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했을 도시, 태국 치앙마이(Chiang Mai). 저렴한 물가와 다양한 먹거리, 즐길거리가 제공되는 치앙마이는 ‘한 달 살기’ 최적의 도시로 손꼽히기도 한다. 유튜브나 구글에 '치앙마이'를 검색하면 여행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영어로 검색해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치앙마이는 한국인에게 인기 여행지로써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부분은 약 20%다. 관광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광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한국관광공사 국민해외관광객 주요 행선지 통계(2019년 12월 기준)를 보면 태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한 해 약 180만 명으로 방문객 수가 가장 많은 국가 5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일본, 2위는 중국, 3위는 베트남, 4위는 미국이다) 또, 한국공항공사에서 발표한 항공통계(2019년 10월 기준)에 따르면 인천-치앙마이 노선은 전년대비 9% p 성장하며 태국 노선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2020년 3월 1일, 치앙마이는 세계 대기오염지수(AQI) 181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공기 질이 가장 안 좋은 도시를 차지했다. 미세먼지 농도 수치가 안전 기준을 크게 초과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초미세먼지 농도를 나타내는 pm 2.5 수치가 세 제곱미터당 500 마이크로그램까지 올라갔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안전기준인 25 마이크로그램의 20배, 태국 정부가 정한 기준으로도 10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치앙마이 시민들은 미세먼지 때문에 웬만하면 외출을 자제하고,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치앙마이 시민들은 우기가 시작되는 5월을 기다리고 있다. 우기가 시작되면 하루에 한두 차례 짧게 비가 내려 대기 질이 깨끗해진다.
관광 산업에도 큰 타격이 될까 우려가 크다. 지난 2월, 태국 총리가 직접 치앙마이 지역에 방문해 공무원들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거리에 물도 뿌려보고, 대형 공기정화기 시제품을 거리에 설치해 가동했지만 이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치앙마이 대기오염은 시민들 건강과 환경을 해치는 것은 물론 지역 관광산업과 경제도 해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치앙마이 대기오염의 주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관광이다. 치앙마이 중심지 ‘올드타운’ ‘님만해민’ ‘핑강 주변’ 등은 외국인들이 점령한 지 오래다. 태국 북부는 국적기, 저가항공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여행이 가져온 환경오염은 어디에서도 상쇄되고 있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해 약 180만 명의 한국인이 태국을 찾는다. 우리 여행도 이들의 뿌연 하늘에 기여한 바가 크다.
둘째는 화전을 꼽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이다. 화전을 하는 사람들은 태국 북부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고산족이다. 이들은 원래 중국과 티베트, 미얀마, 라오스 등지에 살다가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혹은 적을 피하려고 최근 100~200년 사이에 태국으로 이동해왔다. 깊은 산악지대에서 생활하며 현대 문명과는 동떨어진 채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주로 화전농업, 마약 재배, 가축 사육 등으로 삶을 이어왔으나 태국 정부에서 화전 농업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어 삶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젊은 세대는 대도시도 떠나기도 하지만 태국어 교육도 받지 못했고, 법적 지위가 없어 중노동, 저임금 등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태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푸미폰 국왕은 로열 프로젝트(Royal Project)로 고산족에게 상업 작물 재배법과 교육 기회 제공, 위생시설 확충 등 여러 복지를 제공했지만 아직 그들의 삶은 어렵기만 하다.
작년 10월, 나꽈우끼우 마을을 방문했다.
치앙마이에서 기차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리면, 란나 왕국의 또 다른 중요 도시 ‘람빵(Lamphang)’에 도착한다. 나꽈우끼우 마을은 람빵 역에서 썽태우(태국의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를 타고 40분을 더 이동해야 만날 수 있다. 약 1천 명이 살아가는 산골 마을, 나꽈우끼우. 마을에 도착하자 신명 나는 연주와 춤으로 우리를 환대한다. 두 손을 모으고 ‘싸와디캅’을 연실 외치다 보면 어느새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가히 흥부자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는 ‘학남장(Hug Nam Jang)’이라는 마을조직이 있다. 2009년, 마을 문제(건강/환경/생계)를 해결하려고 5가구가 모였다. 그들은 내놓은 답은 ‘유기농업’이었다. 쉽지 않았다. 유기농도 처음일뿐더러, 유기농으로 생산한 작물을 판매하는 일은 더욱이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유엔개발계획(UNDP)은 태국북부유기농민회(NOSA)와 농촌마을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학남장은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 학남장은 80가구가 함께 하고 있다. (나꽈우끼우는 약 200가구 규모의 마을이다) 대학 교수, 정부 관계자, 해외 여러 청년들이 학남장 사례를 학습하고, 체험하기 위해 마을을 방문한다. 나꽈우끼우에서 나고 자란 청년 요(Yo)는 마을로 돌아와 ‘학 그린(Hug Green)’이라는 청년 조직을 설립했다. 윗 세대가 일군 공동체를 이어가기 위해서 허허벌판에 직접 집을 짓고, 학남장에서 생산한 유기농 차와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를 만들었다.
학남장에서 생산한 제품(유기농 채소, 차, 허브 오일 등)을 온/오프라인으로 홍보하고, 제품 포장과 디자인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학 그린을 통해 청년들이 마을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하고, 마을 아이들에게 학남장의 철학을 전해주고 있다.
요(Yo)가 말하는 유기농은 단순히 농사의 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며, 마을의 자립과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다음 세대에 넘겨줄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멋있는 형이다...ㅎㅎ
나꽈우끼우 마을의 '유기농 공동체 실험'은 태국 북부 고산족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빈농이나 소수민족도 지속가능하게 할 만한 농사, 제법 먹고 살 수 있는 농사,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농사, 그리고 마을을 기반으로 한 2차 가공, 3차 서비스, 지역기반관광(Community Based Tourism) 등을 복합적으로 진행하여 다시 화전 농업으로 돌아가지 않게끔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는 것이다.
현재 나꽈우끼우 마을은 '유기농 모델'을 태국 북부 전 지역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위한 모금을 진행 중이다.
https://www.globalgiving.org/projects/the-right-breathe-clear-air/
푸른 하늘의 치앙마이를 여행하고 싶다면 동참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