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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Oct 31. 2024

단기 육아 현장 속에서 가족의 형태를 떠올린다

친구가 애들 둘을 데리고 영국에 놀러왔다. 그래서 나도 겸사겸사 이번 시월 뱅크홀리데이 휴일을 맞아 런던에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친구 얼굴을 본 게 코로나 시기였던 듯한데 너무 짧은 만남이 늘 아쉬웠었다. 그런데 친구가 직접 런던으로 온다니 아일랜드에 사는 내가 친구를 보러 가야하는 건 인지상정. 덕분에 런던에서 숙박도 하고 내가 혼자였으면 가지 않았을/못했을 곳도 가봤다.


짧은 2박 3일의 여정이었지만 생각보다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친구가 보고 싶어 간 런던이었는데 결국엔 친구의 두 딸이 가장 기억에 남게 돼 버렸다. 난 항상 육아나 가정을 꾸리는 일은 내 삶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지었는데 이 생각에 조금 균열을 준 것 같다.


런던에서 친구와의 조우는 매우 갑작스러웠다. 튜브는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았고 역에 도착할 때만 간간히 잡히는 수준이었다. 친구는 근처 마트에 잠깐 나와 있었다고 했고 나도 마침 거의 도착한 상황이었다. 개찰구에서 나서자마자 있는 역 입구 너머 테스코에서 친구가 나오는 모습이 한눈에 담겼다. 큰 소리로 친구 이름을 불렀다. 왜인지 테스코가 그 앞에 있길래 저 안에 친구가 있겠거니 싶었는데 그렇게 바로 마주치다니 무슨 드라마 같은 상황.


친구는 양손 가득 작은 핏덩이 둘을 데리고 있었다. 한 명은 예전에 한국에서 잠깐 본 첫째,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바닥에서 울고불고 했던 아이. 다른 한명은 처음 본 둘째. 나도, 그 둘도 서로 너무 어색해했다. 나는 특히 아이들이랑 잘 못 놀고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조금 어려웠다. 둘째는 길거리에서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니던데 첫째는 그래도 조금 더 컸다고 매번 엄마 손만 잡고 다니진 않고 의젓하고 혼자서도 잘 다니더라. 어린이집에서 집 돌아가는 그 짧은 길에서 울고불고 했던 아이가 저렇게 의젓해졌다니.


숙소에 짐만 대충 풀고 버킹엄궁 근처로 가서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갔다. 교대를 위해 행진하는 근위병을 보니 몇 십 년 전 이 아이들만한 나이에 나도 여기에서 이 장면을 봤을텐데 싶었다. 한국 집에 사진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국 돌아가면 찾아봐야겠다. 애들은 금방 지쳤고 버킹엄궁까지는 가지 못했다. 우리는 근처 펍에 가서 피쉬앤칩스로 허기를 달랬다.


사실 내가 아이들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이들이 매우 직설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아이들의 순수한 악마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고치는 것이 사회화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본다. 사회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면 어른이 됐을 때 그 순수한 악마성이 진짜 악으로 바뀐다. 그 악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 그런 모습을 사회에서 나는 많이 봐왔다.


이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역시나 조금 대화를 섞으니 약간은 내가 편해졌는지 나의 보이시한 모습에서 내 성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모가 온다고 했는데 삼촌이 왔다, 남자다, 아 시작됐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주제... 친구가 애들을 혼냈고 결국 한 명이 울면서 일단락은 됐는데 나는 그 장면을 계속 곱씹어보게 됐다. 아이들의 눈에는 내가 당연히 그들 세상의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이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고 이를 내뱉는건 인간의 가장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것. 여기에서 내가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대해서 상처받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기도 한다. 단지 그저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아서 피하려고 하는 것이지. 아빠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떤 한 남자애는 계속 나를 형이라고 했고 나도 형처럼 놀아줬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나를 가끔 이모라고 부르다가 삼촌이라고 부르다가 사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모라고 부르기에는 본인들이 생각하는 이모의 이미지와 너무 상반돼 있고, 삼촌이라고 부르자니 삼촌 같아 보이지만 어쨌든 여자라고 하니 그것도 좀 어색하고, 그런데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잠깐 봤네, 아 이 사람은 사범이 좋겠구나라고 결정한 듯 싶었다. 머리 짧은 여자 사범. 이게 이 두 자매가 보는 나의 모습이었다. 사실 두 자매 스스로가 이런 생각의 회로를 거쳐 성별 중립적인 호칭을 선택하는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다. 내가 이 둘에게 이야기해준 것은 그저 세상에는 머리 짧은 여자도 있고 머리 긴 남자도 있다는 것 뿐이었는데 말이다. 세상에 지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나는 비행기도 태워주고 번쩍 들었다가 내리는 놀이도 해주고 간지럽히기 놀이도 해주고 그림도 같이 그렸다. 친구가 애기들 밥 챙기느라 바쁠 때 나는 단기 보호자 역할을 해줬다. 적당히 놀아줬으니 친구를 도와줄까 하고 다가가니 본인은 밥을 할테니 나는 육아를 하라며 서로 역할 분담을 잘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마치 나에게 없던 가족이 생긴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켄싱턴 공원에는 아이들을 동반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더라. 나는 애들 부모는 아니지만 동반자인 만큼 그곳에 처음으로 들어가봤다. 각종 놀이기구들이 많았고 나도 애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잠깐은 애들 마냥 정글짐을 돌아다녔다. 유아용 그네를 타고 싶다는 두 자매 모두 한번씩 들었다 놨다 하며 태워주고 그네도 밀어줬다.


점점 친해지니 이젠 길거리를 걸을 때 알아서 내 손을 잡고 가더라. 처음에는 친구가 바쁠까봐 한 명 손은 내가 잡았는데 어느 순간 첫째가 스스로 손을 내밀며 같이 가자고 하더라. 그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여운지. 그러다가 엄마가 보고 싶으면 몇 발치 앞에 있는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더라. 귀여운 것들.


그러다 어느 순간 첫째가 남들이 보면 내가 아빠인줄 알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나는 약간 마음의 동요가 있었다. 잠깐의 육아 체험 현장 속에서 나는 나도 몰랐던 스스로를 발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일까 아니면 아빠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파더 피겨(father figure)가 되고 싶은 마음일까. 임신과 출산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어도 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아빠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두 자매를 낳고 지금까지 교육해오며 키운 친구는 얼마나 정성을 다했을까 친구의 얼굴에서 엄마가 보였고 그 모습은 아주 강해보였다.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계속 수차례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만들고 싶은 가정을 상상해본다. 아일랜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사서 파트너와 함께 지내며 서로 차근차근 경제력을 쌓는다. 그러다 정자를 기증받거나 입양으로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인다. 아이가 생기면 초반에는 내 삶도 엉망이 되겠지만 둘이 함께 육아에 전념한다. 그러다 조금 크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며 세상을 구경시켜 주고 싶다. 엄마도 종종 방문해 손주를 본다. 교육열이 심각한 한국보다는 유럽에서 키우고 싶다. 그렇게 유연하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내 스스로 독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현실은 당장 이직이 먼저다. 당장 만나는 사람도 없는 것 또한 내 상상은 그저 머릿 속에서만 이뤄지는 그런 것에 불과하다.


헤어지는 날 애기들을 안아주며 또 놀러오라고 했다. 정말로 놀러왔으면 좋겠다.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왠지 조금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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