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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태모의 포랍도 Jan 02. 2022

에드문드 버크와 달력, 그리고 지도

[사람과 사상]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나는 지난해의 성취를 기록하고 새해의 목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자의적으로 정해 놓은 시간의 구분이 뭐 그렇게 특별하냐는 식으로 연말연시를 태연하게 보낼만큼 냉철(?)하지도 못한 탓에 설렘과 아쉬움, 초조함과 뒤숭숭함이 뒤섞인 하루를 보낼 뿐이다.


올해는 무엇보다 읽고 쓰는 해가 될 것이다. 오래 묵혀 두었던 작업들을 끝낼 때가 되기도 했고, 새로 시작하는 일도 더 신경 쓸 예정이라 그렇다. 혼자 쓰는 잡글조차 말이다.


어쩌다 보니 정치와 법, 철학과 역사를 오래 공부하고 있지만, 종국에는 사상사를 쓰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을 통해 사상을 익히고, 사상의 맥락에서 사람을 조명하는 일이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까닭이다. 애써 좋은 전기를 찾아 읽는 것도 계속 즐겨할 테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삶에서 시대의 특징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올해는 [사람과 사상]이란 제호 하에 짤막한 노트를 이곳에 남길까 한다.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혹은 너무 졸릴 때를 위한 소일거리다. 사상에 대한 진지한 논설이라기보다는 그저 두서없는 객담이 될 것이다.


내가 관심을 두는 역사 속 인물 중에 1월 1일에 태어난 사람이 있다. 아일랜드 출신 영국 정치인 에드문드 버크(1729-1797)다. 그가 남긴 여러 정치 팸플릿과 철학 논고들에 대해서는 후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버크는 1771년부터 영국과 아메리카 식민지 간의 전쟁(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영국 의회 내에서 뉴욕 식민지의 입장을 대변하던 대리인이었다. 식민지 문제에 정통할 수밖에 없었다. 버크의 입장은 영국의 지배를 유지하면서 아메리카 식민지 사람들(여러모로 같은 영국인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 시절 버크의 연설 중에는 빼어난 것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아래의 두 연설을 참조)


https://oll.libertyfund.org/title/canavan-select-works-of-edmund-burke-vol-1

 

앞서 나는 버크가 1월 1일 생이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사실 한 가지 설명이 추가되어야 한다. 버크는 그가 태어났을 당시(1729년)의 역법이었던 율리우스력에 따랐을 때 1월 1일 생이었다. 영국은 1750 달력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서 1752년부터는 율리우스력 대신에 그레고리력을 채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역법에 따른다면 버크의 생일은 1월 12일이다. 달력처럼 우리 삶의 당연한 기본 조건조차 관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사례라 하겠다. 물론 우리의 경우 그레고리력의 역사는 훨씬 짧다. 1896년 고종의 칙령으로 도입되었다.


또한 내가 1752년에 영국에서 그레고리력을 채택했다고 했을 때도 한 가지 설명이 추가되어야 한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이미 그레고리력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1752년부터 그레고리력을 채택한 것은 잉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와 기타 영국 식민지였다. 여기서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에 대해서 간단한 정리를 할 수 있겠다. 우리말 영국은 물론 한자어다. 우리가 이 글자를 택한 까닭은 오래전 중국인들이 '잉'글랜드를 표현하기 위해 같은 발음의 잉이라는 글자(英)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6세기에 웨일스가 완전히 잉글랜드에 편입되고, 1603년에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가 없이 세상을 뜨면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불려 온 뒤, 여러 우여곡절 끝에 1707년이 되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완전히 통합되어, 대 브리튼 왕국(The Kingdom of Great Britain)이 공식적으로 탄생한다. 여기에 아일랜드 왕국이 합쳐진 것이 1801년, 이제 공식 명칭은 대 브리튼과 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 되었다. 이후 치열한 갈등 후에 1922년쯤 되면 대부분의 아일랜드 지역이 이 연합 왕국에서 분리되었고, 1927년 아일랜드 북 동쪽의 작은 지역만 기존의 연합 왕국의 일부로 남게 되어 대 브린튼과 북 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 된 것이다. 이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버크를 아일랜드 출신 영국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는데, 조금 부연하면 버크는 아일랜드 왕국 더블린  출신인데, 당시 아일랜드 왕국은 아직 연합 왕국의 일부가 되기 전이었으며 이때까지는  브리튼 왕국의 일종의 의존국이었다.


한 가지, 몇 년 전 화제가 된 브렉시트(Brexit)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크싯(UK+exit)으로 불러야 맞다. 물론 발음도 안 좋고 하니, 그렇게 부르기 힘들겠지만!


 

이 지도 한 장이면 헷갈리는 "영국" 명칭을 정리할 수 있다.


덧) 지도에 보이는 작은 섬들, Isle of Man과 Channel Islands(잘 안 보이지만 가장 큰 섬이 Bailiwick of Jersey 고 그 옆의 군도를 Bailiwick of Guernsey라 부른다)는 영국에 속하지 않는 왕실 속령(Crown Dependenci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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