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환 Jun 02. 2017

손석희가 사과하는 방식.

"부동산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한 것이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쓰는 의미와 달라서 혼동을 주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JTBC의 강경화 보도는 명백히 잘못된 보도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과 역시 매우 부실했다.

손석희 앵커의 사과는 이렇게 시작한다.

1. 외교부의 정정보도 요청이 있었다고 밝힌 뒤
2. 외교부가 이렇게 전해왔다,
3. 왜 이렇게 보도했는가 말씀드리고 우리 입장도 전하겠다,

사과가 아니라 정정보도 요청에 입장을 밝히는 형식이었고,
명백히 잘못된 보도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았고 정작 어떻게 잘못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혼동을 줬다는 지적”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오보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인지 아닌지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사과였다. “시청자들의 의문도 많이 제기가 돼서”라고 언급했는데 사실 의문이 아니라 항의와 비판이었다고 해야 맞다.


“이미 지적 받은 것처럼”이란 건 지적 받은 걸 다시 거론하지 않고 건너 뛰겠다는 의도일 텐데 그 지적은 뉴스 바깥에서 벌어진 것이고 시청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

이 경우는 현장 확인 없이 인터넷 지도만 보고 넘겨짚어 판단을 했는데 이게 실제와 달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맞다. 컨테이너가 2개가 아니라 5개인 것으로 드러났고 실제 거주 용도라는 사실 역시 확인하지 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이게 어떻게 잘못된 기사인지 알 방법이 없다.

“기자가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점은 모든 기사는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란 말은 동어 반복인 데다,

있지 않은 게 아니라 가지 않은 것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원칙에’ ‘충실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사실 확인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이건 미묘하지만 크게 다르다. “모든 기사는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원칙”이란 건 너무 모호하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확인하고 반론을 듣는 ‘취재의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엄청난 오보를 냈던 며칠 전 SBS의 사과와 후속 진상조사와 비교해도 큰 아쉬움이 남는다. (5월 2일 SBS 8뉴스 <차기 정권과 거래?...인양 지연 의혹 조사> 보도 경위 진상조사보고서)


“등기부등본과 현지 부동산 등을 상대로 한 확인은 사실에 미흡하거나 왜곡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는 문장은 어디에 호응하는지 알 수가 없다. (평소 손석희 앵커 브리핑에서도 이처럼 듣기 좋긴 한데 연결되지 않는 문장이 종종 발견된다.) ~~ 때문에 지적을 받았다는 것인지, ~~ 때문에 충실하지 못한 것인지, 둘 다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오보를 낸 상황이다.

이 경우는 “등기부등본과 현지 부동산 등을 상대로 취재했으나 정작 현장을 확인하지 못했고 사실과 다른 기사를 내보내게 됐다”고 인정하는 게 깔끔하다.

심각한 오보였고 잘못을 무겁게 인정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으려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문장이 계속 꼬이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검증 면에서 의혹 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희들의 판단이기도 했다”는 건 오보를 사과하는 마당에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 없을 말이다.

사과라는 말은 마지막에 딱 한 번 나오는데 여기도 맥락이 모호하다.

“기획 부동산이란 용어를 썼는데 부동산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한 것이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쓰는 의미와 달라서 혼동을 주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다는 걸로 책임을 피할 수 없고 애초에 조언을 잘못 구했거나 잘못 이해한 것이고 혼동을 준 게 아니라 무리한 추정으로 허위의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앞부분은 정작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도”가 아니라 ‘혼동’을 준 것에 대해서만 사과를 한 것이다. 문장만 보면 그런 지적이 나온 것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이다.

손석희는 위대하지만(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손석희의 사과는 몹시 실망스러웠다. 손석희가 아니라 다른 언론사였다면 훨씬 엄청난 비난에 부딪혔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손석희라서 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어제 손석희 앵커의 사과문과 지난달 3일 SBS 김성준 앵커의 사과문.

어제(5월31일) 뉴스룸이 보도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측의 '기획부동산 매입 의혹' 보도와 관련해서 오늘(1일) 외교부는 정정보도를 요청했습니다

외교부는 두 딸 명의의 거제 땅과 주택은 후보자의 배후자가 노후 생활을 위해서 구입한 것으로 투기 목적은 없었으며 실제 거주하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동시에 이 보도에 대한 시청자 여러분의 의문도 많이 제기가 돼서 오늘 뉴스룸은 왜 이 같은 보도를 하게 됐는가를 말씀드리고 또한 저희들의 입장도 전해드리겠습니다.

