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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대 Jan 21. 2019

최후의 책임자, 주주

대차대조표를 통해 알아보는 주주자본주의 철학과 스타트업 이야기

주주자본주의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제도입니다. ICO(코인발행)STO(증권형 토큰) 등 대안적인 제도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주주자본주의의 아성이 흔들리는 조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대안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을 만큼 합리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모든 제도는 설계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설계자들은 설계의 철학을 제도 속에 녹이고 싶은 강한 유혹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미국의 파운딩파더들이 그러했고, 프랑스와 영국의 계몽주의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을 사로잡았던 성리학의 이상, 통일 중화를 설계한 진시황의 법가철학, 팍스로마나를 열어제친 로마인의 공화주의가 그러합니다.


세계 최초로 주식거래가 시작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VOC)의 주주들이 보인다 (Beurs van Hendrick de Keyser in Dutch


주주자본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적으로 제도에 제약과 병폐가 유발되었을 뿐, 주주자본주의에도 나름의 논리와 철학이 탄탄히 배어있습니다. 그 명백한 근거가 바로 재무제표입니다. 특히 재무제표 중 손익계산서에 설계자들의 논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 논리는 복식부기의 설계자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에서부터 동인도회사의 네덜란드를 거쳐 현재의 월스트리트 중심으로 구축된 IFRS(국제회계기준)까지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손익계산서의 대략적인 구조. 차감되는 비용을 중심으로 보면 가치 배분의 순서와 리스크 배분 순서를 알 수 있다


이 설계로직은 대부분의 경영대 재무 첫 수업 맨 앞단에서 배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론이나 첫 수업이 그러하듯, 시험을 위해 잠시 스쳐지나간 후 홀대받곤 하지요.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근본 로직과 철학의 중요성을 점점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시스템과 제도는 결국 그 가치와 로직에 귀속되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고객: 가장 먼저 가치를 배분받고, 리스크는 가장 적다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는 고객이 제일 먼저 가져간다. 하지만 고객의 리스크는 가장 낮다



손익계산서의 시작은 매출입니다. 매출은 고객사로부터, 회사가 창출한 재화와 용역의 가치로 유입되는 현금성 자산입니다. 매출은 회사 입장에서는 소득이지만, 한편으로는 회사가 고객에게 제공한 가치에 대한 정당한 대가입니다. 고객의 현금과 교환한 것이지요.


회사의 경영활동에서 가장 먼저 가치를 배분받아가는 건 고객인 셈입니다. 고객은 딱 그만큼까지의 책임만 집니다. 얻어가는 것도 다른 주체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해갈 수 있죠. 회사의 흥망성쇄는 고객에게 그리 중요한 이슈는 아닙니다. 잠시 아쉬울 수 있지만요. 대안이나 대체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와 파트너사: 그다음으로 배분받고, 리스크도 그 다음


기업의 노동자들이 재화 및 용역 생산 과정에 기여한 부분은 매출원가와 급여로 표시된다. 매출원가에는 제품 생산에 들어간 재료비도 포함되는데, 이는 파트너사에 대한 기여의 배분이다


다음으로, 매출에서 여러 비용들을 차감하기 시작합니다. 최우선적으로 차감되는 것은 매출원가(COGS)에 반영되는 인건비(DL, direct labor)와 재료비(DM, direct material) 입니다. 이 또한 노동자의 노동가치와 회사의 현금이 교환된 것이고, 회사의 가치 생산을 위해 사용된 원부자재의 가치와 회사의 현금이 교환됩니다.


노동자와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들은 기업 생산 과정에서 일부의 책임을 담당하고 현금성자산을 교환합니다. 고객보다는 후순위이지만, 고객이 받아가는 가치보다는 보통 더 큰 잉여가치를 배분받습니다. 후순위자로 더 큰 리스크를 지기 때문입니다.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즉 고객이 가치를 먼저 배분받아가지 않았다면, 이들은 가치를 배분받지 못하게 되곤 하기 때문이죠. 그 결과는 노동자의 경우 임금연체나 해고, 실직이고,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파트너사의 경우 현금흐름 경색에서 더 심하면 거래선이 끊기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들은 딱 거기까지만 리스크를 집니다. 직원들은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파트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복수의 거래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다른 파트너를 찾아 떠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이나 거래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쪽이 종료 선언을 하지 않는 한 꾸준히 지속되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시간: 속절없는 세월이여


회사가 보유한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은 시간에 따라 가치가 감소한다. 기업의 시간도 손익계산서에 반영된다


흔히들 잊곤 하는 항목이죠. 기업이 존속해온 시간도 재무제표에 반영됩니다. 감가상각(depreciation)무형자산상각(amortizatin)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업의 자산가치는 시간이 지날 수록 깎여갑니다. 설비는 노후화되고, 지적재산권도 행사 가능한 유효기간이 있지요.


가시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지만, 기업 주주, 경영자와 임직원들의 기회비용도 일종의 감가상각 대상으로 유비(類比)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이 기업을 위해 봉사하면서 상실한 기회에 대한 가치인 셈입니다. 특히 초기기업이라면, 망할 각오를 하고 다른 기회를 포기한 채 달려든 창업 경영자와 주주의 비상한 각오는 정말 큰 가치입니다. 하지만 이 큰 리스크는 가장 마지막에 보상받습니다.






금융기관과 국가: 이자와 세금은 그 다음에


영업이익(EBIT)에 대한 배분은 금융기관, 국가로 이어진다. 꽤 큰 리스크를 지지만, 여전히 헷지 수단은 많이 보유한다


여기까지를 영업이익(operating profit) 혹은 세전이익(EBIT, earnings before interest and tax)라고 합니다. 그 말인즉슨, 그 뒤에 가치를 배분받는 주체가 차입금을 빌려준 금융기관과 국가라는 것이죠.


