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미술 같이 읽기(2): 유장우《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
서른 세살에 난생 처음 토익을 본 친구가 말했다.
"시험장에서 긴장해서 계속 다리를 떨어가지고... 뒤에 있는 사람이 조용히 해달라고 했어"
그의 생애 첫 토익 점수는 990점 만점에 985점...
그동안 5점이라도 더 높이려고 ETS 에 들인 내 돈들이 허망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곧 '그도 영어를 그 수준까지 하기까진 나보다 더 힘든 노력을 했겠지' 라고 생각하며 의도치 않게 비교당한 내 마음을 위로했다.
모쪼록, 긴장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반복하게 되는 행위로 그 친구처럼, 다리 떠는 것만 있겠는가.
절대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서도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하게 되는 돼지머리털 뽑기, 펜돌리기, 반복적으로 볼펜 팁 누르기 등등...
사람마다 다르지만 불안 속에서 반복하는 각자의 강박적인 행위가 있을 거다.
이러한 집중과 불안의 아이러니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가 있다. 유장우 작가의《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이 그 전시다.
(사실, 곱슬머리 뽑는 건 내 이야긴데, 이젠 상한 머리 끝을 뜯어내거나 가위로 자르는 걸로 대체하려하고 있다^^ㅠ)
집중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경험, 대부분 한두번즈음있지 않을까.
해야하는 일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며 종국에는 원래 해야하는 일을 회피하게되어, 이 회피를 막기 위해 일종의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지속하게 되는 경험 말이다.
일말의 자괴감까지 드는 그런 순간 나는 딴짓, 일명 집중력 돌려막기를 시전한다. A를 해야하는 시간에 B를 하고, B를 해야하는 시간에는 C를 하고... 그럴 때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일련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 제작된 작업 <집중의 프로토콜(The Protocol of Concentration)>을 보니 내가 해왔던 행위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업은 <피나고, 알배기고, 알배기고>였다. 굉장히 심플한 화면 하나로 구성된 이 작업은 작가가 군대에서 사격 예비 훈련(PRI)을 받을 당시의 불안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격의 정확도 향상이 아닌, 가혹행위를 피하기 위해 집중해야만 했던 부조리하고도 아이러니컬한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게 흥미로웠다 .총구 위에 올려진 바둑돌이 흔들바위처럼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흑백의 영상을 보며, 바둑이 떨어지지 않을까 함께 아찔해진다.
전시는 한 층으로 구성되어 많은 작업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여러 개의 스크린에 나타나는 각각의 영상들을 보며, 내 경험에 대해 반추하게 되는 좋은 전시였던 것 같다.
목적과 수단이 주객전도된 상황을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경험하는가. 얼마전 택배기사의 죽음을 두고 토요일에는 배송업무를 중단해야한다고 주장하던 한 의원의 말 속에서 이와 같은 아이러니를 다시금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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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뮌헨예술대학교 디플롬, 마이스터 슐러 과정을 마쳤다. 사회적 사건 혹은 사회와 개인 사이의 충돌, 긴장 등을 탐구하여 이에 대한 일상적 관념을 헤집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 왔다. 개인의 신체, 사회화된 몸짓의 유래, 현대사회의 시스템화 전략 등을 변이, 재 맥락화, 비판적 은유의 방식을 통해 관객/사람들에게 이러한 것들의 이면을 바라보게 하거나 질문하는 작업을 보여주고자 한다. <소진되는 몸짓, 2019>(스페이스xx)에서의 개인전과 (탈영역우정국), <주의 깊게 보지 마시오, 2019>, (신한갤러리 역삼) , (Haus der Kunst) 등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 작가소개는 탈영역우정국에서의 설명을 가져왔습니다.
현대미술 작가 전시나 작업 중, 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던 경험들을 다시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이상, 상수동에 위치한 탈영역우정국에서 2020.10.23 - 2020.11.8에 진행되었던
유장우 작가의 개인전,《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전시를 보고 적었던 감상 후기였습니다.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