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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의 기록자 Apr 06. 2023

당신은 화가 나면 어떤 표정을 짓나요?

 

물 폭탄을 맞은 우리 집은 혼돈 그 자체였다. 바닥은 물이 발목까지 철렁거리게 차올랐고, 우리 집 강아지는 이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신나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비 맞은 강아지 꼴로 거실 바닥에 있는 물을 허겁지겁 퍼내기 시작했다.     


착하디 착해서 절대 싸울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남편과 신혼 초 큰 갈등을 겪었다. 사건은 이랬다. 설거지를 하는데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답답했던 나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기야 싱크대에 물이 잘 안 나와.”


“내가 한번 해볼게.”


“자기야 30분이 넘었는데……. 어려우면 수리업체 부르자.”


“나 기계전공학과 졸업했잖아. 나만 믿으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


남편은 쉽게 고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심 불안해진 나는 계속 말려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남편의 커다란 몸은 싱크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싱크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



마치 소방호스에서 불을 끌 때 나오는 강력한 수압의 물줄기 같은 것이, 제 힘을 주체 못 하고 거실 천장까지 튀어 올랐다. 놀란 나와 남편은 손으로 물줄기를 막아보았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강한 수압의 물은 고작 손 따위로는 막아지지 않았고, 솟아오른 물은 거실 천장을 맞고 바닥으로 마구 쏟아 내렸다. 그렇게 열 시간 같은 십 여분이 지난 후에 아파트 수도업체가 와서 겨우 현장을 마무리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이 극도로 화가 나면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을 수도, 화가 나 울 수도 없는 표정이 되었다.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눈동자는 초점이 없어졌고, 굳어진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남편은 멍해진 날 보고 울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은 두 시간 넘게 퍼내고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온몸이 다 젖은 우리는 지쳐서 그대로 쓰러졌다. 남편은 나와 대화를 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대꾸할 힘조차 없었다. 그리고 둘 사이엔 꽤 오랜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초인종이 울렸고, 후다닥 현관으로 나간 남편은 곧 돌아왔다. 남편이 민망한 웃음으로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땐, 방금 배달 온 치킨이 들려있었다. 물난리가 난 상황에서 치킨이라니.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이럴 때 생긴 말이었던가. 나는 당황스럽지만 귀여운 사과를 하는 남편의 모습에 배시시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남편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다시는 고장 난 물건을 고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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