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적출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수지향 Aug 05. 2017

언제부턴가 모든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에너지가 넘친다고 했었다. 내가 봐도 그랬다. 그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24시간을 백분 활용하여 누군가를 만나든 자기계발을 하든 했던것 같다. 다른 많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왠지 내 주위에서는 내가 제일 그 에너지가 큰 것 처럼 보였다. 몇몇 나와 비슷한 볼륨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은 이미 나보다 한참 위였고, 나는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들은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좋아했다. 


산다는 건,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한 곳만 바라보며 달리던 것에서 점차 신경써야 될 바운더리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열심히 할 분야가 두-세가지에서 그쳤던 그때와 달리 이젠 나의 분야도 점점 넓어지고, 결혼을 할 만큼 정말정말 중요한 사람도 생겼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챙기는 것도, 직장에서 나의 위치를 바로 잡는 것도, 나의 전문성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고민하는 것도 모두 나에겐 핫 이슈이다. 여러 이슈를 고민하다보면 내가 몰랐던 입장이나 감정들도 알게되면서 예전에는 조금 소홀했던 친구들에게도 마음이 쓰이기 시작하고, 아 이 친구가 티는 안냈어도 그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등 공감이 되다보니 괜시리 한번 연락해 보는 등 정말 내가 신경 쓸 바운더리는 무한정 넓어지는 것만 같다. 


결혼을 하면서 어느정도 변화를 예측하려고 노력해 보았었는데, 모든 것을 다 지금같은 에너지로 임할 수는 없겠지-싶어, 완벽하려고 하지 말자,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때가 오면 조금은 초연해지자, 다짐했었는데 왠걸! 2세가 생기기도 전에 이렇게 지쳐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지. 




근래 남편느님이 주말에 연수를 받는 터라 완전 혼자 있는 나만의 토, 일요일 낮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몇 주 동안은 집안일을 싹 하고 상쾌하게 쉬며 힐링된다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난주 부터 정말 하루 하루 휴가를 내고 싶은 마음 컨디션에 괴롭더니, 오늘은 남편을 연수하는 곳에 모셔다드리고는 집에 돌아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묻어버렸다. 설거지 청소 빨래걷기 식물이 물주기 고양이 화장실 치우기 등 눈에 밟히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남편느님이 점심 먹으러 간다고 보낸 카톡도 못보고 그냥 자는 것을 선택, 꿀같은 낮잠을 누렸다. 


그러고 일어나서도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욕조에 물을 받고 들어앉아 책을 읽었다. 물을 참방참방 하며 어제 새로 바른 패디큐어가 너무 맘에 들어 헤헤 하고 웃다가, 책을 읽으며 울다가,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스피커 성능에 감탄하다가.. 다섯시가 되어 남편느님을 모시러 가는데 문득 내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번아웃...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너무 좋았다. 


쉬는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었지만서도, 제대로 쉬는 법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은데, 오늘을 계기로 잘 쉬는 삶을 좀 살아볼까 한다. 쉼표도, 많이 찍고, 밥도, 잘 먹고, 아무 것도 안하는 주말을 좀, 더, 많이, 가져야지. ^^



매거진의 이전글 불만족의 만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