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동에서 우리는, 꽤나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따뜻한 느낌의 엔틱 스탠드에 불을 밝혀놓고, 그가 내린 커피향에 파묻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꿈을 나누었다.
조그마한 공간의 벽과 천장으로 테이블 위에서 시작된 빛의 입자가 가 닿으면 그의 머리에, 어깨에, 팔뚝에, 내 시선과 함께 노오란 불빛이 마구 묻었다. 그 어떤것도 틀린게 없었고, 다른것 또한 없었다. 조금의 다름은 이해라는 테두리 안에서 금새 맞춰졌다. 당신과 얘기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하얗고 네모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우리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자양동에서 나는, 대화를 잘 하는 법이라는 주제의 강연 영상을 봤다.
여전히 조그마한 공간이지만 예능채널에 맞춰진 TV가 왕왕 울리고, 창밖에선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시끄럽다. 최근엔 테이블에 마주앉아 식사를 할 때 조차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게다가 어느순간부터는 그와의 대화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화를 진전시켜나갈 자신이 없는 순간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급히 당신을 이해한다고 그 말에 동조하며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성은 있는것 같애 라는 어정쩡한 말로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다시 곱씹어 생각해 봐도 분명 우리는 서로 살아온 경험이 달랐고, 무엇보다 각자 입장 차이가 심각했다. 무언가 문제인 것 같긴 한데, 그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이건 영영 풀리지 않지 않을까 하는 겁에 질려버렸다.
가장 빠르고 쉬운 풀이는 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해하고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나에게 있었을지 모를 비약과 모순을 받아들이기로, 그렇게 해 보았다. 대화중에 싸우는 일은 줄어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는 이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이따금씩 내가 내 주장을 내세울 때 마다, 그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할 때 마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그게 아니라서 나도 모르게 디프레스 될 때 마다, 그는 어려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또한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가 하고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난 너한테 무슨 말을 못해.
이 말을 들었을 때 다시 처음 이 문제를 만났을 때 처럼 겁에 질려버렸다. 나도 당신에게 내 의견이나 생각을 필터링 하고 때론 척도 해가며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왜...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동시에, 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가정하고 잘 맞추려고 했는데 여전히 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하니 더이상 어떻게 해야 풀리는 문제인지 갈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이제는 가만히 기다려 본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문제가 문제인 채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건 말이 안된다. 조금씩 우리의 대화 속에서 그도 나의 노력과 배려를 알아채 주지 않을까?
그 역시 나에게 일방적 배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간극이 좁혀질 언젠가를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