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프로젝트> ⑦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3개의 오마주 작품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는 비록 뉴욕에서 태어나고 파리에서 죽었지만, 지중해의 열기와 침울을 밀도 있게 반죽한 듯한 짙은 목소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선 굵은 외모가 그의 모국 그리스를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또한 그리스 남자와의 사랑으로 일생의 슬픔과 기쁨을 다 끌어 쓰고 53세에 죽은 마리아라는 한 연약한 여자이자, 라 스칼라와 메트의 환호 속에 피어난 세기의 디바로서 열정의 라 칼라스라는 두 개의 삶을 산 드라마틱한 인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올해로 서거 44주년. 지난 9월 16일이 그의 기일이었다.
이번 가을 그리스는 마리아 칼라스로 물들 모양이다.
9월부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오페라 프로젝트 <7개의 마리아 칼라스의 죽음>과 모니카 벨루치의 연극 데뷔작 <마리아 칼라스: 편지와 추억>이 연달아 찾아와 아테네 씨어터고어들의 발걸음을 더욱 급하게 만들고 있다.
“31년 동안 나는 마리아 칼라스의 삶과 예술에 헌정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녀에 대한 모든 전기를 읽었고, 특별한 목소리를 들었고, 영화를 봤다. 나와 같은 사수자리 별자리로, 나는 항상 그녀의 성격과 삶, 심지어 그녀의 죽음에까지 매료되어 왔다.
그녀가 무대에서 연기한 수많은 오페라 여주인공들처럼 그녀도 사랑 때문에 죽었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죽었다. 대부분의 오페라는 여성의 죽음으로 끝나는데 대개는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는 벼랑에서 뛰어내리거나, 화상을 입거나, 목이 졸려 죽거나, 그냥 미쳐버린다. 나는 마리아 칼라스가 죽은(연기로 끝나는) 7편의 오페라에서 7편의 죽음 장면을 재연하고 싶었다."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https://mai.art/7deaths)
지난 9월 1일부터 4일까지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바 있는 현대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오페라 프로젝트 <마리아 칼라스의 7개의 죽음(7 Deaths of Maria Callas)>이 오는 9월 24일부터 29일까지 아테네의 그리스국립오페라로 옮겨 공연된다.
‘ARTE 오페라 시즌’의 일환으로 유럽의 5개 주요 오페라단(도이치 오페라 베를린 Deutsche Oper Berlin, 마지오 뮤지컬 피오렌티노 Maggio Musicale Fiorentino, 그리스 국립오페라 Greek National Opera, 파리 국립오페라 Opéra National de Paris, 바이에른 주립오페라 Bavarian State Opera)과 공동제작한 이 작품은 원래 2020년 4월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등으로 연기된 후, 사회적 거리두기와 200명 입장 허용 등을 따져 뮌헨의 2,300석 규모의 바이에리쉐 국립오페라극장(Bayerische Staatsoper Munich)에서 2020년 9월 5일 세계 초연으로 공연되었다. 2021년에는 파리에 이어 마리아 칼라스의 모국인 그리스에서 공연되는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1946~)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행위예술가로, 특히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의 회고전이 유명한데, 3개월 동안 하루에 8시간씩 1,000명의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마주한 퍼포먼스(<The Artist Is Present>)로 85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cQ39OBzzo%29)
영상과 무대가 만나는 멀티미디어 작업으로 진행되는 <마리아 칼라스의 7개의 죽음>은 마리아 칼라스가 출연한 오페라 중에서 7개의 중요한 아리아를 뽑아 7개의 죽음으로 표현한다. 영상에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하고 미국 영화배우 윌리엄 데포(Willem Dafoe)가 마리아를 죽음으로 내모는 저승사자이자 암살자(오나시스로 대변되는)로 등장한다.
영상과 함께하는 무대 위 아리아 실연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비올레타 발레리-헤라 박혜상), <토스카>(플로리아 토스카-셀레네 자네티), <오텔로>(데스데모나-리아 호킨스), <카르멘>(카르멘-나데즈다 카리아 지나, 아델 샤르베), <루치아 람메르무어>(루치아 애쉬톤-아델라 자하리아), <노르마>(노르마-로렌 페이건), <나비부인>(초초산-키안드라 하워스, 기브리엘라 레예스)으로, 모두 결핵으로 죽고, 몸을 던져 죽고, 칼에 찔려 죽고, 미쳐 죽고, 불에 타 죽거나 자결한다(특이하게도 이 작품에서 나비부인은 자결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능으로 죽는다). 몇몇 배역은 뮌헨과 파리가 다른데, 특히 우리나라 소프라노 박혜상이 비올레타 발레리로 출연해 'Addio, del passato bei sogni ridenti'를 불러 더욱 눈길을 모은다.
공연은 1977년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심장마비로 홀로 죽은 마리아 칼라스의 모습에서 절정을 이루며 끝이 난다. 세르비아 출신 젊은 작곡가 마르코 니코디예비치(Marko Nikodijević, 1980~)의 창작곡이 여기에 추가되었고,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제작한 무대의상도 한몫한다.