거제도 땅은 강 후보자 딸 명의로 구입이 됐는데 이전에 땅 소유주 명의로 주택이 착공된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완공된 뒤에는 임야에서 대지로 지목이 변경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값이 크게 올랐는데 땅이 쉽게 개발이 가능한 면적으로 쪼개져서 거래됐다는 점, 또 강 후보자 부부의 부동산이 서울에 이미 세 곳이 있는 상황에서 통상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 문제가 고위 공직자에 대한 검증 면에서 의혹 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희들의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적받은 것처럼 기자가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점은 모든 기사는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등기부등본과 현지 부동산 등을 상대로 한 확인은 사실에 미흡하거나 왜곡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획 부동산이란 용어를 썼는데 부동산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한 것이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쓰는 의미와 달라서 혼동을 주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저희는 어제(2일) 8시 뉴스에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관련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이에 따라서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에 대한 조사도 속도가 붙을 거라는 기사를 방송했습니다.

이 기사는 해양수산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까지 세월호 인양에 미온적이었다는 의혹과 탄핵 이후 정권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둔 해수부가 인양에 대한 태도를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꿨다는 의혹을 짚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복잡한 사실관계를 명료하게 분리해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발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세월호 가족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어제 기사가 나간 뒤에 저희 기사에 대해서 제기됐던 대표적인 지적은, 해양수산부가 문재인 후보 눈치를 보려고 그동안 세월호 인양을 늦췄다는 거냐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보도 취지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사의 앞부분에서 인양 지연 의혹을 세월호 선체조사위가 들여다볼 거라고 전한 뒤에 기사 후반부에 문재인 후보가 언급되는 의혹을 방송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문재인 후보가 인양 지연에 책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기사 작성과 편집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SBS 보도책임자로서 기사의 게이트키핑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는 데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제 보도에서 또 하나 물의를 빚은 부분은 해수부가 차기 정권에 잘 보여서 고위직 자리를 늘리고 해경을 해수부 산하로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공무원의 전화 녹취입니다.

기사의 취지는 정권교체기를 틈탄 부처 이기주의와 눈치 보기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의 일부 자극적인 표현들이 특정 후보에게 근거 없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는데도 여과 없이 방송된 점, 그리고 녹취 내용에 대한 반론을 싣지 못한 것은 잘못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과드립니다.

저희는 해당 기사를 SBS 뉴스 홈페이지와 SNS 계정에서 삭제했습니다.

이것은 우선 기사가 게이트키핑에 대한 자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어서 사실과 다른 의혹과 파문 확산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도 책임자로서 직접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 결정에 어떠한 외부의 압력도 없었음을 밝힙니다.

촛불집회의 현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논란의 현장에서 세월호 인양의 현장에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 기사를 취재해서 전하려고 노력했던 SBS 보도국 기자들 한 명 한 명의 명예를 걸고 제가 확인 드립니다.

'우리는 사실에 기초해 진실을 추구한다. 우리는 권력과 자본을 비롯한 모든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독립해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보도한다. 우리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우리 보도의 근간임을 확인하며 이념적 편향을 거부한다.'

저희 SBS의 보도준칙 일부입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이 준칙을 거듭 되새깁니다.

저희가 작성한 기사에 대해 사과하고 삭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사가 보도된 걸 맘에 안 들어 하는 쪽이든 기사가 삭제된 걸 맘에 안 들어 하는 쪽이든 저희에게는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희 SBS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항의 방문단이 잇따라 찾아왔습니다.

한쪽은 기사의 의도를 궁금해했고 다른 쪽은 기사 삭제에 외압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하루 기사가 특정정당과 공동기획해서 만들어진 거라는 주장이 나왔고 집권하면 외압을 받아서 기사를 삭제한 SBS 8시 뉴스는 없애 버리겠다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외압도 없었고 공동기획도 없었습니다.

오늘부터는 대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고 내일은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매우 민감한 시기입니다.

정치권에 부탁드립니다. 저희 보도내용이나 해명과정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보도를 했던 조을선 기자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조 기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어느 누구보다 세월호 유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해 왔고, 올 초에는 대선 후보들을 상대로 세월호 관련 정책을 취재해서 '대선후보들에게 세월호를 묻다'라는 시리즈 보도를 내기도 했습니다.

조 기자는 "의도와는 다르게 방송된 기사로 여러분들에게 상처를 주고 의심을 사면서 세월호 참사 극복에 피해를 끼쳤다"면서 사과했습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세월호 유가족 한 분이 SNS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위해서 세월호 참사를 이용하거나, SBS를 비롯한 언론이 세월호 참사 앞에서 지나친 보도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 공감하고 반성합니다.

SBS 뉴스는 세월호 미수습자 수습과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 묵묵히 취재 보도하겠습니다.

향후 기사 작성과 보도의 전 과정을 철저히 점검해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제가 책임지고 관리하겠습니다.

아울러, 남은 대선 기간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거보도에 한치의 오점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17789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