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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3부 축구팀에게 마음을 빼앗기다

말라위 3부 리그 축구팀 '치주물루 유나이티드' 원정대(1)

by 세이버

해버지(해외축구 아버지) 박지성이 히딩크 감독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축구 클럽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을 발돋움 삼아 세계적인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면서 야심한 새벽 시간에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숨죽이며 해외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아A, 스페인 라리가 등 세계 최고의 리그의 최고의 팀과 선수들의 플레이에 감탄하고, 친구들과 하루 종일 자기가 좋아하는 팀과 선수가 최고라며 설전을 벌였다. (그 당시의 나는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이라는 팀과 그 팀의 주장 '스티브 제라드'라는 선수를 동경했다)


어느덧 나이가 들고, 30대 중반도 뉘엿뉘엿 지나가면서 삶이 뜻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순간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 지극히 평범한 자신을 인정하게 되면서 ‘최고’의 이야기보다 ‘언더독’의 서사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됐다. 게다가 더 이상 새벽에 일어나 해외 축구를 볼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K리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직관을 다니며 각 팀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고, 응원하는 팀의 승패에 기분이 좌지우지된 지 어느새 4년이 흘렀다.


이만큼 내가 축구를 애정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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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1(좌), K리그 2(우)


작년 연말, 우연히 '창박골 Changbakgol'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됐다. 여행을 하며 알려져 있지 않은 국내외 축구 리그를 방문하고, 팀과 선수를 인터뷰하는 채널이었다. 그중에서도 ‘3부 리그 꼴찌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K3리그 부산교통공사 직관’ 영상에 강하게 매료되었고, 결국 그의 모든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 축구 리그 모습을 기록한 영상들이었다. 아프리카 리그 영상을 처음 봤을 때, 화면 속 선수들이 뛰는 모습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프로’의 장면과는 전혀 달랐다. 잔디 대신 흙바닥, 광고판도, 펜스도 없이 그저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이 경기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응원의 소리라기보다 일상의 소음에 가까운 소리들—웃음, 장난, 호기심—그 사이를 비집고 공이 굴러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 동네 운동장, 해 질 무렵 마지막까지 공을 차던 아이들의 얼굴, 물먹는 시간도 아까워 뛰어다니던 그 에너지. 오히려 이쪽이 더 ‘축구의 원형’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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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박골 Changbakgol)


말라위 3부 리그 팀 '치주물루 유나이티드(Chizumulu United)', 응원하고 싶다.


말라위 3부 리그 팀 ‘치주물루 유나이티드(Chizumulu United)’는 말라위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치주물루섬의 축구팀이다. 선수들은 대부분 생업을 병행한다. 어부, 목수, 교사, 농부, 섬의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현실 속에서도 경기 날이 되면 모든 역할을 내려놓고 ‘선수’로 모인다.


원정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경비를 마련한다. 승리 소식을 안고 돌아오면, 마을은 밤늦도록 노래와 춤으로 축제 분위기가 된다. 그들에게 축구란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살아갈 힘을 주는 ‘희망’이었다. 개인에게도, 마을에도, 축구는 지금의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 드문 수단이었다. 이 팀은 단순히 승패를 다투는 팀이 아니라, 섬 하나를 지탱하는 공동체의 중심 그 자체였다.


영상을 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팀을… 응원하고 싶다.”
“이 이야기의 현장을 직접 보고, 기록해보고 싶다.”


그리고 홀린 듯이 메일을 썼다. 나처럼 치주물루 유나이티드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직접 섬을 방문해 응원할 수 있는 여행을 만들어 보자고. (공정여행사에서 일한 지 10년 차, 단순한 축구 여행이 아니라 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의 여행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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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박골, 아프리카 3부 팀 구단주 된 23세 대학생 유튜버와의 만남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라고 말한 뒤, 이런저런 일로 시간이 흘러 어느새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창박골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다. 치주물루 유나이티드 구단주가 되었고, 각종 언론 인터뷰, 유퀴즈 출연, FC안양과의 업무협약, 기업들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대형 유튜버로 거듭나고 있었다.


다시 연락을 했고, 연락한 지 1년 만에 얼굴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단주를 하게 되며 겪은 어려움과 앞으로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계획들. 치주물루 유나이티드가 말라위 슈퍼리그로 진출하고, 마을에 잔디 구장이 설치될 수도 있다는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설렌다는 그를 보며, 뭐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내가 제안했던 치주물루 여행과 협동조합 설립까지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일단 여행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곧 방학을 하면, 내년 3월까지 말라위에 있을 거라고 한다. 그때까지 각자 조사도 하고, 계획을 세워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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