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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선장수 Oct 07. 2018

행복 : 한국인의 행복

서은국, 행복의 기원 05

행복과 가장 관련 있는 특성을 '외향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개인이 아무리 외향적이라 해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 전체의 '문화'라는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는 행복을 논하기 어렵다. 개인기(외향성)가 아무리 뛰어난 축구선수라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팀의 특성(사회적 문화)에 문제가 있다면 좋은 성적(행복지수)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란 '공유된 이해 shared understanding'이다. 생각, 가치, 규범이나 행동 방식에 대한 문화 구성원 간의 암묵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축구선수 지단은 2006년 월드컵 결승전 연장 후반에 '박치기 사건'을 일으켜 퇴장을 당했다. 결국 프랑스는 이탈리아에게 패했다. 지단 때문에 경기에 졌다고 단정하진 못하지만, 프랑스팀의 전력 손실을 준 것은 분명하다. 


여러분이 프랑스인이었다면 지단의 행동에 대하여 어떠한 평가를 하였을까? 프랑스는 그의 박치기 장면을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 프랑스 지성의 상징 퐁피두 박물관 앞에 세워 놓았다. 시라크 대통령은 "당신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 그래서 프랑스가 당신을 사랑하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개인의 가치와 감정을 최대한 존중하고 수용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일어난 또 다른 일화를 들어보면 문화 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202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확정된 카타르에서 이 동상을 구입하곤,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도심 공원에 이 동상을 설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동상은 카타르의 높으신 분들로부터 또다시 레드카드를 받고 4주 만에 철거되었다. 한 개인을 영웅시하는 서구의 상징물이 전통적인 이슬람 정서와 맞지 않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행복 연구에 있어 문화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과 일본이다. 높은 경제 수준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행복지수가 낮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이다.


개인과 집단의 뜻이 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핵심적인 차이다. 개인의 뜻대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 가령 미국이나 지단의 프랑스 같은 - 행복지수가 대체로 높다. 한편 집단이 개인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을 찍는 문화 - 한국, 일본 및 아시아의 행복 부진 국가들 - 에서는 행복지수가 최악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개인주의 문화'의 어떤 점이 개인의 행복지수를 올려주는 것일까? 역으로 집단주의 문화의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심리적 자유감'이다


초등학교 소풍 전날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말씀은. "내일 소풍 가서 즐겁게 놀도록. 단, 개인행동은 하지 말 것." 조직이 단단한 위계를 유지하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모두 하나가 되어 규격화된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인의 다양한 취향, 가치와 감정들은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결과적으로 자유감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집단주의 문화는 매사에 무엇이 맞고 틀린지에 대한 정답까지 정해져 있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조직의 결속을 위해 회식에 참여를 해야 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고 틀린 지가 이미 정해져 있다. 술이 턱까지 차올라도 먼저 집에 가는 것은 틀린 것이고, 부장님이 8번째 앵콜곡을 부르겠다고 주책을 부려도 환호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이러한 획일적인 사고는 행복에 큰 타격을 준다. 마치 행복에도 정답이 있고, 이는 좋은 대학, 대기업 명함, 높은 연봉 같은 몇 개의 잣대로 행복을 압축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획일적 사고는 개인의 자유감을 저하시키고, 다은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더욱 신경을 쓰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로 전이된다.


올림픽 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이 기자회견을 마무리할 때 흔히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주세요" 연예인들이 결혼 발표를 할 때도 비슷한 말을 한다. 예쁘게 잘 살 테니 지켜봐 달라고... 하지만 뭔가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운동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나를 위해서 운동도 결혼도 하는 것이다.


파스타를 먹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서 우리가 꼭 치르는 의식이 있다. 바로 사진 찍기. 이렇게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영혼의 내용물보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얼굴형과 콧대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나라는 존재에 미치는 타인의 존재감이 너무도 큰 것이다.


이렇듯 과도한 타인 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행복감을 낮춘다. 


우선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대단한 스트레스다.  

피실험자에게 당신은 1분 뒤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당신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해주면, 피실험자는 갑자기 불안해지고 심장박동수도 급증한다. 다른 고전적인 실험에서 대학원생의 컴퓨터 화면에 지도교수의 사진을 잠깐 스켜 지나가도록 했다. 그 뒤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 평가해 보게 했다. 교수의 사진을 본 대학원생들은 사진을 보지 않은 대학원생보다 자기 아이디어를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면 내가 아닌 타인의 시각으로 매사를 판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미국과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최근 즐거웠던 경험 하나를 써보고 그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그 후 이 즐거운 경험에 대해 본인이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고 어떤 반응을 했는지를 알려주었다. 한 조건에서는 남들은 그다지 즐거운 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해주었고, 다른 한 조건에서는 남들도 마찬가지로 아주 즐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 참가자들에게 그 즐거운 경험에 대하여 다시 한번 평가하도록 했다.


이 실험의 결과에서 예상했던 문화 차이가 나타났다. 미국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즐거운 경험에 대한 자기 느낌을 고수했다. 반면, 한국의 참가자들은 흔들렸다. 자기 경험이 남들이 볼 때는 별게 아니라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두 번째 평가에서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즐겁지 않다고 느꼈다, 


이러한 타인 의식의 과정에서 집단주의 문화가 행복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문제가 나타난다. 




두 번째는 과도한 물질주의적 가치


저 사람 "행복할 만하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우선 남들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필요하게 된다. 내용보다 외형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물질적 풍요다"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하루 세끼조차 보장되지 않는 아프리카 사람들보다 한국인이 돈을 더 중시한다. 한국의 경제수준 정도이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질주의적 태도 그 자체가 행복을 저해하게 된다.


과도한 물질주의와 행복 간의 마찰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호모사피엔스에게 다른 사람이 중요했던 이유는 생존 과정에서 타인의 보호와 도움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타인은 나의 불충분함을 메워주는 절대적 존재였다. 인류가 발전해 오면서 돈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인간의 나약함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생겼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다 떨어졌을 때 사냥 잘하는 친구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지금은 돈을 가지고 마트에 가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돈에 대한 생각을 할수록 사람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고 한다. 돈은 사람에게 '자기충만감'이라는 우쭐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돈이 있으면 "너희가 없어도 난 혼자 살 수 있어"라는 느낌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과도한 타인 의식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사람과의 관계를 즐겁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누구의 떡이 더 큰지 항상 비교하게 되고, 방심하면 남에게 당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게 된다.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덴마크나 미국인들은 96~97%가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한국인은 78%에 그쳤다. 남들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받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미국이나 덴마크인들의 90%가 그렇다고 답했으나, 한국은 56%, 일본은 66% 였다.




우리 사회의 결핍이 나타나는 부분은 더 이상 '경제적인 부'의 측면이 아니다. 행복과 직결된 '사회적 부'다. 


자유감의 부족과 과도한 물질주의 등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의 공통점은 너무 예민한 타인 의식이다.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유아독존의 삶을 살자는 말이 아니다. 나와 타인에 대한 균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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