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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지향 Mar 22. 2020

텔레그램 n번방을 대하는 나의 자세

여느때와는 달라진 나를 만나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된 청원에 모두 동의했다. 

차마 상세히 내용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조차 이런데 실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 피해자들이 10대의 어린 소녀들이라는 것에 한번 더 분노가 인다. 세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잘 알려주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이 그렇게 이용당할, 아니, 유린당할 수는 없다. 그리고 별로 나이가 많지도 않은 청년이 그 모든 일을 저지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게 있는 사건이지만 단편적으로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동정하는 것에서 나아가서 어른들이 좀 더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를 변화하도록 만들게 되면 좋겠다.  


사건 관련된 청원들의 링크를 모아둔 글에서 '딸 가진 부모라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진지하게 봐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딸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당할뻔(!)한 내용이었다. 게임을 하다보면 일명 현질이 하고싶어지는데 엄마에게 말하면 못하게 할게 뻔하니 문상을 준다는 게시글에 낚여 그과 카톡으로 연락을 했고 학교와 이름을 알려주는 바람에 협박을 당했지만 다행히 엄마에게 얘길 하여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는 것... 아이들은 별것 아닌 것에도 겁을 먹고 쉬이 말려든다며 이렇게 온라인 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에 주의하시라는 당부의 글이었다. 


대체 이놈의 사회에서 우리 딸을 안전하게 키워낼 수 있기는 한걸까..?


아이를 낳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단단해졌는지 이제 '요리를 못한다'는 타박 정도는 인스타에 푸념은 해도 내 마음에 그다지 생채기를 내는 류의 일은 아닌데, 오늘같이 내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낼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무력감은 말도 못한다. 산후 초반에는 정말 얼마나 울고 무서워하고 못믿을 세상이라며 불안해했는지... 그런 뉴스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뉴스라고, 너무 걱정말라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남편의 말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도 청원들에 동의를 하며 습관적으로 불안 속으로 나를 밀어넣고 딸 걱정을 하는 나를 보다가 문득, 어?


어...?


내 맘속 감정의 파도가 예전만큼 너울거리진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음... 이게 뭐지? 처음엔 의아했다. 

딸 걱정과 동시에 그런 일이 생기면 많이 힘들어할 내 걱정을 하고 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들을 연이어 하고 있었다. 


 '그래, 아이들이 그렇게 쉽게 말려들 수도 있는 일이라면 언젠가 우리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겠구나. 만약 그런 때가 온다고 해도 그건 우리 아이의 잘못이 아니야. 그러게 게임을 하지 말았어야지-라거나, 그러게 왜 현질을 하려고 해- 그러게 왜 모르는 사람한테 톡을 걸어- 그러게 왜-.... 등등의 탓은 무의미한거고 그냥 사고일 뿐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 아이가 아주 큰일 난 것도 아니고 나는 다만 엄마로서 상처입었을 우리 아이 마음을 보듬어주고 끌어안아주고 최대한 치유가 되도록 도와주자'


인생을 살짝 오만방자하게 살아온 나는 '내 인생'이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일례로 차를 좋아하고 기계에 관심이 많은 내가 나의 이러한 속성이 다분히 '여성'스럽지 않다고 여기며 참한 여성의 인생으로 만들기 위해 선택한 많은 것들 중 하나인 2종 보통 자동차 면허. 아직도 배기음을 들으면 설레고 스피드를 좋아하고 클러치나 변속 기어와 안정적 코너링과의 상관관계를 궁금해하는 나의 자동차 면허가 2종이라고 하면 의외라고 생각할 친구들 많을 것이다. 

그런다고 내 인생이 참한 여성의 표본적인 모양새가 되진 않았지만 최소한 그런 작업들을 통해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만들어가려 했고 그 밖으로 벗어나면 스트레스 받는(요리는 쉽게 잘해지지 않아서 아직도 푸념중이다)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랬던 내가! 인생의 예측불가능한 변수들의 존재를 마음편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예전의 불안해하던 사람이 아니다. 

세상을 불신하던 사람이 아니다. 

이젠 아주 작정을 하고 비관적으로 생각을 해야 시니컬이란 놈이 얼굴을 빼꼼 내밀게 되었단것도 깨닫게 되었다. 

시니컬씨는 오랫동안 내 바로 옆에 찰싹 붙어 나를 잠못들게 하던 놈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아주 반갑다. 


분노하는 순간에도, 그 어느때 보다 더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 


사랑하는 내 딸을 좀 더 너른 마음으로 키워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동안 사시나무 떨듯 요동치느라 고생해온 내 마음도 꽉- 한번 안아본다. 

내 마음으로 지내느라 아주 불안 호르몬에 젖어서 그동안 엄청 힘들었겠구만? 잘 버텼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이젠 좀 더 편하게, 행복하게 지내보자.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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