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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주 Aug 30. 2023

겹벚꽃을 본 날

어젯밤 꿈에서 나는 어떤 건물 밖으로 나왔다.

환한 대낮이었는데, 건물 앞 대로변에 벚꽃 나무가 줄지어 서있었다. 그 나무들은 흩날리는 벚꽃나무가 아니라 겹벚꽃이었다.

큰 꽃잎들이 뭉쳐 갈색 가지마다 꼭 붙어있는 진 분홍빛의 겹벚꽃. 어찌나 꽃잎이 생생하고, 견고하게 매달려있는지.


나는 그 겹벚꽃을 바라보며 문득 시온이 생각이 났다.

시온이가 이 벚꽃을 봤다면 분명 좋아했을 텐데.

어릴 때 아장아장 같이 산책을 하다 보면 꼭 꽃 앞에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 갔었지.

내가 꽃다발이라도 받은 날이면, 자기가 들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하나하나 뿌듯하게 바라봤었지.

꿈 속이었지만 그런 시온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길가에 서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꿈을 깨고 나서, 문득 겹벚꽃이 궁금해졌다.

때로 꿈속의 어떤 상징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이 누구나 있지 않은가.

특히 사랑하는 이를 먼 곳으로 떠나보냈을 때, 문득 곁으로 날아든 나비가 마치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처럼. 그렇게 믿어버리고 싶은 것처럼.

나는 겹벚꽃이 무언가 의미를 줄 것만 같아서 궁금한 마음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겹벚꽃의 꽃말은 ‘정숙, 단아함’이었다. 이건 내게 주는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 같아서 지나갔다.


그러다 개화시기에 눈길이 갔다. 겹벚꽃은 우리가 흔히 보는 벚꽃나무가 진 뒤, 5월쯤에 핀다고 한다.

바쁜 일상에 치여 4월에 흩날리는 벚꽃을 놓쳤을 때,

겹벚꽃은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다.

봄이 다 지나버린 듯해서 허전한 마음을 가진 누군가에게 겹벚꽃은 아직 아니라고, 여전히 봄날이라고

파란 하늘아래 진분홍 빛의 꽃을 보여주며 위로를 준다.


내가 꿈에서 마주한 겹벚꽃이 그런 의미로 나타난 게 아닐지.

비록 시온이와 다시는 이곳에서 벚꽃을 같이 볼 수는 없지만,

시온이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있고

이 땅에서의 봄이 지나면,

저 천국에서 너를 다시 만나는 겹벚꽃의 봄이 다시 오지 않을까.


우리 다시 보게 되면

흐릿한 모습이 아니라

더없이 선명하고 고운 빛깔로 마주하는 거야.


깊고 진하기만 했던 슬픔이

진분홍 빛의 소망으로 바뀌어가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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