금융기관이 빌려준 자금은 부채이면서 회사의 자산이 됩니다. 단, 특정 시간동안 금융기관이 기업에 제공하는 기한이익 범위에 국한됩니다. 여기를 넘어가게 되면 보통 문제가 생기죠. 때문에 금융기관은 보통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잡아 리스크를 헷지합니다.


담보로 할 자산이 없는 스타트업이나 중소상공인은요? 이때 국가가 등장합니다. 국가가 나름의 기준으로 기업의 기술성을 평가해 보증해주거나(기술보증기금), 일부 규모의 신용을 대신 보증해줍니다(신용보증기금). 그 외의 각종 정부지원자금들이 스타트업과 중소상공인들을 위해 제공됩니다. 이 예산들은 보통 국가가 산업진흥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밑질 각오를 하고 편성하는 예산들입니다. 일종의 공공서비스죠. 꽤 큰 책임을 져 주는 셈입니다. 대신 그 책임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물론 일부 기업들, 속칭 좀비기업이라 부르는 기업들은, 이런 류의 지원금을 귀신같이 타 가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도 하죠.


국가는 일반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국방, 치안유지, 교육, 복지, 도로 철도 항만 등 인프라투자 따위의 공공서비스를 기업에도 똑같이 제공합니다. 그리고 기업활동에서 발생한 이윤의 일부를 법인세나 부가가치세, 국세, 지방세 등의 명목으로 국가에 납부합니다. 세금을 체납하게 되면 국가와 진행하는 비즈니스 기회가 대부분 막히게 됩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엄청 적극적으로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거나 현금화하려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국민경제 활성화라는 명목에서, 어느 정도 떼일 각오를 하고 느슨하게 환수하는 거죠. 국가의 이러한 의도적 태만, 혹은 느긋함 또한 공공의 이익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악용하는 기업들도 꽤 많이 있지요.


정리하면 금융기관과 국가는 어느정도 떼일 각오를 하고 들어오는, 나름의 리스크테이커입니다. 가치를 늦게 배분받는 대신, 리스크를 조금 더 집니다. 하지만 리스크를 헷지할 수단들을 나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주: 최후의 보루, 기업의 수호자


주주는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이 가치를 배분해간 후, 가장 뒤에 가치를 얻는다. 가장 큰 리스크테이커다. 그만큼  보상도 클 수 있다


보통 주주는 배당만 받거나, 주식의 시세차익만 거두는 무임승차자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 기업일수록, 주주는 가장 큰 리스크테이커인 경우가 많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망하지 않은 게 오히려 드물고 귀한 케이스니까요. 주주가 되기로 한 것 자체가 매우 큰 결심입니다. 


초기기업은 거의 모두가 비상장회사, 즉 유가증권시장인 코스피나 코스피에 상장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전부여서, 특별한 기회가 없다면 주식을 거래할 기회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익이 나는 경우도 극히 드물어서, 기업이윤을 배분받는 배당의 기회조차 거의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회사의 맨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들이죠. 적어도 보통주(common stocks) 기준으로 주식을 배분받기 위해 투자한 자본금의 액수 만큼에 대해서는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습니다. 리스크는 거의 극한입니다. 물론 상환권을 전제로 한 우선주(preferred stock)의 경우는 또 다르겠지요.


대차대조표를 봐도 그렇습니다. 주주는 고객이, 파트너사가, 직원들이, 은행이, 그리고 국가가 가치를 배분해 간 뒤에 남은 것을 배분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에서 지분율을 많이 보유한 주주일수록 회사를 무에서 유로, 즉 0에서 1로 (Zero to One) 만드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스크가 큰 만큼, 기대치도 크고, 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함께하는 경우가 많겠지요. 


리스크가 큰 만큼 과실(果實)도 큽니다.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면, 가장 큰 알파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주주라면 응당 회사의 미래를 고민합니다. 회사가 어렵다면 사재를 털어 증자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주식의 형태가 아니라도 회사에 기여할 방법을 능동적으로 찾습니다.


주주가 아니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주주 아닌 직원이더라도, 혹은 진심 어린 관계를 갖춘 파트너사나 고객이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조언이나 조력보다 더 확실한 의지의 표시는, 회사의 주주로 참여하는 겁니다. 회사의 미래 기회와 리스크에 함께 동참하겠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죠.






주주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귀하다


저희 데이터블의 경우,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해 오는데 주주님들이 참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도움의 손을 기꺼이 내밀어 줄 수 있는 분들이 다행스럽게도 함께 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동안 저도 적절한 도움을 주실 수 있을 주주님들을 모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고요. 


도움의 영역이나 방식은 다양합니다. 비즈니스 기회를 연결해주시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을 회사로 연결해주시기도 하고요. 좋은 투자자를 소개해주시기도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전해주시는 것도 큰 도움입니다. 아직 회사가 결정적인 위험에 처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지금 함께 해주시는 주주님들은 기꺼이 도움을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곧 저희는 새 주주를 모시기 위해 IR을 시작하게 됩니다. 내부 구성원들 중에서도 형편이 닿는 분들에게는 주주가 되어주길 권할 예정이고(아마도 스톡옵션 형태가 되겠지요), 새로 저희 팀에 모실 분들도 기꺼이 주주로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릴 수 있는 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귀한 분들을 주주로 모시기 위한 노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주주로 함께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충분히 귀한 분들이 되어주실 수 있을지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화할 예정입니다. 주주는 회사의 최후의 보루이자, 너무나도 귀하고 든든한, 회사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주주보다 좋은 회사가 먼저다


좋은 주주를 모시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저와 저희 팀의 노력들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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