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프로젝트> ⑬ 히드라 섬의 히피들
히드라(Hydra, 그리스어로는 이드라Yδρα)는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10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에게 해의 작은 섬이다.
이 섬에는 관광지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세 가지가 없다. 자동차, 소음, 그리고 지나친 인공빛 공해. 쓰레기차와 구급차를 제외하고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같이 매연을 일으키는 탈것은 금지되어 있고, 대신 당나귀와 말, 손수레, 해변의 수상택시가 이동수단의 전부다.*
히드라 섬에 도착하면 누구나 속도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공평하게 걷고 산책하고 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슬로운 라이프’를 터득하게 된다. 또한 새 지저귀는 소리, 돌길 위 당나귀 발굽소리, 좋은 음식과 와인 앞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외에는 소음이라곤 들을 수 없는 섬의 고요는 도시를 탈출해온 사람들에게 소리도 공기와 같은 해독제란 걸 깨닫게 해 준다.
깊은 항구, 수정처럼 맑은 물, 언덕 위 절묘한 18세기 석조주택들, 우아한 수도원, 붉은 부겐빌레아로 장식된 하얀 대리석 골목길, 숨막히는 일몰 풍경…. 히드라 섬에는 약 300개의 교회와 6개의 수도원이 있고, 원형극장,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 등 문화예술 인프라가 풍부하며, 6월과 8월엔 대규모 독립기념 불꽃축제 행사가 열린다.
현재 히드라는 그리스 독립운동에서부터 해군승선학교 운영 등의 특별한 역사적 히스토리와 제트족들을 끌어모으는 빼어난 자연에 더해 친환경 요소까지 가미되면서 여름엔 관광객들이 찾는 축제의 섬, 겨울엔 취향객들이 찾는 사색의 섬이라는 두 얼굴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 당나귀나 말과 같은 동물 의존 수송에 대한 동물학대 여론이 들끓으면서 히드라의 짐 수송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현지인들의 생계와 맞물린 사안이지만 동물 권리와 운영에 대한 방문자들의 투명성 요구와 확인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토록 멋진 작은 낙원에 누구보다 크게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예술가들이었다. 1960년대 무렵 세계를 떠돌던 히피족들을 선두로 시인, 음악가, 화가 들이 섬으로 몰려들었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은 이 섬의 아름다움을 자주 노래했고,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소설가 헨리 밀러(Henry Miller), 그리스 화가 니코 지카(Niko Ghika) 등은 직접 거주했으며, 에릭 클랩톤(Eric Clapton), 비틀즈(The Beatles), 롤링스톤즈(The Rolling Stones), 핑크플로이드(Pink Floyd)와 같은 록그룹 스타들도 부지런히 섬을 찾았다. 이들이 방문했던 오밀로스(Omilos) 레스토랑, 롤로이(Roloi) 카페, 해적(The Pirate) 바 등은 아직도 보헤미언의 전설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수코스로 남아 있다.
사람들의 손길이 많지 않은 작은 섬에 불과했던 히드라 섬이 히피들의 성지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은 1960년 노르웨이 소설가 악셀 젠슨(Axel Jensen)을 비롯해 호주 작가 조지 존스톤(George Johnston)과 차미언 클리프트(Charmian Clift) 커플이 찾아오면서부터. 그 뒤를 이어 당시 캐나다의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보헤미안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코헨은 26세 때 처음 이곳에 오자마자 평온함과 고독이 공존하는 섬에 매혹되어 할머니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언덕 위의 3층짜리 집을 1500달러에 산다. 발코니로 바다 풍경이 그대로 들어오는 이 집에서 코헨은 「The Favorite Game」(1963)과 「Beautiful Losers」(1966)라는 두 권의 책을 집필하고, 여자친구이자 뮤즈였던 (악셀 젠슨의 전처인) 노르웨이 여성 마리안느 일렌(Marianne Ihlen)과 1967년까지 7년간 함께 산다.
우리에겐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읖조리는 듯한 노래 ‘I’m your man’으로 잘 알려진 레너드 코헨은 ‘Famous Blue Raincoat’, ‘Hallelujah’, ‘So Long, Marianne’, ‘Suzanne’, ‘Dance me to the end of love’와 같은 주옥같은 노래들로 1970년대부터 20여 년간 현대음악사에서 중요한 음악가의 한 명으로 활동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에 버금가는 문학적이고 서정적인 가사가 돋보였으며, 실제 그의 시 중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용되는 구절도 있다.
“…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다. …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그리고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 … That's how the light gets in.…”
(Imperfect By Leonard Cohen)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1934~2016)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유태인 수석 랍비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사랑, 섹스, 마약, 노래’와 같은 영적인 삶을 위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위해 신앙에서 스스로 유배하기로 결심, 히드라로 도피한다. 이곳에서 7년 동안 지내면서 평생의 자산이 될 감수성과 음악적 에너지를 끌어모은 코헨은 1967년 섬을 떠나 발매한 첫 앨범 <송스 오브 레너드 코언 Songs of Leonard Cohen>으로 본격적인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이후로도 많은 여성들을 뮤즈삼아 사랑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고, 음유시인이자 작가로서 다재다능한 작업들을 해냈다. 그러다 1995년 돌연 캘리포니아의 젠 센터(Mt. Baldy Zen Center)에 들어가 승려로 살기도 했고, 전 매니저의 횡령으로 인해 빈털터리가 되어 말년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도 했다.
지난 2016년 82세로 작고하기까지 코헨의 세컨하우스로 사용되었던 히드라의 집은 현재까지 그의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가수 아담 코헨(Adam Cohen)은 이곳에서 자신의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조문하러 온 팬들만이 대문앞에 꽃을 놓거나 그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고 한다.
