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프로젝트> ⑨ 요르고스 란티모스
그리스국립오페라와 NEON 문화개발기구(www.neon.org.gr)가 3년 간의 협업으로 진행중인 <The Artist On The Composer> 시리즈는 라이브 오케스트라 공연을 중심으로 시각 예술가나 영화감독 등 다른 매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위촉하여 새롭게 해석된 클래식을 선보이는 작업이다.
시리즈의 첫 작품은 2019년에 올린 그리스의 시각예술가 니코스 나비디스(Nikos Navridis)의 공연으로, 세트와 의상이 없으면서도 시각적 충격을 준 독특한 오페라 무대로 선보인 바 있다.1) 두 번째로 소개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이번 작품은, 이 시리즈의 모토인 ‘기존의 문법을 철저히 피하면서 전혀 새로운 오페라를 선보인다’는 취지에 정확히 들어맞는 파격을 지닐 것으로 사전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처음 이 작업을 제안받고 열성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음악 앙상블과 함께 상영될 비주얼을 위해 직접 <Bleat>라는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2020년 그리스 티노스(Tinos) 섬에서 촬영된 이 영화에는 <더 페이버릿>(The Favorite)을 통해 이미 손발을 맞춘 바 있는 오스카상 수상의 할리우드 배우 엠마 스톤(Emma Stone)과 프랑스 배우 데미안 보나르(Damien Bonnard)가 주연으로 출연했으며, 바흐(JS. Bach)를 비롯해 노르웨이 작곡가 크누트 니스테트(Knut Nystedt)의 종교음악, 일본 작곡가 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의 현대음악 등이 사운드트랙으로 등장한다. 공연에서는 영상과 더불어 음악 앙상블이 라이브로 연주될 예정이다.
요로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열성팬이 아니더라도 그의 영화를 몇 편 본 사람이라면 그가 영화에서 미장센과 카메라워킹 못지않게 음악을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이번 공연은 음악에 대한 그의 애정이 영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표출되는지 지켜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1973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10편 미만의 영화작업으로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 되었다.
2009년 작인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송곳니(Dogtooth)>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을 받으면서 영화계에 작은 충격을 가했다면, 이어 첫 영어 장편영화인 <더 랍스터(THE LOBSTER)>(2015)는 제68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2015년 유러피언 필름 어워드에서 각본상과 의상상을 연거푸 받으면서 작은 충격을 넘어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기괴하고 이상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음을 예감하게 했다.
2017년에 나온 <킬링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는 제70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으로 일찌감치 작품성을 입증했으며, 박찬욱 감독도 “지금 세계에서 가장 차기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요르고스 란티모스라고 답하련다. 신화적 상상력을 현실세계에서 펼쳐내는 그의 작업은 <킬링디어>에서 절정에 이른 듯한데, 누가 알겠는가, 다음 작품에서 그가 또 어떤 상승을 보여줄지”2)라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이에 답하듯 2018년 제75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초연한 <더 페이버릿(The Favourite) : 여왕의 여자>는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했고, 여왕 역으로 나온 올리비아 콜먼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은 아카데미상(오스카)에서 총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묘사하는 데 있어 지금은, 더 이상 신인이나 신예가 아닌 어느새 거장의 반열로 들어서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그리스 현대영화의 계보를 보면, 1960년대부터 <제트(Z)>(1969), <뮤직박스(Musicbox)>(1989)를 만든 코스타 가브라스(Costa-Gavras, 1933~) 감독의 사회와 정치 비판 색깔이 강했던 영화, 1988년 베니스영화제에 빛나는 <안개 속의 풍경>과 199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영원과 하루>의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 195~2012) 감독의 롱테이크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술성 강한 영화 등이 단단한 중심을 이루었지만, 이후 이렇다 할 새로움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IMF 재정위기를 필두로 국가의 재정상태가 악화로 치닫고 사회가 혼돈 속에 빠져들자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독특한 상상력과 특이한 색깔로 무장한 새로운 그리스 영화들이 등장하는데, 이른바 ‘그리스 영화의 이상한 물결(Greek Weird Wave)’이 그것이다.
2009년 이후 그리스발 이상하고 기묘한 영화 트렌드가 세계 영화계로 전달되는데, 주로 저예산이지만 불안한 정치적, 문화적 문제를 패러디 혹은 전복하여 판타지, 퀴어 등으로 재구성한 새로운 시각의 영화들이었다. 여기에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송곳니, 2009>, <알프스, 2011>, <더 랍스터, 2015>를 비롯해 파노스 쿠트라스(Panos Koutras)의 <스트렐라, 2009>, 아티나 레이첼 창가리(Athina Rachel Tsangari)의 <아텐베르그, 2010> 등이 대표적으로, 국제 영화제에서 눈길을 받기 시작했다.3)
평론가들은 10년이 지나도록 계속 쏟아져 나오는 놀랍도록 기이한 이 영화들이 그리스 경제 혼란의 산물인지를 질문하기 시작했고4), 국가의 심각한 금융 위기와 영화 제작물의 특정한 형태(corpus) 사이의 상관관계라는 이 흥미로운 가설에 이후 수많은 의미와 해석들이 붙으면서 하나의 사조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스 영화의 급성장에 대한 비밀 아닌 비밀이 된 셈이다.
