단순하게 구분하면 문턱이 낮아진다


차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분야입니다. 종류도 많고, 같은 종류라도 찻잎과 첨가물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져 초보자들이 차의 종류와 차이를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스미스 앤 슈는 차의 종류와 차를 즐기는 순서를 단순하게 구분하여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고객이 될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자처합니다. 스미스 앤 슈 고객이면 누구나 차를 구분하는 종류와 스미스 앤 슈에서 판매하는 31가지 차의 차이를 이해하고 비교하며 취향대로 골라볼 수 있습니다. 초보자들에게 문턱을 낮추니 고객 기반이 넓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스미스 앤 슈는 어떻게 차에 대한 이해를 효과적으로 도왔을까요?


먼저 스미스 앤 슈는 메뉴판을 활용합니다. 스미스 앤 슈의 메뉴판에서는 차 종류를 홍차(Black), 우롱차(Oolong), 가향차(Scented), 허브차(Herbal), 혼합차(Blended), 과일차(Fruit), 녹차(Green), 보이차(Pu erh) 등 8가지로 구분합니다. 8가지 차 종류에 '색상 코드(Color Codes)'라고 불리는 8가지 색깔을 부여하고, 메뉴판의 차 이름 앞에 그 차가 속하는 카테고리의 색상을 칠해 둡니다. 예를 들어 허브차에 속하는 카라멜 루이보스 티 앞에는 허브차를 의미하는 보라색 동그라미를 표시하는 식입니다. 메뉴판의 색상 코드만 봐도 그 차가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각 메뉴에는 숫자를 부여하여 차를 구분합니다.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넘버링만으로 생소한 차 이름이 쉬워집니다.

스미스 앤 슈에서 판매하는 차들은 8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카테고리마다 고유의 색깔을 부여 받습니다. ⓒ스미스 앤 슈 홈페이지

각 차에 부여된 숫자가 차를 쉽게 구분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목적은 메뉴판의 이름과 실물 찻잎을 매칭하는 데에 있습니다. 스미스 앤 슈에서는 메뉴판과 함께 30~40가지 찻잎 샘플이 담긴 작은 유리병들을 한 판에 가져다 줍니다. 고객은 서빙된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찻잎을 시향할 수 있는데, 각 유리병 뚜껑에는 메뉴판에 적힌 차의 숫자가 표기되어 있어 매칭해 볼 수 있습니다. 메뉴판에서 42번에 해당하는 '계절 우롱차(Season Oolong)'를 시향해 보고 싶은 경우, 유리병 중에 42번이라고 쓰여 있는 뚜껑을 열어 시향해 보면 되는 것입니다. 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숫자를 보고 각 차를 비교하며 더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차 샘플을 서빙하는 나무판은 '말린 찻잎을 보고', '우린 찻물의 색깔을 보고', '차의 향을 맡고', '차 맛을 음미하고', '차를 평가'하는 5단계에 따라 차를 즐기라고 알려 줍니다. 차를 맛보는 방법까지 단계별로 알려주니 차를 접하는 초보자의 부담이 한껏 줄어듭니다.

판매하는 수십 가지의 찻잎 샘플들이 하나의 나무 판에 담겨져 있습니다. 테이블 별로 메뉴판과 함께 서빙됩니다. ⓒ트래블코드
찻잎 샘플이 담긴 유리병 뚜껑 위에는 각 찻잎이 속하는 카테고리, 찻잎의 이름, 숫자 등이 적혀 있습니다. ⓒ트래블코드
찻잎 샘플들과 함께 차를 즐기는 5단계 방법도 알려 줍니다. ⓒ트래블코드

#2. 공통분모로 연결하면 시장이 넓어진다


차 문화는 대만, 중국 등의 동양 문화권에서만 소비되어 온 것이 아닙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기호식품이자 문화의 한 축입니다. 스미스 앤 슈는 이 점에 착안하여 차를 대만의 전통 문화가 아니라 동서양을 잇는 매개체로 재해석합니다. 여기에 바로 상호명이 스미스로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미스는 영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 중의 하나이고, 슈는 대만의 대표적인 성씨입니다. '앤(&)'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두 성씨는 동양과 서양을 잇고, 전통과 현대를 잇고, 유산과 혁신을 잇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차를 공통분모로 동양의 차 문화와 서양의 차 문화를 융합해 서양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 서양 문화가 궁금한 기존 세대, 외국인 관광객 등 문화권과 세대를 막론하고 더 넓은 시장과 고객들을 맞이합니다.


스미스 앤 슈에서는 5가지 대만산 차와 영국, 독일 등에서 수입한 다양한 원산지의 차를 취급합니다. 31가지 차 중 5가지 차만이 대만산으로, 비중이 20%도 채 되지 않는 셈입니다. 대만산 차를 고집하기 보다는 수입산 차도 함께 판매해 고객들이 보다 넓은 범위의 차를 경험할 수 있게 합니다. 원산지를 강조하거나 대만산 차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일도 없습니다. 원산지에 대한 편견없이 다양한 차의 매력을 소개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게다가 우유, 설탕, 꿀, 레몬, 얼음 등을 첨가한 변형 메뉴로 차의 경계를 확장합니다. 전통적인 티 하우스에서 정통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입니다. 차에 대한 편견없는 접근과 현대적인 재해석이 타 문화권 사람들과 젊은 세대들까지도 고객으로 포섭합니다.