히드라 섬의 주민으로 영원히 이름을 남긴 레너드 코헨, 히드라에서의 7년은 그의 인생에 금이었을까, 빛이었을까?
히피문화 덕에 국제적인 섬으로 부각되던 히드라 섬은 코헨과 그의 친구들이 떠나면서 보헤미언 패러다이스에서 자연스럽게 상업 관광지로 바뀌는 절차를 밟게 된다. 1980년대부터 고급 리조트나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이 즐비한 ‘천박한 관광지’로 바뀌는 조짐이 보이면서 아테네 부자들의 별장이나 제트스키를 타고 불꽃놀이를 위해 찾는 곳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히드라섬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되었다. 더 이상 젊은 작가나 음악가가 책을 완성하거나 노래를 쓰기 위해 찾아가는 곳은 아니지만, 대신 관광시즌만 넘기면 섬이 가진 고유한 고요와 여유로움이 살아나면서 신세대 예술가와 작가들이 그 자리를 조금씩 차지하게 된 것.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히드라 섬의 오래된 도축장을 개조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는 제프 쿤스(Jeff Koons)가 제작한 거대한 황금빛 ‘아폴로’ 스피너가 우뚝 서서 항구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태양 신 아폴로의 얼굴을 한 이 작품은 <제프쿤스: 아폴로 Jeff Koons: Apollo>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9.1센티미터 너비의 반사형 윈드 스피너로 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데스테(DESTE: 그리스어로 ‘바라보다’의 뜻) 재단은 아테네 기반 비영리 예술재단으로, 2008년 히드라 섬 자치단체로부터 섬의 오래된 도축장을 기부받으면서 이를 복원·개조하여 2009년부터 현대미술을 위한 쇼룸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매년 여름 유명 작가를 초대해 현대와 고대 사이의 형이상학적 대화에 관객을 참여시키는 프로젝트를 기획해왔다. 제프 쿤스의 프로젝트는 2020년부터 준비됐으나 코로나로 인해 한해 건너뛰고 2022년 여름에 본격 공개되었다.
DESTE재단의 히드라 프로젝트는 2010년에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전시중 ~7.16 / We), 2015년에는 홍콩 출신 미국 작가 폴 찬(Paul Chan, 2014 휴고 보스상 수상자 / Hipias Minor), 2019년에는 미국의 여성작가 키키 스미스(Kiki Smith, 현재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중 ~3월12일 / Meory) 등이 섬과 어울리는 작품들을 전시해 주목받았다.
히드라 섬을 알리는 또 다른 예술 프로젝트로 2000년부터 매년 여름에 진행되는 <히드라 스쿨 프로젝트 Hydra School Projects>가 있다. 1999년 그리스의 화가 디미트리오스 안토니시스(Dimitrios Antonitsis)가 설립한 비영리 재단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작가 레지던시 운영과 함께 전 세계 유명 예술가들이 젊은 유망 예술가들과 어울려 여름 동안 작업, 결과물을 히드라 섬 곳곳에 선보이는 행사다.
그 동안 이 프로젝트로 120여 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최소 10회 이상의 전시회가 열렸다. 2004년에는 우리나라의 김수자(Kimsooja)가 참여한 프로젝트 전시(PREMAculTURE)가 열렸고, 키키 스미스나 우고 론다노네(Ugo Rondinone, ‘서울국제아트엑스포2023’(2.9.(목)~12.(일) 서울 코엑스 C홀))와 같은 유명 현대미술 작가들도 전시에 참여했으며, 2022년에는 설치예술가 마리나 아브로모비치(Marina Abramovic), 네이선 스미스(Nathan Smith) 등이 참여한 <원시의 힘 Primal Power>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레너드 코헨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매력적인 섬 히드라.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히드라는 계속해서 이들을 불러모으고 있고, 히드라의 예술 프로젝트들은 관광이나 휴식 이외에도 히드라를 방문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서 그 비중을 점점 키워가고 있는 것 같다.
그룹 핑크플로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의 아내이자 작가인 폴리 샘손(Polly Samson)이 2020년 펴낸 소설. 레너드 코헨을 비롯해 1960년대 히드라 섬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시인, 화가, 음악가로 구성된 보헤미안 그룹의 삶을 탐구한 책으로, <Sunday Times>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데이비드 길모어는 5년간의 침묵 끝에 2020년 히드라에서 촬영한 비디오와 함께 <Yes, I Have Ghosts>라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9년 선댄스 영화제에 초연된 이 영화는 레너드 코헨과 그의 ‘뮤즈’였던 마리안느 일렌과의 관계,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 히드라 섬에서 보낸 시간에 관한 것이다. 마리안느는 코헨의 노래 ‘So Long, Marianne’, ‘Hey, That's No Way to Say Goodbye’, ‘Bird on the Wire’ 등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LB6nIzPf9r8
<같이 보면 좋은 것>
2022년 DESTE재단의 <Jeff Koons: Apollo> 프로젝트에 설치작품 전시한 제프 쿤스 인터뷰
https://www.ertflix.gr/en/vod/vod.215574-e-epokhe-ton-eikonon-16#.Yz_t-1vzUNs.link
<원고 참고>
- https://en.wikipedia.org/wiki/Hydra_(island)
- https://deste.gr(데스테재단)
- https://www.hydradirect.com/(레너드 코헨)
<표지사진>
Jeff Koons <Apollo Wind Spiner> 2020-2022 ⒸJeff Koons | photo Eftychia Vlac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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