영화감독 이전에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아테네에서 TV 광고,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및 연극작업을 비롯해 다수의 무용 비디오 감독을 맡았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밝히 바로는,
“그 당시 그리스에는 영화 제작자도 많지 않았고 산업도 없었다. 생계를 위해 광고를 찍었고, 광고를 위해 영화와 텔레비전을 공부했다. 영화학교를 다니면서 점점 더 영화와 사랑에 빠졌는데, 광고를 통해 얻은 기술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여름별장에 모인 몇몇 친구들로부터 옷과 음식, 자동차를 빌려 찍었다. 우리가 만든 영화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러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라고 어렵게 영화를 시작했음을 고백했다.
그는 어떤 영화든 현대적인 느낌이 나고 오늘날과 관련성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시대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고, 그 어떤 배경과 소재에서 가져오더라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자신들만의 작은 우주를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예술계 전방위에 걸쳐 두루 경험을 쌓으면서 독자적인 개성을 만들어온 그의 재능은 영화를 만나면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같다. 역사의 무게와 과거의 찬란함이 현재의 분열과 우울을 더욱 대비시키는 상황에서 요로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들은 모순과 비정형의 현상을 신화와 현재로 버무려 빚어낸 새로운 나라의 탄생처럼 여겨진다.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또 다른 우주는 어떤 모습일지 계속해서 궁금해지고 기대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에 개봉되어 비교적 많이 알려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4편을 소개한다.
2009ㅣ출연 크리스토스 스테르기오글루, 미셸 발리, 아게리키 파루리아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송곳니가 빠져야만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
높다란 담과 초록빛 정원, 수영장 딸린 교외의 아름다운 저택. 이곳에선 한 부부와 세 자녀가 살고 있다. 부모는 ‘송곳니가 빠져야만 집을 떠날 수 있다’는 법칙으로 아이들이 다 크도록 세상과 완전히 격리한 채 양육하고 있다. 가족 중 오직 아버지만이 밖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회사 경비원 ‘크리스티나’를 집으로 불러들여 성관계를 맺게 하는데, 이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부추기고, 촘촘해 보이던 아버지의 세계에도 곧 균열이 시작된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면서 큰딸은 충격적인 탈출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https://tv.kakao.com/channel/20307/cliplink/38227656
2015ㅣ출연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제68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유예기간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완벽한 짝을 찾아야만 한다. 홀로 남겨진 이들은 45일간 커플 메이킹 호텔에 머무르며, 완벽한 커플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을 얻지 못한 사람은 동물로 변해 영원히 숲속에 버려지게 된다.
근시란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고 호텔로 오게 된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새로운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숲으로 도망친다. 숲에는 커플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삶을 선택한 솔로들이 모여 살고 있다. 솔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절대규칙은 바로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이 근시를 가진 완벽한 짝(레이첼 와이즈)을 만나고 마는데..!
2017ㅣ출연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간
제70회 칸영화제 각본상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 유일하게 정의에 가까운 일이에요.”
성공한 외과의사 스티븐(콜린 파렐)에게 예전 그의 환자였던 자의 아들인 소년 마틴(배리 코건)이 다가온다. 미스터리한 그와 친밀해지면서 스티븐과 그의 아내 안나(니콜 키드먼)의 이상적인 가정이 완벽하게 무너지는 내용을 담은 미스터리 복수 스릴러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아가멤논이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면서 일어나는 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원제는 ‘신성한 사슴 죽이기’.
비극, 신탁, 제물 등 고대 그리스 신화의 아이콘들이 현대극에서는 음악과 미장센 등의 다양한 배치로 어떻게 활용되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2019 | 출연 올리비아 콜맨, 레이첼 와이즈, 엠마 스톤
제91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날 봐! 날 보라고! 어디서 감히! 눈 감아!”
18세기 초 영국 앤 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궁궐에서 일어난 여자 사촌 간의 치열한 전투를 다룬 역사 코미디다. 절대 권력을 지닌 히스테릭한 영국의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을 중심으로,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권력의 실세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에게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 사촌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하녀로 궁궐에 들어왔지만 신분 상승이란 욕망에 사로잡힌 애비게일은 여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사라의 자리까지 넘보게 된다. 여성배우 세 명이 주인공을 맡은 흔치 않은 영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tJGnxGbddtc
- 표지사진 출처 : 그리스 국립 오페라
- 요르고스 란티모스 관련자료(사진, 광고, 영화스틸) : https://www.lanthimos.com
<각주설명> 자료
1) https://neon.org.gr/en/exhibition/the-artist-on-the-composer-en/
2)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652817
3) https://mubi.com/lists/greek-weird-wave
4) 「Guardian」 Steve Rose(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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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azul24/222610952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