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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K Choi Sep 30. 2023

"우리 누나는...항상 화나 있어"  

노동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The Angry Wife, Jean-Baptiste Greuze French, ca. 1785
자신의 생각을 일에 대입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노동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나는 어떤 분이셔?"

현 남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가족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생각치도 못한 답을 들었다.


"우리 누나는.... 항상 화나있어."

그 때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최근들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아주 강력하게.


요즘 들어선, 내 동생도 누군가에게 나를 이야기할 때, 똑같이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누나는 ... 늘 화가 나 있어." 혹은 여기에 더해, "항상 힘들어 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음식 프로그램을 찍는 한 원로 연예인이 했던 말이 있다. 퇴근 후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젊은 사람들이 회사욕 하는 걸 잘 들어보면,  일 하기 싫다고 푸념하는 게 아니라, 다들 일을 더 잘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과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더라는 이야기.


일이 힘든 이유는 모두 다르다.

자신이 더 잘하고싶지만 역량이 부족해서, 사람에게 압박적 스트레스를 받아서, 상사-부하 사이에 끼어서, 직급이 낮은데 많은 책임을 져야 해서, 물리적으로 출퇴근이 오래 걸리거나, 업무가 항상 12시간이상 이어져서...등


그것 때문에 건강과 삶을 위협할 정도로 힘들다면,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선택가능한 다른 옵션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한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에너지 계열사의 팀장급이 한강 근처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과 초등학교 교사들의 자살 뉴스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구나. 다른 직업을 구하고 싶어도, 주변의 시선 혹은 매달 상환해야하는 원금과 이자. 자신아니면 부양할 사람 없는 가족. 양가 부모님들이 지원해줄 수 없는 상황 등... 그런 것들이 이 사람들에게 다른 옵션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했고 결국 그들에게 죽음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아버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비슷하게 압박에 놓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차라리 길가다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씩은 해본적 있더라.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길 때,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없을 때,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상황일 때,

사람은 어쩌면도 존재할 수 있는 탈출의 가능성을 전혀 바라보지 못한다.



어제는 4시간 45분 가량의 워킹 데드 요약본을 봤다. 그 중 편집자가 자신의 영상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인내심과 끈기가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제가 하는 행동이 노동이라고 여겨지면 그때부터 그 일의 효율과 삶의 재미, 나아가서 나는 왜 살고 있는가에 대해 자기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철학적인 사색을 하며 아무것도 안 합니다. ...

저는 제 행동에 제 생각이 들어가야만 흥미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일에 대입할 수 있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노동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중략)


도망칠 수 없는, 생각의 전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양과 스트레스의 일은 논외로 하고서라도... 우리가 매일의 노동... 회사에서의 노동, 가사 노동, 그리고 살아숨쉬기 위한 노동. 그런 것들로부터의 압박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내 생각을 대입하면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일말의 눈가림일지도 모른다. 임시방편일지라도, 우선 살고봐야지 않겠는가.


최근, 여기가 아니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러던 중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일이 많은 직업인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식적으로라도 내 생각을 반영해 일하는 주체적인 삶임을

인지하며 Next step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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