재료의 양, 물의 온도, 차를 우리는 방법 등을 달리 해 차의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티 베리에이션 메뉴입니다. ⓒ트래블코드

차 메뉴뿐만 아니라 음식 메뉴에서도 동서양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스미스 앤 슈의 메뉴 중에는 다양한 핑거 푸드와 티를 함께 즐기는 애프터눈티 세트가 있습니다. 애프터눈티 문화는 출출한 오후에 홍차와 간단한 음식을 함께 먹는 영국의 대표적인 차 문화입니다. 애프터눈티 세트를 주문하면 마음에 드는 한 가지 차와 2단 트레이에 놓여진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등 서양식 핑거 푸드를 함께 먹을 수 있습니다. 애프터눈티 세트라고 해서 함께 마시는 차가 꼭 홍차일 필요는 없습니다. 기호에 따라 대만산 우롱티를 마셔도 괜찮습니다. 세트가 부담스럽다면 샌드위치, 샐러드, 쿠키, 케이크, 스콘 등 서양식 단품 음식 메뉴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차를 공통 분모로 함께 먹는 음식을 서양식으로 갖추니, 차를 경험하는 방식에 다채로워집니다.

다양한 차와 핑거 푸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애프터눈티 세트입니다. ⓒ트래블코드
영국식 스콘을 단품으로 주문해 아쌈 밀크티와 함께 즐길 수도 있습니다. ⓒ트래블코드

#3. 맥락을 제안하면 지갑이 열린다


스미스 앤 슈에서는 차 외에도 말린 찻잎, 찻잔 등의 굿즈를 판매합니다. 그렇지만 찻집이 넘쳐나는 타이베이에서 찻잔과 찻잎을 진열해두는 것만으로 고객들의 지갑을 열기는 어렵습니다. 제품도 유통 채널도 과잉인 시대에는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맥락'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미스 앤 슈는 굿즈를 구매하는 맥락을 제안하여 고객들의 추가 구매를 유도합니다.


스미스 앤 슈는 굿즈를 구매하는 맥락으로 별자리를 활용합니다. 동서양 문화권을 막론하고 별자리별 성격이나 성향이 있다고 믿는데, 스미스 앤 슈는 이를 활용하여 각 별자리의 성향에 따라 어울리는 차를 매칭해 보여줍니다. '장미와 같은 열정과 녹차와 같은 발랄한 개성을 가진 양자리에게는 불가리산 장미 녹차가 어울립니다.', '가끔씩 지나치게 이성적인 물고기 자리는 연애 세포를 깨우는 과일차와 사랑에 빠져 보세요.' 등의 위트있는 묘사가 구매욕을 자극합니다.


그 옆에는 해당 별자리의 일러스트를 입힌 머그컵도 함께 판매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난 날짜에 따라 별자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별자리에 맞는 차에 눈길이 가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별자리에 맞는 차를 구매할 수도 있고, 생일 선물용으로도 제격입니다. 게다가 당일 카페 이용객에게는 15%의 할인 혜택을 제공해 강력한 추가 구매 요인을 하나 더 덧붙이는 영민함도 잃지 않습니다. 굿즈를 구매하는 맥락은 고객의 추가 구매를 유도하여 객단가를 높입니다.

별자리별 어울리는 차와 머그컵을 판매하는 매대에서는 각 별자리와 차의 궁합에 대한 위트 있는 설명을 함께 제공합니다. ⓒ트래블코드

매장에 들어오는 고객이 누구든 괜찮다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수단의 하나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프 톨스토이는 훌륭한 예술의 특성 중 하나로 만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감정을 전하는 보편성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말처럼 예술은 감정을 소통하기 위한 매개이며, 예술이 보편적 감정을 건드릴 수록 소통에 따른 감염력이 강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미스 앤 슈 매장은 감염력을 가진 하나의 예술입니다. 스미스 앤 슈 난징점에선 자연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름을 형상화한 천장의 조명은 대만 디자이너의 작품입니다. 하얗고 커다란 조명의 듬성듬성한 직물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빛 덕분에 마치 집 밖의 뜰에 앉아 차를 마시는 기분이 들며 보편적 감정을 자극합니다.

스미스 앤 슈 난징점 매장에는 안락한 좌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매장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트래블코드
구름을 형상화한 조명은 편안하면서도 독보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트래블코드

또한 대만의 숲에서 가져온 나무로 제작한 오브제들도 눈에 띄는데, 공중에 매달린 나무통 위에 차를 상징하는 이끼와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인류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식물인 차의 상징적 요소를 평면, 직선 등의 인공적인 패턴으로 배치하여 차로 대표되는 자연과 인류 문명 간의 조화를 표현합니다. 거창해보일 수 있지만 예술적 의도를 가진 오브제들을 통해 오랜 시간 속에 녹아 있던 본연적 감정을 일깨웁니다. 이처럼  매장 내에 구현한 예술이 가진 보편성은 동서양을 잇고자 하는 스미스 앤 슈의 컨셉을 강화시켜줍니다. 예술적 요소들이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바탕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인류 문명 간의 조화를 표현한 오브제입니다.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눈길을 사로 잡는 흡입력이 있습니다. ⓒ트래블코드

이름에 함축하고, 차와 굿즈에 적용하며, 매장에 담아낸 고민과 시도 덕분에 스미스 앤 슈에서의 시간에는 농도가 우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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