평생 대담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 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오케스트라 연주의 오페라 형식에 연극과 영상이 믹스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오가는 이 색다른 총체극을 통해 ‘예술 형식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와 관객에게 다가가 오페라 관객을 새롭게 하고, 장르를 활성화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자’ 하는 열망이 작품 제작의 원동력이었다고 제작의도를 밝힌 바 있다.
파리 공연에 앞서 진행한 한 인터뷰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14살 무렵 라디오에서 처음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을 듣고 울었던 경험을 시작으로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열정이 시작되었음을 고백했다.
“우리를 연결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둘 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불화의 원인인 어머니를 뒀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칼라스의 사진과 나를 비교하면서 외적으로 굉장히 닮았음을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죠. 그러나 외적인 측면보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연약함과 강인함의 조합입니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취약하고 섬세했으며 동시에 무대에서 카리스마가 넘치고 관대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바친 비범한 예술가였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단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제 친구들은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죠. 마리아 칼라스는 "공연할 때 내 뇌의 한 부분은 완전히 통제되고 다른 한 부분은 느슨하고 자유로워집니다. 최상의 상태로 공연에 임하기 위해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는데, 절대적인 통제와 완전한 자유 사이의 균형은 내가 공연할 때 추구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7개의 죽음>
트레일러 (https://www.youtube.com/watch?v=FBSaIgmLQoY)
프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48AB2itOWuE )
아름다운 얼굴의 대명사 모니카 벨루치(Monica Bellucci)의 연극 데뷔작은 그 누구도 아닌, 디바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작품이다. <마리아 칼라스 : 편지와 추억(Maria Callas: Letters and Memories)>은 2017년 작 다큐멘터리 <마리아 칼라스 : 세기의 디바>의 톰 볼프(Tom Volf) 감독이 마리아 칼라스의 미공개 텍스트와 편지로 꾸민 독백 형식의 무대극이다.
2019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전역으로 공연이 준비되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일정이 연기되었고, 2020년 3월 프랑스 부프 파리지앵(Bouffes Parisiens) 극장에서 초연된 후 팬데믹 사정에 따라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등 순회공연으로 현재 이어가고 있다.
모니카 벨루치는 40년 이상 모델과 배우로 활약한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무대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무대에 오르는 것은 거의 내가 겪는 일종의 폭력에 가깝다”고 할 만큼 관객과의 직접적인 호흡에 공포를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 마리아 칼라스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던 셈.
벨루치는 “편지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훌륭한 예술가의 영혼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볼프 감독은 무대 위에서 벨루치와 칼라스는 일종의 케미가 생겼다면서 “디바의 강점과 취약성을 정확하게 해석했다. 모니카는 그녀의 유명인사로서 전설 뒤에 숨은 여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 동안 열리는 모니카 벨루치의 <편지와 추억> 공연은 서기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경사면에 있는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오데온(Odeon of Herodes Atticus)의 역사적인 장소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진행된다. 고대 야외 그리스 극장에서 모니카 벨루치의 꿈결같은 목소리로 울리는 마리아 칼라스의 내밀한 이야기에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매진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스 현지 기자간담회 (2021.9.20.) https://www.youtube.com/watch?v=yYB3oid7sAk
“내 안에 마리아와 라 칼라스 두 사람이 있다”
전설이 되어버린 디바, 마리아 칼라스를 둘러싼 수많은 사후 저작물 중에 비교적 최근 발표된 톰 볼프(Tom Volf) 감독의 2017년 작 다큐멘터리 영화다. 마리아 칼라스의 사망 3년 전인 1974년에 이루어진 인터뷰로 시작되는데, 어린 마리아에서 말년의 ‘라 칼라스’가 되기까지, 그녀가 어떻게 변신했는지 전 세계의 기록 보관소와 개인 소장품에서 수집한 미공개 편지와 희귀한 인터뷰, 출판되지 않은 회고록의 일부 문장들로 칼라스의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우리나라에는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라는 이름으로 2018년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소개되었고, 2019년에 개봉했다.
본명은 ‘안나 마리아 세실리아 소피아 칼로예로풀루(Anna Maria Cecilia Sophia Kalogeropoulou)’. 그리스에서 여자아이 이름으로 쓰일 법한 이름은 다 넣은 듯한 이 이름은 훗날 '마리아 칼라스'로 고유명사가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마리아가 뉴욕에서 그리스계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만 1937년 그리스로 돌아가 17세부터 들어갈 수 있다는 그리스국립음악원에 큰 키로 속이고 13세 나이로 들어간 것부터 시작된다. “자제력이 중요하다, 평생 잊지 말아라”는 스승의 말을 가슴에 품고 5분 정도의 거울 볼 시간도 없이 오로지 연습에만 매진한, 유난히 집중력 높은 소녀의 시간들도 보여준다.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그런 평범함을 용인해주지 않는 인생.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취미는 요리 레시피를 모으는 것이라는 여자.
이미 음악만큼 유명한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사랑과 우정을 비롯해 희노애락, 생노병사의 의미를 음악과 삶을 통해 통째로 보여준다.
마리아 칼라스의 편지와 인터뷰 내용은 구구절절 받아적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시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인터뷰의 마지막 말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인용했는지 모르겠지만)와 똑같이 “C'est tout”(이게 다예요)다.
마리아 칼라스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mariacallasestate.com/
https://blog.naver.com/azul24/222512424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