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14만 명이 넘어가고 있다. 이제는 잠잠해지겠지 하고 기다렸건만, 끝이 보이질 않는다. 한 달 전 확진자 숫자는 지금 숫자와 비교해 보면 애교 수준이다. 페루에서의 교환학생 신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졌기에, 딸은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5월 10일 이후 페루의 공항 폐쇄가 풀린 틈에 표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렵게 5월 23일 표를 구했는데,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고 험난해서 또 한 번 가슴이 미어졌다. 딸이 한국 땅을 밟기까지 긴긴 여정을 정리해 보았다.
미국 공항 두 군데를 환승해야 했다. 마스크 두 겹을 쓰고 잠든 모습이 안쓰럽다.
먼저, 페루 리마 숙소에서 20일 짐을 꾸려 미국 대사관으로 이동. 페루 경찰, 군인, 미군들의 철통 경비 속에 신변확인 마치고 긴급 비행기가 준비된 공군기지로 이동ㅡ 오후 3시 출발 예정이었으나 지연되어서 기다림 ㅡ
2차 체온 확인 후 마약, 총 소지 여부 등 다시 검사하고 탑승. 밤 11시 드디어 미국 마이애미 공항 도착. 1차 공항 노숙 시작. 짐을 지켜야 해서 친구랑 번갈아가며 의자에서 잠을 잠. 기다림ㅡ
21일(목요일) 오후 3시, 다음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해 체크인을 마침. 공항 내 둘러보며 또 기다림 ㅡ밤 7시 비행기 탑승해서 11시쯤 미국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
2차 공항 노숙 시작. (이때부터 너무 지쳐서 딸과 친구 모두 말이 없어졌고, 번갈아가며 의자에서 쪽잠 자며 간간이 스트레칭도 하고,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면서 보냄.)ㅡ기다림
22일(금요일) 드디어 인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체크인, 오전 11시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기상 악화(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너무 많이 내림. )로 지연됨. 결국 오후 1시 30분쯤 탑승. 비행기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엄청 반가웠다 함. 탑승객이 많지 않아 좌석에 누워서 기절한 듯 자면서 14시간 비행ㅡ기다림
2020.5. 23(토요일) 한국시간으로 23일 토요일 오후 5시쯤 한국땅을 밟음. 공항에서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옴. 기다림 끝ㅡ2주간 자가 격리하며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새로운 기다림 시작ㅡ
기내식 먹고 자고 또 먹고 또 자기를 반복.
믿기 어렵겠지만, 딸은 우리 시간으로 지난주 5월 20일(수요일)에 출발해서 23일(토요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나흘이나 걸렸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딸이 돌아오기까지 나는 딸의 몸 건강도 걱정했지만, 우울증 같은 마음의 건강이 더 걱정되었었다. 다행히 목소리도 밝고 예전처럼 건강하게 돌아와 줘서 고맙다.(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 판정받았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정말 혼자라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페루로 갈 때부터 기숙사에 격리되어 있을 때도 함께 견뎌 준 친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동고동락했던 친구 사이, 코로나가 둘 사이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해외 입국자 2주 자가격리가 가로막고 있어서, 우리 가족은 아직도 딸을 품에 안아보지 못했다. 공항으로 마중도 못 가고 혼자 택시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가족들은 우리 집이 보이는 '해외 입국자 가족안심 숙소'로 짐을 꾸려 옮겼다. 딸은 또다시 2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하고, 우리도 집이 아닌 곳에서 이런저런 불편함을 견디며 보내야 한다.만약, 식구들 입장만 생각했다면, 딸을 격리 시설로 보내야 한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딸을 더는 감옥같은 곳에 보낼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딸을 그리운 집으로 들여보낸 일은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자치센터 코로나 담당자가 보낸 알림 문자와, 격리자 물품 지원금으로 산 식재료들로 딸이 직접 만들어 먹었다는 음식들.
그럭저럭 일주일이 지났다. 가끔 딸이 먹고 싶어 하는 것들 사서 집 앞에 살짝 두고 오는 산타 엄마 놀이도 나름 즐겁다. 마주 볼 수 없어도 괜찮다. 손만 뻗으면 잡히는 곳에 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비록 페루에서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인생은 늘 예기치 못 한 일들이 생긴다는 걸 몸소 느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 어느 작은 방 안에 갇혀 3개월을 보내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인내를 배우는 값진 시간을 체득했으리라 믿는다. 그 험난한 일을 견뎌냈으니 세상 무슨 일이 두렵겠는가.
가장 먹고 싶은 걸 얘기하랬더니 저런 메뉴들을 선택했다. 집을 비워주던 날 식탁에 올려두고 왔다. 무사 귀국을 위해 함께 축배를 들어야 하는데 아쉽다.
코로나가 끈질기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일주일도 건강하게 잘 지내길 간절히 바라본다. 매 끼니를 각자 알아서 해결하며, 따뜻한 집밥을 그리워하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또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힘내라고 전하고 싶다.
딸이 먹고 싶어하는 것들 사서 문 앞에 살짝 두고 나왔다. 통화하면서 손도 흔들어 주고 안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